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국 야구가 가장 힘겨운 여건에서 치러지는 대회가 될 전망이다. LA 다저스 입단이 확정된 류현진은 구단에서 출전을 허락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또 다른 에이스 김광현은 어깨 부상 재활중이다. 이미 봉중근의 결장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들 두 대표 좌완 투수들의 공백은 너무도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위기는 언제나 기회와 맞닿아 있는 법. 어려움을 이겨내 줄 또 다른 선수들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한국 야구는 물론 개인의 성취를 위해 현재의 위기가 오히려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민(KIA)은 2013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다. 그의 꿈은 메이저리그를 향해 있다. 이미 메이저리그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구위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린다면 훨씬 안정적이고 든든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WBC는 그런 윤석민에게 최고의 시험무대다. 현역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평가가 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민은 이번 대표팀의 기둥이다. 팀을 어려움 속에서 구출해 낸다면 그의 투구는 더욱 빛이 날 수 있다.
좋은 기억도 갖고 있다. 지난 2009년 2회 대회 준결승전서 미구엘 카브레라, 바비 어브레이유 등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했던 베네수엘라전에 선발 등판, 6.1이닝 동안 7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된 바 있다. 윤석민의 이름을 메이저리그에 알린 첫 기회였다. 이번 대회는 지금의 가치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무대다.
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윤석민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임팩트다. WBC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장원삼(삼성)에게 WBC는 명예 회복의 기회다. 좌완 에이스들이 줄줄이 팀을 떠난 상황. 그의 왼쪽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그리고 또 한가지. 골든글러브서 쌓인 앙금을 풀 수 있는 최적의 찬스다. 장원삼은 다승왕과 팀 우승 프리미엄을 안고 황금 장갑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208.2이닝을 던지며 2.20의 평균자책점으로 이 부문 1위를 차지한 나이트(넥센)의 활약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팬들은 그런 장원삼의 수상에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한 현역 감독은 “감독들에게 둘의 기록을 놓고 한명만 택해야 한다고 묻는다면 답이 간단하게 나오지 않겠느냐”는 말로 평가를 대신하기도 했다.
장원삼에게 WBC가 중요한 이유다. 가슴의 태극 마크를 빛나게 만들어낸다면 그간 쌓인 모든 것들을 털어낼 수 있다. 특히 그는 좌투수에 약점이 있는 일본전에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전이 우리에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인지는 말 해봐야 입만 아픈 수준. 봉중근이 2회대회 일본전 호투를 발판으로 ‘봉의사’로 우뚝 선 것 처럼, 장원삼에게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될 것이다.
윤석민과 장원삼 뿐 아니다. 김진우 유원상 홍상삼 등 세계 무대에 제대로 첫 선을 보이게 될 선수들에게 WBC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실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대회가 끝나면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의 나이와 FA 요건을 확인하느라 열을 올린다. 류현진을 통해 우리는 한국 야구도 세계를 향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WBC는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발판이다.
돌이켜보면 2회 대회 멤버는 1회 대회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선배들 보다 훨씬 단단하고 당당했다. 노력과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위기를 말할 수록 선수들의 마음 속에서 독기가 자라나 준다면 이번에도 얼마든지 주변의 평가는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호남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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