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남의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먼저 하세.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 독 옆에 중두리요, 바탱이에 항아리라. 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고”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10월령을 보면 겨울을 앞두고 여러 준비가운데 가장 우선적으로 김장을 꼽았다.

우리네 밭농사는 마치 아이안고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긁어주고 어르듯이 정성을 다한다. 그렇게 ‘가꾼다’. 개화기 한국에서 전도활동을 했던 기독교 선교사 게일이 한국 사람들 밭농사 짓는 것을 보고 ‘농사가 아니라 원예(園藝)’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유럽에서 밭농사는 밭 갈아서 씨앗 뿌리고 다자라면 거둬들이기만 하면 된다. 곧 유럽의 농사에는 가꾼다는 개념이 없다. 이에 비해 우리 밭농사는 마치 아이안고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긁어주고 어르듯이 손을 많이 써야한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제 몸 가꾸듯 푸성귀를 가꾸었다. 손이 많이 갈수록 푸성귀가 잘 자랄 뿐 아니라 손의 훈김이 푸성귀에 자주 듬뿍 닿을수록 맛이 더한다고 여겼다.

또 그렇게 가르쳐 내방문화로 계승시켜 왔다. 모든 정성 다해 가꾸고 나면 수확한다. 수확과 함께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가정마다 주부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이 시대 어르신들의 어릴 적만 해도 월동 준비 첫 번째는 김장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김장하는 날이 잔칫날이나 다름없었다. 그 때만해도 집집마다 김장철이면 김장품앗이로 이웃 간에 정을 나누던 시절이다.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수확한 모든 재료를 ‘다듬는다’ 다듬는 순간부터 음식에 손맛이 들기 시작한다. 모든 푸성귀는 세 번 씻고도 맑은 물로 여러 번 헹구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채소를 조리 할 때 가급적이면 쇠칼로 써는 것을 피했다. 우리 음식의 조리에서 ‘간다’는 동작은 마술처럼 정교하고 신기롭다. ‘절이다’는 것은 조금씩 서서히 간을 배게 하는 과정이다. ‘담근다’. 담그는 과정은 재료나 양념에서 나오는 맛이 아닌 손가락에서 나오는 맛을 ‘손맛깔’이라해 옛날 부도(婦道)의 중요한 조건이었다. 이렇게 김치 맛의 오묘함은 양념들의 배합의 결과로 나타났다.

‘삭힌다’. 한국 특유의 ‘삭은 맛’은 음식의 발효에서 좌우됐다. 해마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 한 나라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 김치를 담는 사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김치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먹거리로 삶과 지혜가 응축된 과학적 음식이다. 진수성찬이 있어도 김치 없는 밥상은 ‘젓가락 갈 데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한국의 정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의 전통 음식 문화 속에는 음양오행 사상이 짙게 깔려있다. 상호조화를 이룬다는 철학이기도 하다.

김치는 또한 오미(五味)를 갖추고 있다. 고추의 매운 맛, 소금의 짠 맛, 양념과 과일의 단 맛, 젖산 발효의 독특한 신 맛, 여러 가지 채소의 떫은 맛, 굵은 소금에 절여 막 담근 막 김치의 쓴맛이 어우러져 오묘한 맛을 지녔다. 동배추김치, 석박동치미, 통배추동치미, 통무동치미, 석박통김치. 동태식혜, 동태석박지, 오징어석박지, 낙지석박지, 대구석박지, 통대구김치, 고들빼기김치, 통무소박이, 보쌈김치 등 김치라는 하나의 식품을 200여종의 다양한 김치로 만든 것은 우리네 어머니에서 어머니에게로 오랜 세월 전승되어온 생활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우리어머니의 소박한 음식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먹는 사람을 위한 지극한 정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제 김치가 세계인들의 식탁에서 사랑받고 인정을 받는 생명의 먹거리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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