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롯기 동맹. 동반 4강 진출의 신화를 쓸 수 있을까.
프로야구 팬들에게 '엘롯기 동맹'은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어 같이 쓰이는 단어다. 프로야구 최고의 인기팀으로 인정받는 LG-롯데-KIA 세 팀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엘롯기 동맹의 탄생 기원은 슬프다. 단순히 인기가 많은 팀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 매시즌 동반으로 하위권에 처져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한 암울한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2002년 LG는 삼성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준 이후 10년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롯데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가을잔치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KIA는 그나마 선방했다. 2002년부터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2006년에도 준플레이오프에 나갔다. 하지만 우승은 커녕 한국시리즈 진출조차도 없었다. 해태 왕조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다.
또, 세 팀이 2000년대 사이좋게 번갈아가며 꼴찌를 해 더욱 돈독한 인연을 쌓을 수 있었다. 롯데가 2001년부터 4년 연속 최하위였고, 2005년 KIA, 2006년 LG, 2007년 KIA. 2008년 LG가 꼴찌를 했다. KIA가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롯데가 2008년부터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위력을 과시했지만 엘롯기 동맹의 강인한 인상은 아직도 야구팬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랬던 엘롯기 동맹이 올해는 완벽하게 해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니, 새로운 의미의 엘롯기 동맹이 등장할 것 같다. 세 팀이 동시에 4강에 드는 꿈의 시나리오가 완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작성된다면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세 팀이 가을잔치에 손을 잡고 나가게 되는 것이다.
지난 95년 롯데가 정규시즌 2위, LG가 3위, 해태(KIA 전신)가 4위를 차지했지만 당시 3위와 4위의 승차가 3경기 이상이면 준플레이오프가 열리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에 롯데와 LG만 가을야구를 할 수 있었다.
세 팀 모두 최근 분위기가 뜨겁다. 먼저 3위 LG. 8연속 위닝시리즈의 상승세다. 감독들의 입장에서는 연승보다 좋은 게 연속 위닝시리즈라고 한다. 그만큼 팀이 안정된 전력을 갖췄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선발, 불펜 모두가 튼튼하고 타선의 신구조화가 돋보여 당분간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4위 KIA는 파죽의 7연승을 달리고 있다. 다소 기복이 있지만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상대팀 투수들이 벌벌 떨 정도로 무서운 KIA 타선이다. 마운드도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어 하위권으로 처질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5위 롯데도 꾸준하다. 외국인 원투펀치 유먼과 옥스프링이 버티고 있어 연패에 빠질 위험이 적다. 또 김대우 정 훈 신본기 등 젊은피의 가세로 자연스럽게 경쟁구도로 흘러가면서 짜임새가 생겼다.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얻은 가을야구 DNA도 무시할 수 없는 롯데의 강점이다.
세 팀의 전력과 상승세도 무섭지만 외부 환경도 세 팀 상승세의 호재다. 포스트시즌 진출의 보증수표로 여겨졌던 두산과 SK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 2위 넥센이 최근 하락세인데다가, 히어로즈는 포스트시즌 진출 경험이 없다는 게 약점으로 지적된다. 선두 삼성도 최근 한국시리즈 2연패를 차지한 그 전력이 아니라는 평가다.
물론,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았다. 변수가 많은 장기레이스인 만큼 세 팀의 동반 4강 진출을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분위기상 그 어느 해보다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다. 만약, 세 팀의 포스트시즌 동반 진출이 이뤄진다면 흥행폭발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명실공히 최고의 티켓파워를 가진 세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맞붙는다면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KIA-LG전은 90년대부터 프로야구 최고의 흥행카드였다.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KIA와 롯데는 전통의 영호남 라이벌이다. LG와 롯데도 만났다 하면 치열한 승부를 펼치는 라이벌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