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기업, 육아 부담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 지원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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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법 "기업, 육아 부담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 지원 의무"

고용승계 후 워킹맘 본채용 안해…부당해고 주장
1심 부당해고 인정…2심 적법한 해고 판단, 1심 파기
대법, 원심파기…"기업서 지원의무 다하지 않아"

육아를 부담하는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는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16일 건물종합관리업체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상고심에서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취지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고 10일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남녀고용평등법상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원심 파기 사유를 설명했다.
앞서 건물종합관리업체 A사는 고속도로 유지·관리용역 경쟁입찰에 참가해 고용승계를 전제로 한 도급계약을 따냈다. 이에 따라 고속도로 영업소 영업관리팀에서 서무주임으로 일하던 B씨의 고용을 승계하고, 수습기간 3개월을 포함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워킹맘이었던 B씨는 이전 업체에서 근무할 때 출산과 양육을 이유로 초번근무를 면제 받고, 공휴일에는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 받았다. 이에 따라 수습기간 3개월 중 A사로부터 초번근무, 휴일근무 등의 지시를 받았지만, 이를 수행하지 않았다.
A사는 정당한 업무지시를 거부했다며 B씨의 본채용을 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B씨는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재심판정을 통해 A사의 부당해고를 인정했지만, A사는 다시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재심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원고인 A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A사가 지시한 초번근무나 공휴일 근무가 적법하다고 할 수 있지만, B씨의 수습평가 과정에서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통념상 본계약 거부통보는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2심에서는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A사가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B씨가 수습기간 저조한 점수를 받게 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B씨와 중앙노동위원장이 상고한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이 같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대법원은 B씨가 워킹맘이라는 사정만으로 초번근무, 공휴일 근무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부모의 자녀 양육권은 헌법에 나오는 중요한 기본권이고,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근로자의 양육을 배려하기 위한 국가와 사업주의 일·가정 양립 지원의무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만큼 사업주는 육아를 담당하는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배려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또 "사업주가 부담하는 배려의무는 제반사정을 종합해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에서 사업주가 일·가정 양립 지원의무를 다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아 본채용을 거부했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며 사업주의 책임을 명시했다.
지원의무를 다하지 않은 근거로는 ▲양육의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지원하지 않은 점 ▲영업소 여건을 고려할 때 충분히 지원 가능한 점 ▲서무주임에게 공휴일 근무를 지시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은 점 ▲고용승계 사안인 만큼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 점 등을 들었다.
대법원은 "원심이 엄격한 기준에 따라 A사가 B씨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를 다하였는지를 심리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사건을 환송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업주에게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인정했다"며 "사업주가 부담하는 배려의무의 구체적 내용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이 육아기 근로자 자녀의 양육을 지원할 책무를 부담한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고 그 판단기준을 마련함으로써 향후 육아기 근로자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고, 일·가정 양립이라는 가치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근로조건 및 노사관계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서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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