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 여성 피해자들의 ‘나도 당했다’는 미투(Me 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끝 모르게 번져나가고 있는 이 들불이 산불도 되고 도심의 엄청난 화재가 될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는 형국이다. 태풍이 되어서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드디어 3월 5일. 우리 국가 사회의 권력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권에도 불똥이 튀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당내 경선에 나선 대통령 후보였고, 지금도 유력한 정치인으로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폭로되었다. 종합채널 jtbc 9시 뉴스룸에 나온 안 도지사 정무비서 김지은 씨가 작년 4월부터 지난 2월 25일가지 4차례의 성폭행과 수차례의 성추행을 당했다고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폭로했다. 정치권은 충격으로 발칵 뒤집혔다. 내일, 3월 8일은 1975년부터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김지은 씨는 ‘나는 거부할 수 없는 권력의 상하관계의 수행비서다. 안 지사에게 성폭행 당한 사람이 더 있다. 국민들이 나를 지켜주면 그 사람도 나와서 이야기 할 것이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안희정 지사이다. 이 시간 이후 내가 없어질지 모른다. 국민들이 나를 지켜달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털어 놓았다. 자기의 인생을 걸고, 심지어 생명의 위험까지도 무릎 쓰고 미투 운동에 동참한 김지은씨에게 뜨거운 경의와 응원을 보낸다. 용기와 정의감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지키는 큰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은 지난 2월 초,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근무하고 있는 서지현 검사가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룸에 나와서 손석희 앵커와의 대담을 통하여 자신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 놓으면서 시작되었다. 서 검사는 2010년 10월 10일, 당시 이귀남 법무부장관도 참석한 어느 장례식장에서 안태근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에게 성추행(性醜行)을 당했다고 털어 놓았다. 사건 후, 호소를 했으나 최교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무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평소 엘리트 선민의식(選民意識)으로 권위적인 모습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과 이미지를 가졌던 검찰은 물론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서 검사는 검찰 성폭력 조사단이 있는 서울지검 동부지청에서 조사받고 나오면서 ‘성폭행 피해자들이 자유롭게 앞으로 나와서 말하고, 더 이상 가해자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말했다. 서 검사의 바람대로 미투 동참자들이 연이어서 등장하고 있다. 참으로 반갑고 슬프고 아픈 일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나타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억압과 불평등을 강요하고 묵인하고 조장하는 사회 구조와 인식이 슬프고 아프다.

성추행, 성폭행을 포함하는 성폭력은 일반적으로 권력과 지위의 상하관계를 이용한 범죄이다.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저항할 수 없는 여자 제자와 비서, 부하 직원과 후배 등을 농락하는 성범죄이다. 당한 여성들은 부끄럽고 자기의 위치와 업무, 삶과 명예에 불이익과 고통이 따를까봐 참고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모든 것을 내걸고 미투 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바로 그때 말하지 않고 왜 이제야 폭로하느냐고 피해자들을 몰아세우지 말라. 주위에 조용히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말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고 자기만 손해 보고 매장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참고 견디어 온 것이다. 피해자들이 큰 용기를 내서 털어 놓아도 경찰이나 검찰에서 제대로 수사도 않고, 사회적인 보호도 해 주지 않아서 2차 피해를 받게 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일반적인 범죄나 비리도 자기 잘못을 제대로 고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모른다, 옛날 일이라서 기억이 안난다, 합의로 했고 강제는 없었다, 선의로 했다, 호감으로 했다, 연애감정으로 했다, 비서실 입장이다 등 거짓과 변명도 가지가지다. 그토록 엄청난 문제를 비서실이 안 지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입장을 발표했겠는가. 이번 일은 안 지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차기 대선 주자로 되어 있는 더블어민주당도 큰 충격에 빠지고, 90여일 남은 6·13지방선거에도 영향이 있지만, 도덕성은 보수 진영보다 우월하다는 진보 진영에 큰 타격을 주었다.

성(性)과 돈은 누구도 초연하기 어려운 인간의 근본적인 2대 생존본능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성과 돈은 인간을 움직이는 2대 요인이다. 성과 돈은 삶을 영위하고 지탱하고 추구하는 주요한 수단이고 목적이다. 성과 돈 앞에서 가증스러운 이중적인 연극도 하고, 악랄한 모습과 선한 모습도 본색이 드러나고, 사교(邪敎)의 광(狂)신도 같은 노예가 되기도 한다.

이제 어느 한 분야를 떠나서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태풍 같은 미투 운동을 여성가족부에 맡겨놓을 단계가 지났다. 미투 운동에 대한 범정부적인 대책기구의 시급한 발족을 건의한다. 대통령 직속으로 ‘성폭력 대책위원회(가칭)’를 구성하여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직접 점검하고 챙겨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인 약자인 여성들이 모든 것을 내걸고 털어 놓는 피맺힌 폭로와 절규(絶叫)를 가볍게 여기고 시간만 끌면서 건성으로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이런 약자들의 억울함이 쌓이고 쌓이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개혁의 주체라고 힘깨나 쓰며 행세하던 사람과 조직이 순식간에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인생무상, 권력무상은 영원한 진리다.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