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평화롭던 시골마을이 초토화됐다. 18년 동안 주민 97명 중 26명이 암에 걸렸다. 전북 익산시 장점마을 얘기다. 2001년 마을 옆에 들어선 금강농산이라는 비료공장에서 원료로 쓴 연초박(담뱃잎 찌꺼기)이 암 원인이라는 환경부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미 많은 주민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지금도 많은 주민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전북 익산 장점마을과 남원 내기마을. 비료공장 옆 장점마을과 아스콘공장 옆 내기마을.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이 두 마을 주민 수십 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었다.

장점마을은 암 발병의 인과관계가 인정됐고, 내기마을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지만 두 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암 덩어리를 안고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암 공포는 이 두 마을만 덮친 게 아니다. 인천 사월마을도 암으로 고통받고 있고, 충남 부여의 한 마을도 암 공포에 떨고 있다.

공장 옆 마을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집단 암 발병. 인간의 탐욕과 무관심이 낳은 이 불행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공장이 아닌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환경부 "연초박(담뱃잎 찌꺼기) 불법 사용"



장점마을의 비극은 연초박에서 비롯됐다. 환경부와 (협)환경안전건강연구소는 지난 14일 '익산 장점마을 환경부 역학조사' 최종발표회에서 "주민들의 암 발생과 금강농산 사이에 역학적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금강농산의 비료공장과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역학조사를 한 환경안전건강연구소는 "금강농산이 퇴비로 사용돼야 할 연초박을 불법으로 유기질비료 원료(건조 공정)로 사용했으며, 허술한 방지시설 관리로 건조 과정 중 휘발되는 연초박 내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 등 발암물질이 대기 중으로 배출돼 장점마을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

장점마을 주민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장점마을 환경오염 피해사건은 정부가 폐기물관리법과 비료관리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발생했다"면서 "담배제조 부산물인 연초박을 더 이상 비료(퇴비) 원료 등으로 재활용하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 "비료관리법-폐기물관리법 뜯어고쳐야"



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이날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가 환경안전건강연구소의 장점마을 역학조사 과정에 비료관리법 등 관련법의 문제점을 정리한 의견서를 환경부에 전달했다.

대학교수와 환경단체 관계자 등 전문가들이 참여한 민관협의회는 의견서를 통해 연초박으로 인한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비료관리법을 당장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비료관리법' 제4조 '별표5'의 '부산물비료의 사용 가능한 원료'를 보면 담배제조업에서 발생하는 식물성 잔재물은 퇴비로 사용 가능하며, 담배제조업에서 발생하는 폐수처리오니는 사전 분석검토 후 사용 가능한 원료로 분류돼 있다.

협의회는 "담배 자체의 독성, 유해물질 함유 등을 고려해 담배제조업에서 발생하는 식물성 잔재물(연초박)을 '별표5'를 개정해 부산물비료 원료에서 아예 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것이 어렵다면 연초박을 적어도 폐수처리오니처럼 사전분석 검토 후 사용가능한 원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에서 활동한 김세훈 전북녹색환경지원센터 연구위원은 "연초박은 숙성 과정이든 저장 과정이든 자체 내에 TSNAs 물질이 함유됐고, 온도가 증가하든지 여건이 바뀌면 그 양이 증가할 수 있다"면서 "퇴비로 쓴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그렇게 입장을 정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유에서 '폐기물관리법'도 손을 봐야 한다는 게 협의회 주장이다.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별표4(폐기물의 종류 및 세부분류)를 보면 연초박은 '그 밖의 식물성 잔재물', 담배필터 등은 '폐합성수지', 담배제조 폐수처리오니는 '폐수처리오니'로 분류돼 있다.

별표4의2(폐기물의 재활용 유형별 세부분류)와 별표4의3(폐기물의 종류별 재활용 가능 유형) 별표5의3(폐기물의 재활용 기준)을 보면 연초박은 동·식물성 잔재물로 재활용 유형에 해당하며, 농업이나 토질개선에 재활용될 수 있다고 돼 있다.

협의회는 이에 대해 "별표를 개정해 연초박 분류번호를 신설한 다음 재활용 유형에 '재활용 금지'를 삽입한 후 연초박을 재활용하지 않고 소각이나 열분해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환경보건법 등 다른 부분도 손질해야"



협의회는 비료관리법과 폐기물관리법 이외에 다른 법도 손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환경보건법'이 있다. 협의회는 △장점마을 역학조사 과정에서 사업장에서 출입을 허가하지 않아 조사에 어려움이 많았고 △사업장을 낙찰받은 새로운 소유자가 시설물을 철거해 현장이 훼손되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환경보건위원회와 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 위원에 역학 전문가가 없다는 점 등을 문제삼았다.

