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헌정 질서를 유린한 신군부 반란의 주역 전두환씨가 23일 90세 일기로 별세했다.

5·18 유공자 단체와 시민사회는 학살 책임에 대해 끝내 사죄하지 않은 전씨에 대해 격노하며 어떠한 국가 차원의 예우도 단호히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살아남은 책임자들이 하루빨리 진실을 고백해 더 늦기 전에 진실을 온전히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5·18민주유공자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와 5·18기념재단은 기념재단이 23일 오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전두환씨 사망 관련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5 ·18단체 "전두환 죽음이 진실을 묻을 수 없다"



5·18 민주유공자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와 5·18기념재단은 이날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 전복과 5·18 학살 주범 전두환이 사과 없이 사망했다. 오월 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만고의 대역죄인 전씨의 범죄 행위를 명명백백 밝혀 역사 정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살 처벌 책임자로서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상 규명은 진행 중이고 특히 발포 책임자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장에 대한 입장에는 "터무니 없다. 일고의 가치 없다"고 답했다. 국립묘지 안장 문제에 대해서도 "현행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전씨가 내란죄로 처벌 받았기 때문에 안장될 수 없다"고 결연히 말했다.

회견장엔 '전두환 죽음이 진실을 묻을 수 없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전씨를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재판정에 세운 고소인 조영대 신부는 "지난 3년 넘도록 법정 다툼을 벌여왔는데, 결국 결심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로 떠나 허망하다"며 "뉘우침과 역사적 정리 없이 떠나 더욱 원망스럽고 한스럽다"며 "수 많은 만행들을 놓고 본다면 국가장(國家葬)은 안 된다"고 했다.

조 신부측 법률대리인 김정호 변호사는 " 피고인 전두환은 국민 앞에 반성·사죄 없이 떠나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며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고 평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사망한 2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5월 열사들을 추모하는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핏빛 항쟁 현장' 찾은 시민들 "사죄도 없이…"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 흔적과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은 '최후 항쟁지' 옛 전남도청 일대를 찾은 시민들도 사죄 없이 떠난 전씨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지행순(70·여)씨는 "마지막이 가까워오면 보통 지난 날을 돌아보기 마련인데,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당사자가 사과도 없이 생을 마감해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했다.

김광현(50)씨는 "여전히 목격자와 유족 등은 고통과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 속에 상흔을 지닌 채 살고 있는데, 가해자는 없고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다. 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는 전두환이 허망하게 떠나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전씨 사망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박정민(32)씨는 "실질 책임자로 지목되는 사람은 사과도 없이 떠났지만, 진상 규명은 계속돼야 한다"며 "여러 기록물과 증언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이날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는 참배객 100여 명이 다녀가 열사들의 넋을 기렸다. 한 참배객은 "진실을 밝혀낼 후세들의 책임이 더욱 무겁다"고 심정을 전했다.



◆시민·노동·교육단체 한목소리로 "국가적 예우 반대"



광주 지역 2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광주는 학살자 전두환의 편안한 죽음에 분노한다"면서 "민주적 헌정 질서 파괴자인 전씨의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한다"고 했다.

이어 "5·18은 군사 쿠데타 세력의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주인인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게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정치권은 하루 빨리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기로 합의하고, 여전히 왜곡·폄훼가 끊이지 않는 5·18의 진실 규명을 위해 나서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전두환이 저질렀던 수많은 악행에 대해 어떤 사과도, 참회도 없이 사망했다. 지옥에 가서라도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며 "그의 입에서 나왔어야 할 진실, 밝혀졌어야만 했던 진상은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이 됐다. 늦었지만 더욱 철저한 조사로 광주시민 학살에 대한 진상을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도 성명을 내고 23일 "전두환을 향한 국가 차원의 그 어떤 예우와 지원에 대해 반대한다"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에 큰 죄를 저지른 죄인으로서 희생자와 시민 앞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광주에서 열리는 민형사 재판에 성실하게 임해야 할 사람이 끝내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끝까지 사죄와 일말의 뉘우침 없이 생을 마감한 학살자로 인해 발생한 폐해를 공동체에 널리 알리고, 기록·교육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 정치권 "면죄부 없다" "예우 안 된다"



지역 정치권도 역사적 책임을 등진 전씨를 일제히 규탄, 국가 차원의 장례 예우를 반대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성명을 통해 "역사의 죄인에게 죽음이 결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며 "전두환이 역사·국민에게 지은 무거운 죄는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고, 죄상을 영원히 기록해 후손 만대에 교훈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국가와 국민에 반역한 이에게 어떠한 애도도 적절치 않다. 150만 시민은 국가장 등 어떠한 국가적 예우도 반대 입장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미완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오월 광주의 당당한 발걸음은 멈춤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장휘국 광주시 교육감은 "역사 앞에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은 전씨의 죽음에 대한 그 어떠한 국가적 예우도 반대한다"면서 "학생들이 많은 사람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한 5·18과 민주주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그 정신과 가치를 계승할 수 있도록 가르치겠다"고 밝혔다.

광주·전남·전북 지역구 국회의원 27명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애도보다는 허망하고 분한 마음이 앞선다"며 "전두환은 마지막 순간까지 반성도 사죄도 없었고 법원이 처벌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아울러 "역사의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전두환의 마지막 길이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이유 만으로 국가장의 예우를 받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기동취재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