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진보와 꼴통 보수, 누가 더 나쁜가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입력 : 2016. 05. 17(화) 16:45
계절의 여왕 오월,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이다. 오월은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0일 바다 식목일·유권자의 날, 11일 입양의 날, 14일 부처님 오신 날, 15일 가정의 날·스승의 날, 16일 성년의 날, 18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19일 발명의 날, 20일 세계인의 날, 21일 부부의 날, 25일 방재의 날, 31일 바다의 날 등 좋은 날은 모두 모여 있는 듯하다. 오월은 참으로 소중한 감사와 사랑,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의 계절이다.
푸른 신록의 계절은 엄동설한 눈보라를 이겨내고 춘삼월에 새싹을 틔워서 떡잎으로 자라고 푸른 잎과 줄기, 꽃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온 천지를 푸름으로 물들이고 온갖 생명들을 키울 수 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나는 푸른 나무들의 새싹을 생각해 본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터 나온다. 어떤 씨앗은 제 껍질을 머리에 이고 새 떡잎이 올라온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처음 나온 새싹은 연둣빛으로 파랗지만 새싹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움터 나오는 새싹의 여린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싸가지가 없으면 기르나 마나다. 곡식도 싸가지가 있어야 하지만 사람도 싸가지가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싸가지가 없으면 커서도 알곡 없는 쭉정이가 된다. 논에 벼를 심으면 부지런히 김을 매야 한다. 김맨다는 말은 논밭에 난 잡초를 뽑아 준다는 말이다. 논에서 김맨다는 것은 피를 뽑아 주는 것을 말한다. 열심히 김매면 어느덧 논에는 이삭이 팬다. 이삭이 패면 추수의 보람을 기대할 수 있다. 처음 싹터 나온 이삭을 싹수라고 한다. 싹수가 노랗게 나오면 싸가지가 없는 것처럼, 길러 봐야 소용이 없다. 즉,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장래성이 없다는 뜻이다. 싸가지는 있어야지, 없으면 안 된다. 싹수는 파래야지, 노라면 안 된다.
팬 이삭은 햇볕을 받아 점차 알곡으로 영근다. 처음에는 파랗던 이삭은 점차 노랗게 익어 가고, 벼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익을 대로 익어 고개를 푹 숙이면 추수(秋收)를 한다. 벼를 베어 알곡을 터는 탈곡(脫穀)을 하고 난 볏단은 묶어세운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그래도 미처 거두지 못한 이삭이 떨어져 있다.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을 이삭줍기라고 한다.
원래는 움터 나오는 새싹의 여린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 인데,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라는 강원도와 전라도의 방언으로 발전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싸가지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의견이나 주장의 내용보다도 표현하는 말이나 태도가 예의도 없고 경우에 맞지 않을 때, ‘싸가지 없다’고 생각한다. 싸가지가 없고 싹수가 노라면 그 인생의 장래는 보나마나다. 앞날이 푸른 청춘이 싸가지 없으면 개인의 불행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꼭 나이에 관계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 사회 각 분야에, 인생 도처에 나이가 많아도 싸가지 없는 진보도 많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꼴통 보수들도 우리 사회에는 많이 있다. 강경 보수, 냉전(冷戰) 보수, 극우(極右) 보수 속에 꼴통 보수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동족상잔(相殘)의 전쟁과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태어난 극우 보수 속에도 예의를 알고 인간미가 넘치는 합리적인 보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야만 보수 또는 꼴통 보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취적이고 진보적이어야 할 청춘 중에도 꽉 막힌 꼴통 보수가 있다.
평생 농사일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보면 저런 사람은 저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라’고 평소에 늘 가르치셨다. 나는 육십이 넘은 이 나이에도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가기도 하지만, 싸가지 없는 진보를 보거나 꼴통 보수를 만나면 ‘정의감’이라는 명분으로 분노하기도 하고 마음에 새겨두기도 한다. 그러면서 ‘싸가지 없는 진보와 꼴통 보수 중에서 누가 더 나쁠까’를 화두(話頭)처럼 꽤 오랜 세월 생각해 왔다.
‘하루 길을 가면 중도 보고 소도 본다’는 속담처럼 나는 대체로 하루 길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화두가 되었을 것이다. 꼴통 보수가 막강한 권력이나 금력을 장악했을 때의 위험성과 일반 국민들에게 미치는 고통과 비극도 상상을 초월한다. 독재하고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불가피한 조치라고 합리화하고 우겨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꼴통 보수들의 잘못된 신념은 값 비싼 대가를 치르기는 하지만, 그 수명(壽命)은 역사의 진보와 민중의 저항에 의하여 길게 가지 않는다. 그런데 싸가지 없는 진보가 권력과 금력 등 국가사회적인 지배력을 장악하면 수명이 길기 때문에 그 해악(害惡)과 손실은 더욱 크다.
