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안 변했어요. 제 외부가 변한 거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대중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배우를 스타로 만들었다. 배우 정성일(43)도 그 중 한 명이다. 2002년 데뷔해 연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일했다. 영화·드라마 쪽에선 잘 풀리지 않았지만, 연극·뮤지컬 등 공연계에선 연기력을 인정받고 이름도 알렸다. 업계에서 아는 사람은 아는 배우였지만, 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더 글로리'를 통해 이제 누구나 아는 핫한 배우가 됐다. 토크쇼에 나오고, 뉴스에도 나온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정성일은 그런데도 "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감사해요. 정말 좋아요. 다른 게 아니고 제게 선택권이 생긴다는 게 좋습니다. 인지도가 올라가면 제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다양해지니까요. 제가 좀 무덤덤한가 봐요. 부담스럽진 않아요. 분명 어떤 날엔 '날 이렇게 많이 알아보는구나' 생각할 때도 있는데, 집에 가면 다 까먹어요."

활동을 꾸준히 해가면서 정성일은 자신이 연기를 잘한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때가 30대 초반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아무 것도 아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어떤 작품에 참여하게 됐는데, 자신 있게 연기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정성일은 자기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자만해서는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그때 벌써 알았다. 계속 배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조금 일찍 알았던 거예요. 그래서 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겁니다. 제가 살아가는 방식, 마음, 생활 반경이나 패턴 모두 바뀌지 않았어요. 사실 제가 스타병, 연예인병에 걸릴 나이는 아니잖아요."(웃음)

다만 예전보다 유명해져서 예전부터 꿈꾸던 걸 하나 이룰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연락이 안 되던 친구들에게 연락이 와서 사인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 함께 있는 지인과 통화 좀 해달라는 친구의 부탁 등 모두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지만 정말 꿈꿨던 건 고향에 가서 친구들과 술마시는 일이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제가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있으면, 주변에서 '쟤는 뭔데 정성일이랑 술 마시냐'고 하는 거요.(웃음) 나 때문에 누군가 뿌듯해 하고, 내가 누군가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거든요."

"변하지 않았다"던 그의 말처럼 정성일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곳인 무대로 돌아갔다. 1월 말부터 연극 '뷰티풀 선데이'를, 3월부터는 뮤지컬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 편은 '더 글로리'가 공개되기 전에 출연 약속을 했고, 다른 한 편은 '더 글로리' 파트1이 공개된 직후에 출연하기로 했다. 아무리 공연을 오래한 배우라고 해도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이 크게 성공하면 비슷한 역할로 다른 영화·드라마에 나오거나 상대적으로 출연료가 적은 공연보다는 영화관이나 TV로 활동 무대를 옮겨가는 것과는 분명 다른 행보다. 그는 "서두를 마음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제 페이스대로 갈 겁니다. 영화·드라마 쪽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 보려고요. 저한테 있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제 소속사 분들에게 참 감사해요. 사실 지금처럼 인지도 있을 때 얼마나 굴리고 싶겠어요.(웃음) 그런데 제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저를 기다려주고 제가 좋은 역할 맡을 수 있게 도와주거든요. 이제 전 제 할 일만 하면 돼요. 더 열심히 연기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