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고객들에게 일상적인 '갑질'에 폭행과 성추행 등 범죄에까지 노출돼 있는 방문노동자들은 "우리 편은 없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고객들과의 마찰 과정에서 억울한 일이 생겨도 말할 창구가 없고, 말하더라도 철저한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어서다.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 등 대여 제품의 점검서비스를 하는 '코디'로 일하고 있는 A씨(43)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매뉴얼 같은 것이 필요하지만 전혀 없다"면서 "콜센터도 고객을 위한 것이지 우리 목소리를 들으려는 게 아니다. 고객의 불만이 접수되면 우리 얘기는 듣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고객의 불만사항이 많을 경우 해당 지국의 '점수'가 낮아지는 것을 우려하는 사측은 일의 진위나 시비를 따지기 보다는 빠르게 일을 무마하는데 급급하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 역시 될 수 있으면 고객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하고, 문제가 생겨도 덮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코디' 경력 10년차인 이모씨(54)는 "연차가 쌓일 수록 고객을 대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약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면서 "고객이 뭐라고 얘기하면 반사적으로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방문노동자들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김효영 예스코 도시가스 분회장(49)은 "검침하러 들어갔을 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돼도 점검 실적을 채워야만 하기 때문에 일을 안 할수가 없다"면서 "범죄 정도의 일이 아닌 이상 우리 얘기를 할 수 있는 곳도 없기 때문에 고객에게 '항의'를 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재가요양 보호사로 근무하는 B씨도 "우리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고객'도 우리가 알아봐야 한다. 보호대상자를 잃으면 결국 우리가 손해일 수밖에 없다"며 "일부 재가센터의 경우 대상자(고객)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요양사를 해고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전했다.

이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고객들을 위한 '콜센터'처럼 노동자들 역시 근무 도중 발생한 애로사항 등을 드러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재가 요양보호사나 가스검침원 등 일부 직종의 경우 '2인1조 근무'가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실제 울산 지역 가스검침원의 경우 최근 2인1조 근무를 도입하면서 업무만족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평이다. 재가요양의 경우 목욕 등 육체적 노동강도가 높기 때문에 '고객 갑질' 문제가 아니더라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냉정하기만 하다. 비용 등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측이 방문노동자들의 요구를 당장 수용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최민 작업환경의학전문의는 "민간기업이 노동자들의 안전문제를 비용으로만 생각하면 문제는 해결되기가 어렵다"면서 "문제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 고객의 경우라도 2인1조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들의 다양한 모든 사례들을 당장 법으로 규율하기에는 쉽지가 않다"며 "대신 각 직종별로 업무 매뉴얼 등을 확립해 놓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사업주를 처벌하는 식으로 규율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균도 노무사도 "사측이 노동자들을 '고객 갑질' 등의 위험에서 보호해야 할 사회통념상 최소한의 도의적인 책임은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업에 모든 책임을 떠넘겼을 때의 부작용(서비스 비용 상승)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만큼, 사회 전체적인 '똘레랑스'(관용)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변해야 '갑질'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갑질'을 한다는 것은 결국 그 일을 하는 노동자를 하대하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린 것"이라면서 "비정규직·계약직 등 노동조건과 상황이 불안정할 수록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고, 그러한 일들도 잦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다. 사업장 규모, 업종, 고용 형태와 노동자의 학력·성별 등 다양한 차별 기준이 존재한다"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줄고 노동자 간의 갭이 줄어들 수록, '갑질'과 같은 문제는 해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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