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와 인간사가 그렇듯이 한 번 스텝이 꼬이면 정상으로 되돌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모든 일이 바라보는 입장과 각도, 인식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 천차만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세상사는 시간의 권세, 즉 타이밍이 생명이다. 때를 놓치는 실기(失機)는 버스 떠난 후에 손드는 격으로 아무리 아쉽고 후회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자기가 저지른 잘못과 죄악은 피할 수가 없이 반드시 자기가 받아야 하는 것이 세상과 대자연의 법칙이다.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시간이 가면 진실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혼돈과 변혁과 혁명의 시기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의 비리 의혹은 날마다 터져 나와서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빙산의 일각인지, 하도 무궁무진해서 박 대통령도, 최순실이도 좀 헷갈릴 것만 같다. 어디 비리 의혹과 범죄가 한두 가지여야 외우고 기억하고 관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40여년 많은 범죄에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다 보면, 친소(親疎)와 갈등, 맹종과 배신이 생기는 것은 인간사의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23세의 그늘 공주 박 대통령과 희대의 협잡꾼 최태민과의 불행한 만남에서 시작된 오늘의 이 엄청난 국난(國難)은 불편한 진실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죄업(罪業)이다.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 최순실의 딸 정유진,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과 딸 장시호, 환관이나 내시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고 똥오줌을 못 가리고 최순실이라는 일개 아줌마한테 국가기밀과 국정을 보고하고 방조(傍助)한 안종범 정책조정수석비서관과 문고리 3인방 등은 공범이다. 수십 년 동안 최태민에 대한 수차례에 걸친 박 대통령의 결사적인 옹호와 관계 밀착이 없었다면 최 씨 일가의 상상을 초월하는 국정 농단은 감히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과 국기문란 사태의 총책임자는 박 대통령이다.

최순실이 조사 받으며 울었다느니, 박 대통령이 한광옥 비서실장 앞에서 울었다느니, 하는 감성적인 연출과 접근은 번지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망동이다. 수천 억 국민의 혈세가 줄줄 새고,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까지 인사 개입하고 3천억이 넘는 재산 형성, 외교안보정책가지 개입하는 등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부정과 비리를 특정 개인의 사적인 간교함이나 일탈(逸脫)로 얼버무릴 수가 없다.

현재의 국가 비상시국을 조속히 안정시키고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대통령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등 친박 세력들은 국민들의 폭발하는 분노와 저항을 과소평가하고 일방적으로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를 지명하고, 자기들을 인정해 달라고 여야 영수회담만 하자고 우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국민을 선동하거나 자극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주인, 국가권력의 주권자인 국민의 준엄한 뜻과 명령을 받들고 따르는 것이다. 현재 국민의 뜻을 미흡하지만 따르고는 있으나, 지난 4·13총선에서 여소야대 의회 권력을 위임해 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집권 세력들은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대통령이 하야(퇴진)하거나 국정에서 손을 떼면 금방 나라가 무너지는 즐 알고 있다. 그렇게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오히려 참고 있던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물러나라고 절규를 해도 안 물러나는 것이 국정 공백과 국가 혼란 상황을 더욱 키우고 지속시키는 일이다. 평생 온갖 노력과 굴곡(屈曲)을 거쳐서 쌓아온 명예와 수고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슬픔과 고통이 있겠지만, 이것은 자업자득으로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업보(業報)다. 잘못하면 대통령도 퇴진 당하고 구속될 수 있다는 무서운 교훈을 국민과 역사 앞에 보여주고 남겨 주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더욱 각성하고 역사도 정의와 자유의 역사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지난 토요일, 11월 5일 오후 4시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최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진 집회에 참석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하여 종로 3가, 을지로, 롯데백화점, 남대문, 세종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가두행진에 참가했다. 중고등학생들 뿐만 아니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 연인들, 대학생들, 시민사회단체들 등 각계각층 서울시민들의 잔치였다. 참가자 수는 주최 측은 20만 명, 경찰은 4만5천명이라고 하는데, 계산 기준과 목적이 달라서 그렇게 큰 차이가 난다고 한다. 현 시국(時局)과 시국 해결방법을 바라보는 집권세력과 국민들의 시각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박 대통령의 2차에 걸친 사과는 국민들이 보기에 진정성이 없는 쇼로 보여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활활 불타고 있다. 최순실은 얼굴을 모자와 스카프, 안경과 손으로 모두 가리고 우는 듯한 쇼를 하고 검찰에 들어가서는 혐의에 대하여 죄다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검찰은 늦장수사, 수박 겉핥기 수사, 눈치 수사로 날을 새고 있다. 이번 토요일, 11월 12일 3차 민중총궐기대회는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 5%는 이미 국민들의 돌이킬 수 없는 탄핵을 당한 것이다. 이 뜻도 모르고 머리 싸매고 헤매고 다니는가. 참으로 안타깝다.

시간이 많지 않다. 박 대통령은 쓰라리고 치욕적이지만, 국정에서 손을 떼고 국민이 위임해 준 또 하나의 국민대표 기관인 국회에 모든 권력을 넘겨야 한다. 지금 상황은 우물쭈물하면서 속이 보이는 잔꾀를 쓰다가는 국민들의 엄청난 분노의 쓰나미가 1987년 6월 민중항쟁이나 1960년 4·19민주혁명 같은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청와대와 친박 등 집권세력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조속히 결단을 내려줄 것을 요구한다.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