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리없이 흘러가는 백마강 푸른 강물이여
김윤호 주필입력 : 2022. 11. 13(일) 16:20
가을이 소리없이 깊어가는 늦가을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전국 시·도 지회장과 시·군·구 지부장들과 본부 임원들이 참석히는 한국문인협회 제42차 전국대표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나는 여러 차례 참석했지만, 관심이 많은 백제 고도(古都) 부여의 유적지를 다시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참기했다.

관광버스 3대에 분승하여 행사 장소인 충남 부여군 규남면 백제문로에 있는 롯데리조트부여에 도착했다. 코로나 창궐로 3년 만에 전국 문인들을 만나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오후에는 사비홀에서 식전 행사로 백제가야금 연주단의 가야금 연주와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성정용(成正鏞) 교수의 ‘사비 백제사’ 특강이 있었다. 한성(漢城, 서울)에서 493년, 웅진성(熊津城, 공주)에서 63년, 사비성(泗?城, 부여)에서 122년 존속하여 678년 동안 한반도 중서부에 있었던 고대국가 백제(百濟)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에 묻히고 덧칠되어 잊혀져 갔다.

150여 명이 모인 전국대표자대회는 우수 지회·지부 시상과 지회·지부 문학지 콘테스트 시상, 우수 지회·지부 모범 운영사례 발표로 이어졌다. 오랜 만에 만난 전국 문인들의 만찬에는 막걸리 등 술이 곁들여진다. 이번에는 10월 29일(토)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꽃 다운 20대 청춘 104명을 포함하여 156명의 희생자가 난 참사로 선포된 국가애도기간이어서 모두들 금주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운기조식(運氣調息)의 내공법(內功法)으로 심신을 가다듬고, 저녁에 갔었던 백제문화단지 오른쪽에 있는 백제역사문화관을 혼자서 찬찬히 둘러 보았다. 백제의 역사를 한성(위례)시대, 웅진시대, 사비시대로 나누어서 시대별로 정리하고, 고구려·신라·중국·왜국(일본)과의 교류와 영향,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익산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등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소개하고 있다. 풍속과 생활, 건축과 금속공예, 백제정신까지 분야별로 1층에 1호실과 2호실, 2층에 3호실과 4호실로 구분하여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천오백년의 풍파와 질곡을 이겨내고 땅 속에서 잠자다가 1993년 기적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금동대향로(金銅大香爐, 국보 제287호)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상징한다. 4세기 중반에는 북으로 황해도에서부터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일대를 영역으로 하여 전성기를 누렸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웅변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손상이나 도굴을 피하고 아슬아슬하게 출토된 백제 유물들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백제 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뿜어내고 있었다.

롯데리조트부여로 돌아오는 도중에 롯데문화단지 앞에 설치된 정찬국의 조각 작품 ‘구름 따라 역사는 흐른다’가 시선을 끌었다. 하늘 높이에서 옷자락 휘날리며 피리를 부는 여인의 선율은 백제역사의 깊이와 흐름을 상징하고, 땅에 앉아서 바라보는 아이들은 사랑과 꿈을 키워가는 인간상(미래)을 형상화했다고 해설해 놓았다. 이른 아침 맑은 마음 때문인지, 신선하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전신주 꼭대기에서 나에게 소리하던 까치가 롯데리조트부여 고층 빌딩 꼭대기 가장 자리에 앉아서 나를 보고 반갑게 소리한다. 하도 높은 건물 위여서인지 안심하고 날아가지 않아서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서울 집과 고향 영광에서 까치와의 믿을 수 없는 신비한 관계는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본격적인 문화 유적지 탐방의 첫 번째 코스는 사비시대(538~660)의 백제왕릉묘역인 부여왕릉원(扶餘王陵園)이었다. 전에는 부여 능산리(陵山里) 고분군으로 불렸다. 세계적 걸작 금동대향로가 출토된 지역이다. 왕도(王都)를 지키는 외곽성(外廓城)인 부여나성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발굴을 계속하고 있었다.

부소산성(扶蘇山城)으로 가기 위하여 벼스를 타고 이동했다. 구드레나루터에서 유람선(황포돛배)을 탔다. 백마강 푸른 강물은 당(唐)나라 소정방(蘇定方) 군대가 몰려오고 삼천궁녀가 꽃비처럼 떨어지던 그날처럼 소리없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고란사선착장에 내려서 부소산성 후문이라고 쓰인 경사진 좁은 산길을 따라서 올라갔다. 낙화암(落花巖)과 백화정(白花亭), 고란사(皐蘭寺)를 보고 바로 내려왔다. 부소산 정상 등정은 일정 상 다음을 기약하고, 아쉬움을 안고 고란사선착장으로 내려왔다.

패망하여 스러져가고 멸실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살려내고 재평가하고 복원해내는 일은 지난(至難)한 작업이다. 깨어나고 있는 백제의 숨결과 속삭임은 절절했고, 백제의 혼은 나의 심장에 꺼지지 않는 불씨를 안겨주었다. 풍파 속에 삭아가는 백제 역사는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
김윤호 주필

ihonam@naver.com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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