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했으면 노후에 이혼을 결심했을까.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주로 평생을 짓눌러 살아온 여성들의 요구가 대세였다면 최근에는 황혼이혼을 고민하는 노년 남성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오늘날의 노인들은 자신은 헐벗고 굶주리면서 2세들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한 분들이다. 그런데도 퇴직하니 찬밥신세로 전락하고 차라리 황혼이혼 길을 택한다.

최근에는 노인 학대 행위자까지 아들, 며느리에서 점차 배우자로 변하고 있다. 이는 고령화 추세와 황혼이혼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의 ‘노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행위자중 아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55.5%에서 지난해 36.1% 19.4%포인트 감소했다.

2번째로 많았던 ‘며느리’의 비중도 11.8%에서 4.3% 7.5%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딸’의 학대비중은 10.4%에서 10.7%로 소폭 증가했다. 특히 배우자에 의한 학대는 7.3%에서 15.4%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노년 남성들은 자존감을 잃고 믿었던 가정에서 까지 홀대를 당하자 급기야는 ‘홀로서기’ 황혼이혼을 선택했을 것이다. 노년 남성들이 직장을 은퇴한 후 사회적 자존감을 잃은 남성들은 가정에서까지 홀대받고 찬밥신세가 되니 극단적인 결심을 했을 것이다.

여성에 비해 남성들은 일을 통해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은퇴 후 자존감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경제력을 이유로 가족에게까지 무시당하다 보니 이를 견디지 못하고 홀로서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뿌리 내린 ‘가부장 문화’와 ‘고정적인 성(性)역할’이 노년 남성의 황혼이혼을 부추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한 남성은 일을 하고 여성은 가정을 지킨다는 전통적인 성 역할이 노년에 이르러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억눌렸던 갈등이 폭발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남성들이 가족부양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면서 가정 내에서 자리를 잃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분리된 공간에서 각자의 역할에 얽매였던 것이 노년의 비극을 부른 것이며 젊은 시절부터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지속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던 탓이기도 하다.

황혼기에 접어든 노부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갖고 있던 서로에 대한 기대와 역할을 깨고 미래를 함께 계획해야 한다. 과거 노인들의 수명이 짧을 때는 은퇴 후 부부 갈등을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됐지만, 지금은 적어도 은퇴 후 20~30년을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따라서 ‘일은 남성, 가정은 여성’이라는 고정적인 성 역할 개념을 완전히 깨뜨려야 한다.

거기다 연령에 따라 변하는 역할과 관계의 변화를 부부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성은 권위주의적 문화를 버리고, 여성들도 변화한 남성의 역할과 환경을 인정하고 함께 노후를 만들어가야 한다.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율이 계속 오르다가 작년 전체 이혼 건수 중 30%를 돌파했다. 요즘 황혼이혼은 남편이 먼저 요구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은퇴한 뒤 집에서 천덕꾸러기가 되느니 혼자 사는 편이 낫다고 결단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내들은 ‘이 나이에 남편 수발들랴’싶어 동의한다.

최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밝힌 이혼상담을 요청한 60세 이상 노년 남성은 2015년 524명에 달했다. 57명에 그쳤던 5년 전에 비해 10배 가까이로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노년 여성 이혼 상담자도 253명에서 996명으로 네 배 가까이로 늘어났지만 남성의 증가 추세가 두드러졌다. 과거 황혼이혼 상담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변화다.

이혼은 결코 불행한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결단하고 결심하기 전에 부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전문가 상담이나 관련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보기 바란다. 제3자를 통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문제해결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살아서도 한방을 쓰고, 죽어서도 한방을 쓰는 게 부부라는 말은 옛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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