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에서 15년 동안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를 관리하고 있는 A씨(54·여)는 얼마 전 업무 중 생각지도 못한 모욕을 당했다. A씨의 고객 중 의부증이 심한 여성 고객 때문이다. 남편이 없는 시간에 방문 약속을 잡는데 점검 도중 남편이 집에 오면 A씨를 거칠게 밀치며 집밖으로 쫓아냈다. 하루는 약속된 시간에 방문했지만 부인이 아닌 남편이 문을 열어줬는데 어느 순간 집에 들어온 부인은 음식물 쓰레기를 A씨에게 쏟아부었다.



방문 노동자들이 감정 노동은 물론 모욕이나 폭행과 성희롱 등 정신적·육체적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처럼 설치·수리 현장 기사, 재가요양보호사, 가스 점검·검침원, 수도검침원, 다문화 방문 지도사, 방문 간호사, 학습지 교사 등 고객의 개인 공간이나 사무 공간 등을 이동,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대부분의 방문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이라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보건의료노조·서비스연맹이 지난 11월 공개한 '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방문노동자의 90% 이상이 고객에게 모욕적인 비난이나 고함, 욕설을 들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고객의 사적 공간에서 대부분 동료 없이 1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탓에 고객으로부터 정신적, 성적 폭력을 당하고, 신체적 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코디' 경력 8년차 B씨(52?여)는 "고객들과 시간을 맞추는 것 자체가 힘들다. 일방적으로 스케줄을 취소하거나, 방문 몇 시간 전에 전화가 와서 다음으로 미루는 경우도 다반사"라며 "고객 전화 번호가 바뀌어 전화를 못하고 방문했더니 욕설을 하고 멱살까지 잡았다. 경찰이 오고 나서 상황이 마무리 됐다"고 아찔했던 기억을 돌이켰다.

A씨는 "약속을 잡고 비데 점검을 위해 방문했는데,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고 그냥 가라고 하더라. 업무 때문에 기다렸더니 사생활을 침해 당한 기분이라면서 항의를 받은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고객 집에 방문했다가 성희롱 등을 당한 여성 방문 노동자들도 많다. A씨는 "성인 남성이 몸에 달라붙는 속옷만 입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에서 코디를 했던 오모씨는 "'술 한잔 하고 가라', '뒤태가 예쁘네' 하며 위아래로 훑어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호소했다.

재가요양 근무를 10년 동안 하고 있는 C씨는 "하루는 환자를 보살피기 위해 갔는데, 환자 대신 보호자인 성인 남성이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너무 놀라 다음날 일을 그만뒀다"고 토로했다.

육체적인 고충도 따른다.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715명(95.7%)이 작업 관련 근골격계질환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최근 1년간 77.8%가 사고성 재해?감영성 질환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신적, 육체적 고충을 겪는 방문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회사에서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실태 조사 결과에서 방문 노동자 중 146명(9.5%)만이 회사에 알린다고 답하는 등 공식 경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광역시에서 '코디'를 했던 오씨는 지난해 4월 방문한 가정에 있던 큰 개에 왼쪽 다리가 물려 넘어지면서 오른쪽 어깨뼈가 부러지고, 오른쪽 신경 손상이 심하게 오는 등 크게 다쳤다. 하지만 회사는 코디 보험을 소개해주는 것 외에는 따로 대응을 해주지 않았다. 오씨는 "실망을 하고 회사에서 나왔다. 아직도 손상된 오른 손 신경 때문에 불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경력이 쌓이면서 고객과는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피해가는 방법도 알게 됐다"며 "회사가 우리 편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다. 성추행 같은 일이 생겨도 회사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노동자들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판국"이라고 비난했다.

재가요양 근무자 D씨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우리가 피해를 봐도 회사는 고객들 편이다. 우리가 회사에 고충을 토로해도 우리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라. 특별히 교육을 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했다.

도시가스 검침원 최모씨는 "3년 전 노조가 만들어진 뒤 다치면 산재 처리가 된다. 하지만 이것도 눈에 보이게 팔이나 다리가 부러져야 해당된다. 관절염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고통은 산재 처리가 불가능하다"며 "다른 회사는 이런 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회사마다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현실에 최민 작업환경의학전문의는 "명백한 폭력 사건의 가해자인 고객이 충분한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상 회사에서 이를 회피하고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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