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러시아 연해주 역사문화탐방을 다녀왔다. 러시아는 우선 넓은 땅 덩어리가 생각난다. 면적이 1,708만 평방킬로미터로 한반도의 78배, 미국의 1.8배가 되는 세계 최대의 영토 보유 국가이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광대한 나라여서 서쪽 칼리닌그라드에서 동쪽 추코트반도까지 9시간의 시차가 난다. 인구는 1억 4천만 명으로 영토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621만 평방킬로미터로 한반도의 28배의 면적을 가졌으나, 인구는 619만 명이다. 극동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 고려인은 약 8만 명이다. 연해주는 러시아 극동지역에 있는 극동 연방관구 9개 주(州)의 하나이다. 면적은 16.5만 평방킬로미터로 한반도의 약 0.75배로 192만 명이 살고 있다. 연해주는 한국과 러시아의 정치·경제협력을 통한 유라시아 대륙 진출의 중요한 길목이다.

연해주는 고려인의 항일 독립투쟁의 근거지이다. 1905년 일본에 의한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로 많은 동포들이 만주로,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연해주에서는 1906년부터 항일운동을 시작하여 1917년 대한국민회의(全露한족중앙총회)를 설립하여, 1919년 3·1독립운동 후, 상해에서 설립된 상해임시정부와 통합한다. 그 후 고려 독립군과 혁명군의 활동, 안중근 의사의 단지(斷指) 동맹, 이상설 선생, 최재형 선생 등 수많은 독립지사와 의사, 독립군들이 피 흘리며 싸우다가 장렬하게 산화해 간 독립 성지이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승리한 일본의 침공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소련)은 1937년 9월 9일,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 17만 명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화물열차를 타고 부실한 식사와 불결한 위생상태, 식수 부족, 의료지원의 부족 속에서 30일 내지 40일 걸린 강제 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배고픔 등으로 노약자와 어린이 등 554명이 사망한 것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스탈린 사회주의 체제에서 나라 잃은 백성들이 당해야 했던 민족적인 비극이었다.

부산, 전남 영광, 전북 정읍, 원주 등 전국에서 오신 35명의 탐방길 길동무들이 10월 18일(수) 오후 1시, 러시아항공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다. 러시아는 중국 보다, 연해주는 백두산 보다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지역인데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어서 주최자로서 너무나 감사했다.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남 다른 내공으로 내재되어 있는 수준 높은 분들이었다.

약 2시간의 비행 끝에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안착했다. 무엇이나 다른 것과의 비교에서 장·단점이 나타나듯이, 블라디보스톡 공항의 입국 심사 과정은 우리 인천공항과 바로 비교되었다. 입국 절차가 너무나 더디고 느렸다. 인천공항이 10년 연속 세계 1등 공항이라는 것이 실감났고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국력과 위상이 새삼 긍지로 다가왔다. 마중 나온 한국 청년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바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우수리스크로 가서 저녁을 먹고 우수리스크호텔에 투숙했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사온 40도 보드카 두 병을 내 방에서 몇 사람이 모여서 나누어 마셨는데, 어떻게 자고 어떻게 깨어났는지,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잘 생각이 안난다. 평생 처음 있는 일이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고려인 역사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려인 문화센터를 찾았다. 러시아에 살고 있는 동포 고려인들의 고난에 찬 역사가 사진과 설명, 동영상 등으로 잘 전시되어 있었다. 고려인 문화센터 마당 한 켠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비는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했던 최재형 선생의 주거지를 찾아갔는데, 내부 공사 중이었다.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을 거침없이 누볐던 발해의 옛 성터를 둘러보았다. 흙으로 쌓은 토성의 흔적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헤이그 만국회의 밀사로 파견되었던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遺墟碑)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갖고 간 현수막과 가이드가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점심을 먹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길에 고려인 강제이주역인 라즈돌리노예역을 둘러보았다.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독수리전망대에 올랐다. 지난 6월, 한반도미래재단을 따라왔을 때에는 안왔던 곳이다. 강과 다리는 어디에서나 아름답다. 연해주 고려인들의 집단촌이었던 곳에 세워진 신한촌 기념비를 보고 현대호텔 지하 1층 해금강 식당으로 향했다. 주(駐) 블라디보스톡 이석배(李石培) 총영사의 특강을 듣고 만찬을 하기 위해서다. 총영사관 발행 책자까지 배부해 준 이석배 총영사의 강의는 아주 알차고 인기 만점이었다. 정성껏 대해주신 이 총영사에게 감사드린다.

밤 아홉시에 블라디보스톡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를 타고 11시간 걸린다는 767km 떨어진 하마롭스크를 향하여 출발했다. 4인 1실의 침대칸에서 담소와 보드카로 시간을 보냈다. 끝없이 펼쳐진 유명한 자작나무 숲과 초원을 밤에는 못 보고 아침에야 겨우 보았다. 아침을 먹고 향토박물관과 러시아 정교회 성당, 혁명광장, 레닌광장, 영원의 불, 하바로프 동상, 기념품을 거쳐 아무르강에 가서 유람선을 한 시간 탔다. 푸른 물결 출렁이는 강물은 아름답고, 보드카 한 잔에 여행의 맛은 깊어만 갔다. 어둠을 밝히고 있는 성모승천성당은 경건과 위엄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인투어리스트호첼에서 자고 아침 9시 55분 러시아항공으로 인천공항에 돌아왔다. 집을 떠나는 여행은 일상에서의 탈출이며, 새롭고 낯선 것과 몸으로 부딪치면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성찰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이다. 자기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나아가서 조국과 민족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것이다.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