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고를 울린 최용수(40) FC서울 감독이 진이 다 빠진 표정으로 인터뷰실에 걸어 들어왔다. 강도가 세도 너무 센 '특급 롤러코스터'를 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서울은 21일 오후 7시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궈안(중국)과의 2013 AFC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홈경기에서 후반에만 3골을 몰아치며 3-1 역전승을 거뒀다.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경기였다. 지난 14일 치른 16강 1차전 베이징 원정에서 0-0으로 비긴 서울은 8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2차전 홈경기 승리가 필요했다.
홈경기라고 해서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정 다득점 원칙'이라는 불리함도 함께 감내해야 했다. 0-0으로 정규시간을 마치면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승부를 이어갈 수 있지만 상대가 단 한 골이라도 득점을 올릴 경우 서울은 무조건 1점 차 이상 승리를 거둬야 하는 상황이었다.
서울은 '무실점 경기'를 2차전 최우선 목표로 내걸었다. 최 감독도 하루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선제골을 내주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 수비를 견고히 하면서 역습 찬스를 살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피하고 싶다던 '최악의 상황'은 이날 경기가 시작된지 9분 만에 현실이 돼 최 감독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전반 9분 수비를 하던 김치우가 김용대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기 위해 머리로 떨군 공을 후방에서 쇄도하던 프레데릭 카누테가 가로채 선제골로 연결시켰다.
최 감독은 "경기 시작 전 무엇보다도 선 실점만은 막자고 선수들과 약속을 했었는데 우려했던 상황이 상당히 이른 시간에 벌어지고 말았다"며 "전반전을 마친 뒤 선수들에게 최대한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했다. 침체돼 있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암울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수비수 김치우를 빼고 공격수 김현성을 투입시키며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최 감독의 선택은 탁월했다. 김현성이 들어간 뒤 서울의 공세는 더욱 매서워졌고 이내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냈다. 후반 14분 몰리나가 문전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잔뜩 고무된 분위기에서 팀의 해결사 데얀이 키커로 나섰다. 서울 홈 팬들은 이미 골이 동점골이 나오기라도 한 듯 환호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서울을 향해 쉽사리 미소를 짓지 않았다. 골키퍼를 완전히 속인 데얀의 강슛이 왼쪽 골대를 강타하며 골라인 밖으로 튀어나가고 말았다.
최 감독이 두 번째 롤러코스터를 타는 순간이었다.
경기를 승리로 마쳤지만 당시 상황을 떠올린 최 감독은 또다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2골 이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후반 14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추격 찬스를 맞기란 쉽지가 않다"며 "원래 페널티킥 상황이 나오면 (김)진규가 1번 키커로 나서기로 했었다. 2번이 데얀이었다. 그런데 진규가 양보를 했는지 데얀이 골을 차더라. 오늘 같이 비중있는 경기에서 데얀이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아마 앞으로 데얀이 페널티킥을 차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농담 섞인 독설을 날렸다.
이미 두 차례나 지옥을 맛 본 최 감독에게도 봄날은 찾아왔다. 데얀의 페널티킥 실축이 나온 지 불과 1분 뒤인 후반 16분 윤일록이 왼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아디가 차 넣으며 동점골을 터뜨렸다.
골맛을 본 서울은 더욱 기세를 올렸고 후반 25분과 후반 추가시간 윤일록과 고명진이 2골을 더 추가하며 3-1 승리를 완성했다.
최 감독은 "힘든 경기였지만 결국 K리그의 자존심을 지켰다"며 "동점골만 넣게 되면 역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얼마든지 경기를 뒤집고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축구가 아닌가"라며 고전 끝에 거둔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2011년에 이어 2년 만에 대회 8강에 올라선 서울은 올 시즌 정규리그와 AFC챔피언스리그 동시 우승을 노리고 있다.
최 감독은 "2009년과 2011년 이 대회 8강에 올랐을 때도 현장에 있었다. (그때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올해는 그때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며 "선수들도 AFC챔피언스리그에 대한 욕심을 지니고 있다. 32개 팀 가운데 8개팀 안에 든 만큼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8강 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알렉산더 스타노예비치(40) 베이징 감독은 "전반전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전 들어 수비들의 실수가 잦았다. 지난 주말에 치렀던 리그 경기로 인해 체력 소모가 컸던 것 같다"며 "2명이 퇴장당한 데 대해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팀의 실수도 많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서울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이날의 완패를 인정했다.

호남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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