합리적인 진보와 개혁적인 보수가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상생과 협력의 길을 갈 때, 우리 사회는 희망이 넘치는 건강하고 평화로운 공동체가 될 것이다.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해야 갈 길이 보이고 살 길이 열린다.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푸른 신록의 계절은 엄동설한 눈보라를 이겨내고 춘삼월에 새싹을 틔워서 떡잎으로 자라고 푸른 잎과 줄기, 꽃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온 천지를 푸름으로 물들이고 온갖 생명들을 키울 수 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나는 푸른 나무들의 새싹을 생각해 본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터 나온다. 어떤 씨앗은 제 껍질을 머리에 이고 새 떡잎이 올라온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처음 나온 새싹은 연둣빛으로 파랗지만 새싹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움터 나오는 새싹의 여린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싸가지가 없으면 기르나 마나다. 곡식도 싸가지가 있어야 하지만 사람도 싸가지가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싸가지가 없으면 커서도 알곡 없는 쭉정이가 된다. 논에 벼를 심으면 부지런히 김을 매야 한다. 김맨다는 말은 논밭에 난 잡초를 뽑아 준다는 말이다. 논에서 김맨다는 것은 피를 뽑아 주는 것을 말한다. 열심히 김매면 어느덧 논에는 이삭이 팬다. 이삭이 패면 추수의 보람을 기대할 수 있다. 처음 싹터 나온 이삭을 싹수라고 한다. 싹수가 노랗게 나오면 싸가지가 없는 것처럼, 길러 봐야 소용이 없다. 즉,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장래성이 없다는 뜻이다. 싸가지는 있어야지, 없으면 안 된다. 싹수는 파래야지, 노라면 안 된다.
팬 이삭은 햇볕을 받아 점차 알곡으로 영근다. 처음에는 파랗던 이삭은 점차 노랗게 익어 가고, 벼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익을 대로 익어 고개를 푹 숙이면 추수(秋收)를 한다. 벼를 베어 알곡을 터는 탈곡(脫穀)을 하고 난 볏단은 묶어세운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그래도 미처 거두지 못한 이삭이 떨어져 있다.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을 이삭줍기라고 한다.
원래는 움터 나오는 새싹의 여린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 인데,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라는 강원도와 전라도의 방언으로 발전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싸가지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의견이나 주장의 내용보다도 표현하는 말이나 태도가 예의도 없고 경우에 맞지 않을 때, ‘싸가지 없다’고 생각한다. 싸가지가 없고 싹수가 노라면 그 인생의 장래는 보나마나다. 앞날이 푸른 청춘이 싸가지 없으면 개인의 불행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꼭 나이에 관계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 사회 각 분야에, 인생 도처에 나이가 많아도 싸가지 없는 진보도 많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꼴통 보수들도 우리 사회에는 많이 있다. 강경 보수, 냉전(冷戰) 보수, 극우(極右) 보수 속에 꼴통 보수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동족상잔(相殘)의 전쟁과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태어난 극우 보수 속에도 예의를 알고 인간미가 넘치는 합리적인 보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야만 보수 또는 꼴통 보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취적이고 진보적이어야 할 청춘 중에도 꽉 막힌 꼴통 보수가 있다.
평생 농사일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보면 저런 사람은 저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라’고 평소에 늘 가르치셨다. 나는 육십이 넘은 이 나이에도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가기도 하지만, 싸가지 없는 진보를 보거나 꼴통 보수를 만나면 ‘정의감’이라는 명분으로 분노하기도 하고 마음에 새겨두기도 한다. 그러면서 ‘싸가지 없는 진보와 꼴통 보수 중에서 누가 더 나쁠까’를 화두(話頭)처럼 꽤 오랜 세월 생각해 왔다.
‘하루 길을 가면 중도 보고 소도 본다’는 속담처럼 나는 대체로 하루 길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화두가 되었을 것이다. 꼴통 보수가 막강한 권력이나 금력을 장악했을 때의 위험성과 일반 국민들에게 미치는 고통과 비극도 상상을 초월한다. 독재하고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불가피한 조치라고 합리화하고 우겨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꼴통 보수들의 잘못된 신념은 값 비싼 대가를 치르기는 하지만, 그 수명(壽命)은 역사의 진보와 민중의 저항에 의하여 길게 가지 않는다. 그런데 싸가지 없는 진보가 권력과 금력 등 국가사회적인 지배력을 장악하면 수명이 길기 때문에 그 해악(害惡)과 손실은 더욱 크다.
합리적인 진보와 개혁적인 보수가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상생과 협력의 길을 갈 때, 우리 사회는 희망이 넘치는 건강하고 평화로운 공동체가 될 것이다.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해야 갈 길이 보이고 살 길이 열린다.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ihonam@naver.com
|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