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떠난 뒤에 더 좋은 버스 온다고 했다. 놓친 기회를 위로삼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삼성화재에게는 이 말이 무색하다. '괴물' 가빈을 보내고 '새로운 괴물' 레오를 맞이했다. 위로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벌써부터 대박의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삼성화재는 3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2~2013 V-리그 남자부 개막전에서 KEPCO를 3-1(26-28 25-23 26-24 25-22)로 꺾고 새 시즌을 산뜻하게 출발했다.
지난 시즌 V-리그를 '가빈 천하'로 만든 그 가빈이 더 큰 무대를 향해 팀을 떠나면서 울상짓던 삼성화재다. 팀 공격에 60% 이상을 담당하던 가빈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개막 전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도 LIG손해보험의 까메호가 가빈의 뒤를 잇는 '특급 용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신치용 감독은 주변의 평가를 묵묵히 지켜봐야 했다. 승부욕 강한 신 감독의 속은 적잖이 쓰렸을 터. 하지만 신 감독은 "목표는 우승이다.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내겠다"는 말로 자신감을 대신했다.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신 감독에게는 레오가 있었다.
레안드로, 안젤코, 가빈을 이어 삼성화재의 '괴물' 외국인 선수 계보를 이은 레오는 데뷔 전에서 51점을 쏟아부었다.
가빈이 지난해 2월 LIG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세운 한 경기 최다득점(58점)은 경신 못했지만 그에 버금가는 기록이다. 가빈은 3년 차에 올린 기록이지만 레오는 첫 경기에 세웠다. 더욱 의미가 깊다.
가장 먼저 괴물이라 불렸던 레안드로도 2006~2007시즌 데뷔 전에서 49점을 냈다. 3년 전 2009~2010시즌 가빈은 현대캐피탈과의 첫 경기에서 43점을 올렸다. 첫 경기만 비교하자면 레오는 레안드로와 가빈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신 감독은 경기 후 레오에 대해 "레오는 가빈을 뛰어넘을 선수다"며 극찬했다. 그는 "레오가 가빈이라는 이름값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감각적인 기술이나 배구에 대한 센스와 이해도는 가빈보다 좋다"며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206cm의 키에 몸무게가 84kg 밖에 나가지 않는 레오는 가빈과 같은 파워있는 플레이를 펼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남미 출신(쿠바) 특유의 유연성에 높은 타점을 갖췄다. 스파이크와 블로킹 높이는 각각 365cm, 340cm에 이른다.
대각선으로 찍어내리는 공격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가빈과 비슷했지만 활시위처럼 휘었다가 강하게 때려내는 후위공격은 더 훌륭했다. 레오는 이날 20개의 후위 공격(전위 30개)을 성공시켰다.
레오는 앞서 삼성화재에서 활약하며 '괴물' 타이틀을 얻었던 KEPCO의 안젤코와의 화력 대결에서도 완승을 거뒀다.
안젤코는 시즌 1호 트리플크라운(블로킹 3개, 서브에이스 3개, 후위공격 5개)을 달성하며 31점을 올렸지만 혼자서 51점을 올린 레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특히 레오는 3세트 18-19로 팀이 끌려가던 상황에서 안젤코의 회심의 후위공격을 막아낸 뒤 연이은 동작으로 백어택을 내려꽂은 장면은 '왜 레오인가'를 여실히 입증했다.
신치용 감독은 "이제 레오는 22살이다.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시즌 중반을 지나면 위력을 더욱더 발휘할 것"이라고 파란을 예고했다.
레오는 신치용 감독이 공들여 발굴해 냈다.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 아니다.
삼성화재 관계자에 따르면 신 감독은 레오를 찾기 전까지 6명의 선수를 테스트 해보고 돌려보냈다. 선수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2차례 비행기를 탔고 전력분석관이 대신 갔던 것까지 포함하면 10차례 이상 고르고 골랐다.
외국인 선수를 발굴하는 능력만큼은 신 감독의 혜안을 따라올 자가 없다. 신 감독의 손을 거치면 모두 '괴물'로 거듭났다.
2007년 '원조괴물' 안젤코(29)가 그랬고, 2009년에는 '괴물' 가빈이 나왔다. V-리그를 강타한 2명의 괴물은 모두 신감독에게서 탄생했다. 그런 신 감독의 눈에 든 레오다.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호남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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