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 큰일이 터졌다. 애먼 꽃들 탓이다. 매화꽃 느긋하게 즐길 겨를은 아예 없었다. 다투어 펴버리거나 늦을세라 배꽃과 복사꽃마저 뒤죽박죽 피어나는 사태를 맞았으니, 싸매고 누구는 봄의 무례함을 나무라며 삿대질을 한다.

이게 꽃멀미 나는 난리가 아니고 뭐겠는가. 수십만 그루의 벚꽃길이 장관이다. 5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벚꽃축제 1번지 경남 창원의 진해 군항제다. 하지만 바람이 벚꽃을 타는지 벚꽃이 바람그네를 타는지 벚나무 숲이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비에 피었으니 이제 바람에 하르르 지는 일만 남은 봄꽃들, 어찌 꽃을 잊을 수 있을까. 천지에 봄바람이 분다. 사방에 봄 향기 그윽하다. 봄이 한창이라 온갖 꽃이 만발하다. 그중에서도 벚꽃축제는 봄 축제의 대명사다.

서울 여의도 윤중로, 진해 벚꽃길 등 벚꽃하면 생각나는 유명한 곳이 많다. 하지만 순천에 사는 시민들은 타지의 벚꽃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도심 가까이에서 여느 유명 벚꽃관광지보다 흐트러진 벚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바로 도심 속의 동천이다.

매년 3월경이 되면 동천변에 주욱 늘어선 벚꽃나무들은 서로 시샘하며 뽐내듯 연분홍 꽃망울을 팝콘처럼 팡팡 터뜨린다. 그것도 고목나무에서 핀 꽃이라 꽃망울이 굵고 색깔이 아름답다. 동천변은 평소에도 운동과 산책,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에 충분한 장소다. 더욱 봄이 오면 삼삼오오 벚꽃을 감상하려는 상춘객들로 넘쳐난다. 작년 이맘 때 벚꽃을 놓쳤다면 올해 벚꽃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봄하면 벚꽃 하지만 봄 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봄의 여왕 튤립이 피는 정원이다. 정원에 들어서면 형형색색 물감을 톡톡 떨어뜨린 듯한 다채로운 튤립에 모두들 감탄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이 있을까 놀란다.

또 국가 정원에는 튤립을 시샘하듯 메타세콰이어길 옆에 3만㎡ 에 달하는 유채꽃밭이 자리하고 있다. 노오란 물감이 흩뿌려진 듯한 유채꽃밭은 그야말로 황홀경 그 자체다.

완연한 봄 5월이면 순천만 국가정원 서문에는 순천의 꽃인 철쭉이 아찔한 연분홍으로 물들어 사람들의 발길을 붙든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철쭉을 따라 걷다 보면 향기에 취하고 꽃에 취해 사람들도 그만 물들어 버린다. 그래서 꽃길 따라 걸으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한사람이 꽃길을 걸어온다면 그도 꽃이 아니겠느냐’ 윤홍조 시인의 ‘꽃길’은 어느 봄날 꽃길 나들이에 나선 이들의 행복한 얼굴을 연상하게 한다.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4월을 맞아 매화, 산수유,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저마다 화려한 빛깔과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맘때쯤이면 꽃향기를 따라 여행을 떠나는 상춘객들도 늘어난다. 사랑하는 이들과 나서는 꽃길 나들이는 대부분 부담이 없어 좋다.

봄에 제주도를 찾는다면 청보리의 장관을 맛본다. 가파도 청보리 축제를 찾으면 파란 보리 물결이 해풍에 일렁이는 장관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보리밭 면적만도 60만㎡에 달한다. 가파도에 이어 우도로 건너가 보자. 유채꽃큰잔치와 우도소라축제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온천지역에도 봄기운이 한창이라 온갖 꽃이 만발하다.

마치 봄은 꽃을 위해 있는 듯하다. 철따라 꽃이 피건만 따스한 봄기운을 받으며 만개한 봄꽃은 유난히 아름답고 애착이 간다.

언 땅 밑에서 오래 동안 움츠러들었던 생명이 다시 소생하면서 ‘살아있다’는 의미를 깨우쳐 주고 있어 더욱 그런 것 같다.

이뿐만 아니다. 봄꽃은 번잡한 일상에서의 여유와 낭만을 준다. “봄이 오자 성안에 꽃이 만발하여 화려하고, 따뜻한 봄날에 만물은 바야흐로 한창 기를 펴고 자라난다. 때가 좋구나 친구들아 산천경치를 구경 가세” 조선조 후기의 평민 잡가(雜歌)인 유산가(遊山歌)는 이렇게 봄을 노래했다.

꽃밭을 거닐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 꽃들의 개성도 생각한다. 속절없이 피고 지는 꽃이건만 이래서 더욱 애정이 느껴진다. 꽃은 또 사랑과 안정과 꿈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꽃길 따라 걸어보자 몸도 마음도 가벼워 질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