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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향에 가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아이들도 적고 청춘은 더욱 없고 나이든 노인들이 대부분이어서 마을이 조용하고 한적하다는 것이다. 일년에 여러 차례 고향을 찾아다니면서 늘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지난 18일 서울시가 공개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가 눈에 크게 띄었다.
청년 5513명과 청년이 거주하는 5221가구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및 심층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만 19∼39세 청년 중 4.5% 12만9000명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집 밖에 나오지 않은 지가 6개월이 넘은 ‘은둔형 외톨이’인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 외에 만나는 사람이나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는 ‘고립’ 생활,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은둔’ 생활 실태를 조사해 추산한 결과다. 전국적으로는 고립 또는 은둔 청년이 61만 명 규모로 추정된다. 남의 일로만 알았던 일본에서 시작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이제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고립·은둔 청년들은 대개 어려서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학교에서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고, 성인이 된 후로는 취업에 실패하거나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들 중 55.6%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으며, 아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는 비율도 7%나 된다.
고립·은둔 청년 중에서 고립·은둔 생활을 한 지가 5년이 넘은 사람이 10명 중 3명(28.5%), 1년 이상은 10명 중 7명(73.3%), 6개월 이상은 10명 중 9명(85.2%),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10명 중 8명이라고 하니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심각한 단계로 접어들었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졸업 후 취업 경험이 있는 15∼29세 청년 중 첫 취업에 3년 이상 걸린 사람은 올 5월 기준 35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취업 준비에 2년 이상∼3년 미만(27만5000명)이 걸린 사람을 포함하면 첫 구직에 2년 이상 소요된 청년은 63만3000명이었다.
고립·은둔 청년들을 방치할 경우 개인적 불행을 넘어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일본의 경험이다. 다행히 이번 조사에 응한 청년 2명 중 1명 이상이 외톨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고 교육, 고용, 훈련 등을 모두 거부하는 구직 단념자, 청년 무직자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을 한 명도 없게 할 수는 없다. 니트족 생활이 길어질수록 은둔형 외톨이가 될 가능성도 높다. 15∼29세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이 20%에 육박하고 니트족도 한 해 8만4000명 규모로 증가하고 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민태원(閔泰瑗, 1894-1935, 우보 牛步)의 유명한 수필 ‘청춘예찬’이 생각난다.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중략).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운다. (중략).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운다. (중략).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대다. 우리는 이 황금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다.’
뜨거운 피, 불타는 열정, 원대한 꿈, 역동적인 돌파력으로 충만되어야 할 아름답고 고귀한 우리 청춘들이다. 학교 폭력, 가정 폭력, 경제적 어려움, 취업 실패, 인간관계 형성의 어려움 등으로 상처받고 신음하면서 외톨이가 되고 절망감과 무기력감, 원망과 자학(自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청춘들에게 가족과 이웃,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가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 청년 고용문제는 개인 문제도 되지만 사회적 책임도 큰 문제이기에 특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
청년 고용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심리 상담과 사회 복귀 대책을 가동해야 한다. 청년들이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사회와 단단한 정서적 유대감을 갖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
김윤호 주필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