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산 아래에서 개 짖는 소리도 들리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산 속에서 몇 시간 동안 내 처절한 외마디를 못 듣고 다른 곳만 헤매고 다니기 때문이다. 대원들의 ‘야호’ 소리를 내가 들으면, 나의 소리도 대원들이 들을 수 있을텐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내게 손전등(랜턴)만 있다면 몸은 지쳤지만 그들에게 다섯 번이라도 보란 듯이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장 등 선원들은 제일 먼저 도망가면서 남긴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믿고 있다가 구명조끼를 입고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 앉아버린 세월호 304명의 어린 학생 등 희생자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눈 쌓인 겨울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밤 추위가 심한 산 속의 가을에도 구조의 적기(適期), 골든타임을 놓치면 생명을 잃기 쉽다는 것을 온몸으로 처절하게 깨닫고 있었다.

대학 다닐 때, 유명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건강과 수도의 목적으로 중국 소림사 승려들에게 가르쳤다는 소림사 무술인 선법무술(禪法武術)의 내공(內攻)과 외공에서 내공의 운기조식(運氣調息)으로 호흡을 단전(丹田)까지 깊게 하고 온 몸에 돌려서 떨리는 몸 안에서 추위를 몰아내었다. 호흡은 생명이고, 호흡과 하나 된 정신은 신비롭고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체험으로 많이 겪었다. 시간을 보니 자정이 넘었다. 이제 내공의 힘으로 날이 밝아오는 새벽 네 시나 다섯 시까지만 버티면 내 발로 걸어서 내려갈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이 생겼다. 견디기 어려운 시련과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하면 나의 몸과 정신은 더욱 강하게 단련되고 더욱 빛나는 존재가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극한 상황의 추위와 고통과 절망을 겪으면서 시련이 많은 나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마음과 몸이 조금은 편안해 질 무렵에 나의 ‘야호’ 소리를 따라서 대원들은 불빛을 비추며 나에게 찾아왔다. 한 밤중, 밤 0시 44분이었다. 최초의 문자 수신과 발신을 한 때부터 5시간, 최초로 ‘야호’를 주고받기 시작한지 4시간 만이었다. 이튿날 서울 노원구에 있는 집에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전날 오후 4시 30분에 나의 일행들이 119에 조난 신고를 했고, 구조대원들이 5시경에 출동했다고 하니, 출동 7시간 44분이 지난 시간이다.

일곱 명의 건장한 대원들은 추위에 떨고 있는 나를 위하여 감사하게도 낙엽을 모아서 불을 피워서 내 몸을 녹여 주고 나의 다리를 마사지해 주었다. 나는 지치고 배고프고 추운 몸으로 대원들을 따라서 하산을 시작했다. 나만 이런 조난(遭難)을 당하는 것 같지 않아서 내려오면서 대원들에게 나는 물었다. 그들은 ‘나에게 늦게 온 이유는 위치 정보 조회를 한 결과가 저 산 너머 400m 쯤 떨어진 곳이었다. 지난여름에 가평군에서 산악 조난(遭難) 구조 사건이 10여건이었다. 가평이 산악 조난 구조가 가장 많다. 조난자는 대개 혼자 다니는 사람이고, 자만하다가 조난당하는 것 같다. 들 것을 안타고 걸어서 내려가는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다’는 대답을 들었다.

내가 헤맨 산등성이가 아닌 다른 산등성이를 타고, 가평군 산을 수없이 오르내린 젊은 산악 전문 구조대원들을 따라서 내려오는 가파른 길도 도중에 길이 없고, 계곡을 왔다 갔다 하기를 여러 번 했다. 거의 세 시간 가량을 지팡이를 짚고 하산하다가 나중에는 지처서 키 크고 건장한 한대만 대원의 손을 잡고 몇 백 미터를 가다가 쉬었다를 되풀이하면서 내려왔다. 나를 찾아서 헤매던 동안의 실망과 원망과는 달리, 나를 만난 때부터 하산을 마칠 때까지 구조대원들의 안내와 노고는 헌신적이었다. 119 구급차가 기다리는 가평군 북면 적목리의 가평소방서 구조본부에 새벽 3시 43분경 도착했다. 다행히 천국 같은 구급차 안에서 잰 나의 체온과 맥박은 산 정상 부근의 조난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잰 체온과 같이 정상이었다.

오후 다섯 시에 출동해서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11시간 동안 수고가 많으셨던 가평소방서 김명찬 구조대장과 여성 의용소방대장, 한대만씨 등 대원들과 가평경찰서 직원 등 스물다섯 분에게 감사드린다. 나 때문에 마음 고생하신 재경 영광군 향우산악회 오 회장과 회원들, 나를 염려해서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가평군 북면파출소에서 밤늦게까지 기다려준 이영민 산행부회장과 김민희씨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