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농협에서 조합원을 상대로 특정한 작물의 계약재배약정을 하였다가 소송사건으로 비화하였다.

그 계약재배약정은 그해에 새롭게 한 것이 아니라 과거 10여년간 꾸준히 시행하여 온 농산물판매사업의 하나였고, 그 해의 계약재배약정도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해당 작물의 수확기에 이르러 계약을 이행하려고 하였더니 시중시세가 대폭락하였다.

과거 10여년간 발생한 일이 전혀 없었으며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고 바라지도 않던 재앙적 상황이 된 것이다.

지역농협은 계약재배 약정시 약정한 금액으로 농산물을 수매할 경우 시중시세와의 차이 때문에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 명백하였고, 그 손해규모는 해당 농협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이에 지역농협은 그 내용을 계약재배 약정한 조합원에게 설명하고 수매가격을 시중시세보다 약간 높은 선까지 낮추어 농가의 손해가 없는 수준에서 수매를 해 주었다.

그런데, 일부 농가가 시중시세나 농협의 손실발생을 무시하고 당초 약정한 금액대로 수매하여 줄 것을 주장하였고, 결국은 주변의 몇몇 농가들을 규합하여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재판에 임하여 일부 농가들은 농협의 존립이나 전체 조합원의 이익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계약재배 약정의 이행만을 주장할 뿐이고, 조합은 계약재배약정을 조합측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 아니라 약정을 이행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였음과 약정을 이행하는 것은 조합의 파탄, 전체조합원의 큰 손해, 심지어 약정의 이행을 주장하는 조합원에게도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들어 설득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진전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하여 협동조합전문가들과 농민단체, 농업인들이 제각기 입장에 따라 다른 의견과 주장을 하고 있어서 판단이 쉽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관련 판결에서 이 사건과 관련되는 아주 주목할 만한 내용이 나타났다.

바로 '신의칙'이라는 개념을 두고 피고인 회사측과 재판부 사이에 치열한 법적논쟁이 벌어졌는데, ‘신의칙’이란 무엇인가?

신의칙이란 ‘신의성실의 원칙’을 줄인 말로서 민법 제2조 제1항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권리의무의 양 당사자는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서 신의와 성실로써 행동해야 한다’는 민법상의 대 원칙이며, 줄여서 신의칙이라고도 한다.

이 조항의 뜻은 ‘누구나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하여야 하며, 형평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사람은 누구나 사회공동생활의 구성원으로써 법률관계를 형성할 때 상대방에게 기대되는 행위방식을 신뢰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데, 당사자 일방의 이러한 기대는 보호되어야 하고, 상대방은 상대방의 정당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김상배 / 한국농업법연구소 이사장·한국농업마이스터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