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 주자와 관련한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어 법관들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정치권에서 사법부를 향한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관들이 재판 결과를 비판하는 취지의 결론을 내놓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오는 26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임시회의를 개최한다. 회의는 현장 참석과 온라인 참석이 병행된다.
이번 임시회의에 다룰 구체적인 안건은 정해지지 않았는데,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대법원 초고속 판결로 촉발된 대선 개입 논란과 재판 독립 침해 우려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임시회의에서 논의할 안건을 상정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임시회의 7일 전까지 구성원 4인 이상이 동의한 안건이 상정되며, 회의 현장에서 구성원 9인의 동의를 얻어 안건 상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번 임시회의 소집 논의가 나온 배경이 이 후보 사건을 대법원이 초고속으로 판결한 것에서 촉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선 개입 논란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지난 1일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이 후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례적으로 신속한 선고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법원 내부에서도 이 후보 사건 상고심 절차를 두고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 법관들은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조 대법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해당 판결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면서 법관들도 입장을 표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법관들이 사법부 신뢰 회복에 한 목소리를 낼 경우 조희대 대법원장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법관들이 나서 이 후보 사건 재판 결과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실제로 이번 임시회의 소집 과정에서 법관 대표의 상당수는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조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를 거론하며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이라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국회는 오는 14일 조 대법원장에 대한 '대선 개입 의혹 진상 규명'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또한 민주당은 특검법 발의와 탄핵 추진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청문회 이후 이어지는 조 대법원장에 대한 공세 수위에 따라 법관들이 사법부 권한 침해와 재판 독립에 관한 메시지를 내놓을 수도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기인 만큼 회의 결과가 원론적인 수준에서 나올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법관들이 민감한 시기에 날 선 메시지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원론적인 수준에서 회의가 마무리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당일 회의에선 격론이 에상된다. 여러 안건이 올라 오더라도 부결돼 구체적인 입장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법관대표회의는 회의가 길어질 경우 추가 논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장시간 회의가 지속돼 시간이 부족한 경우 안건 추가 검토를 위한 요청이 있으면 속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길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