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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관계를 만남, 모임, 인연, 운명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 관계에서 자기의 위치와 역할, 책임과 의무가 발생한다. ‘삶은 관계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성공적리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관계를 잘해야 한다.
누구나 수많은 관계 중에서 동창회, 동기회, 동호회, 향우회, 종친회 등 많은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모임에 참석하고나면 누구나 어떤 점은 좋았다거나 어떤 점은 미흡했다던가 어떤 소회(所懷)를 갖기 마련이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동기들의 모임 등에 참석하고 있다.
여러 모임에서 느꼈던 일을 이 모임에서 보고, 나는 2022년 한국 사회를 표현한 교수들의 사자성어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생각났다. 교수신문은 전국 대학 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과이불개가 50.9%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고 지난해 12월 11일 밝혔다.
과이불개는 「논어(論語)」의 위령공(衛靈公)편 21장과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 등에 나오는데, 공자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잘못‘(過而不改 시위과의(是謂過矣)이라고 했다. 잘못이 드러나면 여당은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고 하고, 야당은 ‘야당 탄압’이라고 말하며 도무지 고칠 생각을 않는다.
많은 사람이 잘못됐다고 하는데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으니 사과할 이유도, 고칠 필요도 없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가 될 것 같아 우기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탓만 하는 현재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정형화된 언행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누구나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공자는 잘못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고치라‘(과즉무탄개 過則勿憚改)고 가르치고 있다. 수제자 안회(?回)는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는다’(不貳過)고 칭찬받았다. 특히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은 잘못을 인정하고 잘 고쳤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교수들은 과이불개 이외에도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욕개미창‘(慾蓋彌彰)(2위·14.7%), '계란을 쌓아놓은 듯이 위태롭다는 누란지위’(累卵之危)(3위·13.8%),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를 계속한다는 문과수비'(文過遂非)(4위·13.3%), '눈먼 자들이 코끼리 만지듯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그릇되게 판단한다는 군맹무상'(群盲撫象)(5위·7.4%)을 선택했다.
과이불개를 선택한 한 50대 인문대 교수는 "자성(自省)과 갱신(更新)이 현명한 사람의 길이고, 자기 정당화로 과오를 덮으려 하는 것이 소인배의 길"이라고 비판했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크건 작건 간에 모임은 회칙이 있던지 없던지,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예의와 룰이 있다. 왕년(往年)에 똥별 달았다고 설치고, 건달도 못 되면서 골목대장처럼 나대면 그 모임은 온전할 수가 없다. 특히 힘이나 주먹으로 사는 세상이 아니고 말로 사는 대명천지 세상에 말을 함부로 해서 남에게 모욕과 상처를 주는 똘아이들은 그 모임에서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낸다’는 그레샴의 법칙은 정치에서나 사회 모임에서도 적용되는 잘못된 경우가 많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인배들은 패거리 짓기를 좋아한다. 선하고 순수한 사람들은 일상의 삶에서나 모임에서 패거리 짓는 데에 관심도 없고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인배들은 패거리를 지어서 남에게 말도 함부로 하면서 상처를 주고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계속하면서 설친다. 오만(傲慢)은 추락과 패망의 지름길이다.
그래서 국가에는 나쁜 소인배들을 잡아가두는 형무소가 있디. 공조직이나 회사에도 반드시 감사 부서가 있다. 조그만 친목계에도 회장이 있고 감사가 있다. 정치에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누가 여당이 되더라도 야당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감시와 처벌과 응보가 없으면 이 세상은 무너진다. 낮과 밤, 올라감과 내려감, 기쁨과 슬픔, 강과 약, 음과 양이 돌고 돌아 끝없이 순환하는 것이 만고(萬古) 불변의 천지 진리다.
김윤호 주필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