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 사진작가, 복싱선수, 변호사, 발레리나, 인테리어 회사 팀장, 큐레이터 등. 이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온 배우 신혜선(34)이 이번에는 인플루언서로 돌아온다. 주로 로맨스 연기로 주목 받은 그는 영화 '그녀가 죽었다'(5월15일 공개)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연기를 한다.

"항상 다음 작품에선 비슷한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제 안의 본능같은 거예요. 드라마는 주로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보니 영화에선 멜로가 아닌 다른 걸 해보고 싶었어요." 전작 '용감한 시민'(2023)에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복싱선수 출신 교사 '소시민'을 연기한 신혜선이 이번엔 반대로 '불의 그 자체'인 한소라가 됐다.

'그녀가 죽었다'는 고객이 맡긴 열쇠로 집에 들어가 남의 삶을 훔쳐보는 취미를 지닌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가 남의 관심을 먹고사는 인플루언서 한소라의 집에 드나들다 그가 살해된 걸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스토리 반전을 전후로 한소라의 상반된 두 얼굴을 표현한 신혜선은 "연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착한 소라를 연기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구정태와 부동산에서 마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연기하는 게 가장 긴장되고 부담됐어요. 별거 아니고 그냥 대화하는 장면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소라의 정체를 관객이 몰라야 하니까 착한 사람으로 보여야 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본성을 드러낸 한소라는 소시소패스에 가까운 인물이다. 신혜선은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이해하기보단 철저히 나와 다른 사람으로 여기며 연기했다고 했다. "대본을 읽기만 해도 가증스러워 보일 정도였어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요건 안에서 제일 가증스러운 요소를 생각하다 '내가 듣기 싫은 내 목소리'가 떠올랐죠. 평상시 제 말투와 목소리 말고 제가 가증스러워 보일 때 목소리가 있는데, 내레이션 녹음할 때도 그 목소리를 썼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볼 때마다 '으, 너무 싫다'고 했어요."

'그녀가 죽었다'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물이지만 구정태와 한소라의 모습은 관객에게 간간히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준다. 신혜선은 "완전 공포 스릴러라기보다는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도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나름의 유머 요소를 넣었어요. 그리고 정태가 정상 범주의 인물도, 완전한 피해자도 아니기 때문에 소라도 완전히 무서워질 순 없었던 거죠. 이상한 애랑 이상한 애가 엮여서 생긴 소동극이라고 생각해요."

극중 인플루언서인 한소라의 이상함은 정상 범주를 크게 벗어난다. 카페 옆자리 사람의 명품백을 자신의 것인 양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허영심은 예삿일이다. 다만 신혜선은 이런 한소라의 모습이 인플루언서나 소셜미디어 자체를 조롱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우리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소셜미디어와 인플루언서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남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줄 수있는 직업으로 인플루언서를 선택한 것 뿐이다. 인플루언서와 소셜미디어를 조롱하고 까는게 아니라 표현 수단 중 하나일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최고 시청률 45.1%(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한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2017~2018)을 비롯해 화려한 드라마 커리어를 가진 신혜선이지만, 그간 영화 흥행과는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영화 커리어가 아쉽다는 평가에도 신혜선은 덤덤했다. "저는 흥행에 큰 관심이 없어요. '그녀가 죽었다'도 흥행보다는 캐릭터를 보고 한 거였어요. 흥행을 못해봐서 그런 거 같기도 해요. 그런데 인생은 길고 역할은 많아요. 아직 제가 못해본 역할도 많기 때문에 조급하지 않아요. 사실 저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저는 이 일을 오래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