협의회는 △역학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행위에 대한 금지 및 처벌 조상을 삽입하고 △역학조사 대상 사업체의 현장 보존을 의무화해야 하며 △환경보건위원회와 위원화 산하 전문위원회에 역학 전문가를 둬야 하는 등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도 손질 대상으로 봤다.

환경부는 지난 6월 장점마을 역학조사 결과 발표를 하면서 "사업장, 마을 암 발생비가 전국 대비 유의하게 높지만 건강영향조사 이전에 이미 공장 가동이 중단돼 환경·인체·노출량 파악이 곤란했고, 발암 위해도가 관련 규정에서 정한 범위를 초과하지 않았으며, 아주 적은 인구에 대한 조사인 점 등 과학적 인과관계 해석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후 한국역학회와의 자문회의를 거친 뒤 이달 발표에서는 "역학적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해석을 바꿨다.

협의회는 "적은 대상 수, 정확한 노출량 추정 불가, 사망자 정보 파악 불가 등 환경부가 제시한 문제는 어떤 연구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라며 "의학적, 과학적으로 명백하게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일반적 경험과 지식에 비춰 '그러한 사고나 노출이 있으면 그러한 재해(질병)가 발생할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입장에서 적극적이고 폭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의회는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고쳐 환경피해구제 급여 종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현재 피해자들은 의료비, 요양생활수당, 장의비, 유족보상비, 재산피해보상비 등을 받을 수 있는데, 추가로 건강장해에 따른 의료비 손실, 노동 상실에 따른 손실 등 포괄적인 경제적 보상 및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공무원들 '사람 중심' 교육 필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장점마을 주민은 "2010년에 비료공장 아래 방죽에서 물고기들이 떼로 죽어 신고를 하니 공무원들이 오긴 왔는데, 죽은 물고기들을 근처 논에 묻고 갔다. 나중에 '이상이 없다'는 발표가 나왔다"면서 "그때 비료공장 가동을 말렸으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해 있다.

김정수 (협)환경안전건강연구소장은 "장점마을의 경우 처음 악취 얘기가 나왔을 때 악취의 원인 물질이 무엇이냐, 그 원인 물질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를 조사해서 개선 대책을 내놓았어야 했는데, 지자체에서는 악취가 어느 정도냐, 기준치를 넘었느냐만 조사해서 넘으면 공장에 조치를 하는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김세훈 연구위원은 "지자체의 경우 위해 가능성이 있는 폐기물을 목록화해서 관리하는 등 꼼꼼한 지도관리가 필요하다"면서 환경 분야 공무원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환경은 복구를 하면 되지만 사람은 복구가 안 된다"면서 "공무원들은 수용자 관점에서 환경오염물질이 얼마나 독성이 있는지 등을 심각하게 느껴야 한다"고 했다.



◇ "독립적인 역학조사 기관의 필요" 제안도



김정수 소장은 "제2의 장점마을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역학조사 기관이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제안도 했다.

김 소장은 "독립적인 역학조사 기관, 즉 산단이나 민간 영역에서 환경보건센터가 제대로 운영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산단의 경우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환경보건센터가 있어야 하고, 민간 영역에도 민간 연구소에 환경보건센터를 운영하도록 해서 집단 암 발병과 같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제2의 장점마을 막자"…전국서 집단 움직임



장점마을 사태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장점마을처럼 암 발병의 인과관계를 인정받고자 하는 움직임이 전국 여러 마을에서 일고 있다.

3년 전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암 발병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한 남원 내기마을의 경우 환경부에 재조사를 요구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권태홍 정의당 사무총장은 "장점마을 관련 언론 보도 이후 전국의 피해 마을에서 연락을 해오고 있다"면서 "충남 부여의 한 마을에서도 공장 때문에 15명 가량이 암에 걸렸다며 도움을 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같은 당 이정미 의원은 12월 19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장점마을과 비슷한 처지의 마을 주민들이 참석하는 장점마을 사례발표회를 열 예정이다.



◇환경부 "법 개정 관련 입장 내놓겠다"



환경부는 '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민관협의회의 주장과 관련해서 "조만간 입장을 내놓겠다"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협의회가 문제제기를 한 사안에 대해 농식품부와 함께 검토 중"이라면서 "결론이 나오는 대로 입장을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원 내기마을의 재조사 요구에 대해서는 "주민 청원은 환경부 환경보건위원회 논의를 거쳐 수용 여부가 정해진다"면서 "내기마을 주민들이 청원을 해오면 정해진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 사태를 계기로 "제2의 장점마을을 막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제도 및 시스템 정비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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