너나없이 쏟아내는 감세 정책…성장률 바닥인데 곳간 걱정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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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없이 쏟아내는 감세 정책…성장률 바닥인데 곳간 걱정은 뒷전


감세 공약 경쟁에…당내서도 "재정 선택지 사라져"
'0%대 성장' 암울한 경제 전망…세수 불확실성 증대
축소하는 재정정책의 폭…"감세 낙수효과 작동 안 해"

[호남신문] 오는 12일부터 제21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가운데, 대선 후보들의 감세 공약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모두 재정 투입과 감세 확대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문제는 나라 곳간 사정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발생한 대규모 재정적자와 미국 상호관세 압박으로 인한 0%대 저성장 전망이라는 험난한 경제 환경 속에서 출범하게 될 차기 정부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세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감세 공약 경쟁에…당내서도 "재정 선택지 사라져"

윤석열 정부는 지난 3년간 민간 투자 활성화 등을 목표로 감세 정책을 펼쳤으나, 성장률 둔화와 함께 100조원이 넘는 재정 적자를 낳았다. 나라 살림살이를 의미하는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104조8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은 4.1%에 달한다. 이는 코로나 기간 이후 최대 수준이다.
금리인하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긴축과 감세가 경기를 더욱 둔화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지난 2년간 87조에 달하는 대규모 세수 결손을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율 최고세율을 구간별로 1%포인트(p) 인하하고, 소득세 과표구간을 상향하는 등 감세 정책을 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공약을 살펴보면, 양측 모두 중산층 감세와 복지 지출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상속세 공제 한도 확대, 근로소득세 물가 연동제 등을 언급하며 중도보수층을 향한 표심 확장에 나섰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역시 종합소득세에 물가연동제 도입,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상속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공약을 제시했다.
세원 확보를 위한 증세 정책을 펼쳤던 정부는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집권당이었던 박근혜 정부 때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했으나, 이후 담뱃세, 주류세, 주민세 등을 인상하는 증세 정책을 펼쳤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시차를 둔 이러한 증세 효과로 초과세수를 거두며 코로나 기간 수차례 추경을 편성했다.
현재 대선후보들이 경쟁적으로 감세 정책을 공약하는 가운데, 민주당 내부에서도 최근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감세 여파를 진단하고 차기 정부의 전략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여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감세 경쟁을 자제하자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전 의원에게 서한을 보냈다"며 "재정의 선택지가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 역시 "윤석열 정부 감세로 100조의 세수펑크가 났다. 차기정부는 '재정 마이너스 통장'부터 떠안는다"고 지적했다.

◆'0%대 성장' 암울한 경기 전망에…세수 불확실성 커져

올해 경기 전망도 비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이전 전망보다 1.0%p 낮춘 0.7%로 전망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치인 1.0%보다도 낮은 수치다.
내수 불황이 장기화하고 수출 침체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아 0%대 초저성장 탈출이 어렵다는 관측이다. 향후 미국의 상호관세에 따른 우리 경제의 충격은 상당할 거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양도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 세원이 예상만큼 걷히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경기 전망이 점점 악화하는 가운데 특히 내수 침체로 부가가치세와 양도소득세 등 자산 관련 세수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며 "세입이 줄고 국채발행이 지속되면 결국 정부의 정책 대응 여력도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기업실적 호조에 따른 최근 3월까지 법인세수 흐름은 양호한 상황이나 올해 기업 실적 전망이 하향조정되면서 오는 8월 법인세 중간예납은 예상보다 저조할 거라고 정부는 관측하고 있다.

◆축소하는 재정정책의 폭…"감세 낙수효과 작동 안 해"

한 달 후 출범할 차기 정부는 0%대 성장률과 미국의 관세리스크 속에서 경제적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대선후보들이 단순한 감세 공약을 넘어 현실적인 세원 확보 방안과 투명한 증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감세와 복지 확대라는 달콤한 공약 이면에서는 차기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재정 정책의 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건전재정이라는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재정운용의 목표 자체를 '지속 가능성'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통화정책이 손 묶여 있는 상태에서 재정이 경기의 버팀목이 되려면 출범 직후 최소 25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 지출 구조조정만으로는 답이 안 나오니 누진적·보편적 증세 로드맵을 동시에 제시해 국민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낙수효과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끝내야 한다. 감세로 성장해 세수를 확대한다는 주장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며 "결과적으로 민생을 악화시키는 '역(逆)낙수'가 벌어진다. 다음 정부는 불로소득 환수와 생산적 투자를 촉진하는 동반성장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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