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장 열흘간의 추석 연휴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열흘 연휴 동안 해외여행도 사상 최고였다. 살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참 잘 사는 나라,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일 년 365일 언제 가보아도 인천국제공항은 해외 입출국 사람들로 붐빈다. 옛날에는 수학여행이라든가 신혼여행으로 기껏 해야 경주나 제주도 가는 것이 전부였다. 가히 격세지감(隔世之感)의 세월이다.

내가 느낀 우리나라가 잘 사는 현실을 좀 독특하게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 해외여행의 대중화, 둘째, 승용자의 2천만대 이상 보유, 셋째,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2천5백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화장실의 화장지 비치를 생각한다. 고층건물이며 수출 등 경제 강국, 교육 강국 등 많은 지표가 있지만, 눈에 보이는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현실을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이다.

나는 이번 추석 연휴에 가족과 함께 영화 ‘남한산성’을 본 것이 가장 머리에 남는다. 지금 천만 관객을 넘는 영화로 많은 감동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눈시울을 여러 번 훔치면서 권력과 전쟁에 짓밟히고 죽어가는 힘없는 민초들의 삶에 가슴이 먹먹했다. 인간과 역사, 그리고 오늘의 현실을 성찰하고 미래를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이다. 예술이란 이렇듯 감동과 교훈을 준다. 그래서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길다고 한다.

우선 정치권에서도 영화를 본 소감이 다르다. 집권 여당 더블어민주당 측 사람들은 외교적 노력으로 전쟁과 참극을 피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고, 못 먹고 헐벗은 백성들만 죽어가는 시대적인 참상에 가슴 아파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 사람들은 무능한 지도자(인조)의 잘못이 크다고 개탄했다. 약소민족으로서 주변 강대국에 의해서 우리나라가 침탈되고 분단되는 등 우리나라 운명을 우리 마음대로 못하는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과 같다고도 하는 사람들도 많다. 관점과 강조점은 다르지만,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남한산성’ 영화는 약 500년 전, 병자호란 중인 1636년(인조 14) 12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30일까지 남한산성에서 조선군이 청군의 공격을 막아내다 결국 실패한 전투를 다룬 내용이다. 끝까지 싸우자는 주전파(主戰派) 또는 척화파(斥和派)의 김상헌 이조판서와 화평을 주장하는 주화파(主和派)의 최명길 예조판서는 모두 애국자였다. 김상헌은 임진왜란 참전으로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구해 주는 등 지금까지의 은혜와 의리, 명분을 중시하는 의견을 대표한다. 최명길은 명나라를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청나라의 국력과 현실을 인정하자는 의견을 대표한다.

역사를 통해서 현실을 분석하고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에 역사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관념에 매몰된 시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빛나고 있다. 주전파의 김상헌의 주장대로 인조가 따랐다면,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임금과 신하, 수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조는 김상헌을 따를 수가 없다. 인조는 무능해서가 아니고 다른 길이 없는 막다른 궁지에 몰려 있기 때문에 최명길을 따를 수밖에 없다.

관념과 이념의 시대, 프레임의 언어는 좌와 우,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 나누어서 격렬해 질 수밖에 없고, 대결로 나갈 수밖에 없다. 북핵과 사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좌와 우, 친미와 종북으로 격렬하게 편 갈려서 대결하고 있는 것과 같다. 격렬한 대결을부추기는 프레임의 언어를 사실(팩트)과 과학의 언어로 전환시켜야 한다. 사실을 떠나서 침소봉대하고 왜곡 과장하면서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악이고 배척되어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우리의 의식과 관념을 순화시키고 전환시켜야 한다.

명나라는 문명이고 청나라는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관념 사고는 현실과 사실에 입각하여 생각과 정책을 조절하고 적응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나 개인과 국가가 취해야 할 길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사드문제이든 북핵문제이든, 중국 편이냐 미국 편이냐가 기준이 아니고 양자의 요구와 환경, 국민적 여론과 국익 등을 종합 판단하여 사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병자호란에서도 인조가 삼전도(三田渡, 송파)에 나가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굴욕적인 삼배구고두(三拜九鼓頭)를 하고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 등 두 왕자가 인질로 청에 가고 척화파의 홍익한, 윤집, 오달제 3학사가 잡혀가 참형을 당하였던 것은 더 이상의 전쟁을 피하기 위함이였다. 전쟁은 불쌍한 민초(民草)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국토를 짓밟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핵과 미사일을 두고 오가는 말폭탄을 쳐다보면서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안된다는 국민적인 여론을 환기해야 한다. 표현은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나는 ‘한미동맹이 깨지더라도 전쟁은 안된다’는 문재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의 말에 동의한다. 강력한 전쟁 반대를 주장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누가 많이 죽고 어느 나라 땅이 초토화 되는가. 정동영 국회의원, 이석현 국회의원 등도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고 전하고 돌아 왔다. 나도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 결사반대’다.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