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에 바라보는 필리버스터와 한국 민주주의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입력 : 2016. 03. 15(화) 16:55
4월 13일 실시되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불과 40여일도 남지 않은 현재까지도 선거구 획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지 못해서 위헌(違憲)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정치 실종의 시대에 국회에서 필리버스터(filibuster)가 등장했다. 정치 불신, 정치 무관심, 정치 혐오의 시대에 정치에 관심을 끌게 한 돌발사고 같은 국회 모습이다.
필리버스터는 16세기의 '해적 사략선(私掠船)' 또는 '약탈자'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는 서인도의 스페인 식민지와 함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1854년 미국 상원에서 캔자스, 네브래스카 주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을 막기 위해 반대파 의원들이 의사진행을 방해하면서부터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필리버스터는 의회 안에서 주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루어지는 합법적 의사진행(議事進行) 방해 행위이다.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캐나다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필리버스터의 최장 기록은 1957년 미 의회에 상정된 민권법안을 반대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이 24시간 8분 동안 연설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필리버스터를 가장 처음 한건 1964년 당시 야당 초선 의원이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료 의원인 김준연 자유민주당 의원의 구속 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발언해 결국 안건 처리를 무산시켰다.
필리버스터는 1973년 국회의원의 발언시간을 최대 45분으로 제한하는 국회법이 시행되면서 사실상 폐기됐다가 2012년 국회법(국회선진화법)이 개정되면서 부활했다. 2012년 개정된 국회법 제106조 2에 따르면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하려는 경우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하고,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실시할 수 있다.
의원 1인당 1회에 한 해 시간의 제한이 없는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고, 토론자로 나설 의원이 더 이상 없거나,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무제한 토론의 종결을 원하고 무기명 투표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종결에 찬성할 경우에 무제한 토론이 종료된다. 그러나 무제한 토론을 하던 중 회기가 종료되면 해당 법안은 자동으로 다음 회기 첫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가 2016년 2월 23일 오후 7시 6분부터(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의원) 시작됐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장(最長) 필리버스터 기록은 1969년 8월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대통령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한 10시간 15분이었는데, 지난 2월 27일에는 더블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11시간 39분을 연설했고, 3월 2일에는 더블어민주당 원내대표 이종걸 의원이 12시간 31분 무제한 토론을 했다.
일제의 무자비한 식민통치에 맞서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97주년 3.1절 기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새종문화회관에서 ‘국정을 발목 잡고 있는 국회를 국민들이 심판해 달라’고 강조하고, 이종걸 의원은 ‘테러방지법은 테러빙자법, 국민감시법이다. 국민들이 헌법상 권리인 국민의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통령은 국회와 야당을 비판하고, 야당은 국정원을 믿지 못 하겠고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이다. 나는 국회에 가서 이종걸 의원의 발언을 직접 방청했다.
필리버스터는 더블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 국회의원 38명이 참여하여 9일간 192시간 26분을 돌파하여 세계 최장 기간을 수립했다. 국회의원과 정치에 고개 돌렸던 많은 국민들이 필리버스터라는 낯선 이름의 국회 운영을 보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눈길을 주었다. 테러방지법은 무엇이고 야당 국회의원들은 릴레이로 왜 반대하면서 밤낮을 잊은 채 화장실도 안 가고 10시간을 넘는 장시간을 서서 연설을 하고 있는지,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았다. 오랜만에 국회의원들이 제 밥값을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필리버스터를 두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회 마비 중단하고 국회를 정상화하라고 규탄대회를 했다. 야당은 1982년에 만든 대통령훈령인 ‘국가대테러 활동지침’ 등 많은 법령이 이미 존재하고, 테러 용의자에 대하여 도?감청권과 금융 계좌 추적권을 국가정보원에 주면 국정원의 과거 정치 개입과 인권 침해의 사례에 비추어서 반드시 정치적인 악용과 국민 감시를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독소 조항을 삭제 또는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리버스터 진행 도중에 국회법상 의제 외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새누리당과 의제와 간접적인 관련성이 있으면 괜찮다는 야당의 의견 대립도 자주 있었다.
자유와 다양성, 소수자 존중과 보호라는 민주주의의 대 원칙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법률과 제도로 나타난다. 필리버스터는 소수자와 약자의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이익과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구현하는 장치의 하나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존중하되 다수자의 독선과 독단이 아니고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다. 특히 국회는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과 이익을 반영하는 토론과 타협의 광장이다. 필리버스터의 출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켜 나가는 진통의 한 과정이다. 선거구 획정과 경제민주화법 통과 등 산적한 시급한 현안들이 여야의 원만한 토론과 타협에 의해서 잘 마무리되어서 정치도 선진회된 명실상부한 선진민주강국이 되길 바란다.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필리버스터는 16세기의 '해적 사략선(私掠船)' 또는 '약탈자'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는 서인도의 스페인 식민지와 함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1854년 미국 상원에서 캔자스, 네브래스카 주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을 막기 위해 반대파 의원들이 의사진행을 방해하면서부터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필리버스터는 의회 안에서 주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루어지는 합법적 의사진행(議事進行) 방해 행위이다.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캐나다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필리버스터의 최장 기록은 1957년 미 의회에 상정된 민권법안을 반대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이 24시간 8분 동안 연설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필리버스터를 가장 처음 한건 1964년 당시 야당 초선 의원이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료 의원인 김준연 자유민주당 의원의 구속 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발언해 결국 안건 처리를 무산시켰다.
필리버스터는 1973년 국회의원의 발언시간을 최대 45분으로 제한하는 국회법이 시행되면서 사실상 폐기됐다가 2012년 국회법(국회선진화법)이 개정되면서 부활했다. 2012년 개정된 국회법 제106조 2에 따르면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하려는 경우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하고,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실시할 수 있다.
의원 1인당 1회에 한 해 시간의 제한이 없는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고, 토론자로 나설 의원이 더 이상 없거나,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무제한 토론의 종결을 원하고 무기명 투표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종결에 찬성할 경우에 무제한 토론이 종료된다. 그러나 무제한 토론을 하던 중 회기가 종료되면 해당 법안은 자동으로 다음 회기 첫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가 2016년 2월 23일 오후 7시 6분부터(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의원) 시작됐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장(最長) 필리버스터 기록은 1969년 8월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대통령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한 10시간 15분이었는데, 지난 2월 27일에는 더블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11시간 39분을 연설했고, 3월 2일에는 더블어민주당 원내대표 이종걸 의원이 12시간 31분 무제한 토론을 했다.
일제의 무자비한 식민통치에 맞서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97주년 3.1절 기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새종문화회관에서 ‘국정을 발목 잡고 있는 국회를 국민들이 심판해 달라’고 강조하고, 이종걸 의원은 ‘테러방지법은 테러빙자법, 국민감시법이다. 국민들이 헌법상 권리인 국민의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통령은 국회와 야당을 비판하고, 야당은 국정원을 믿지 못 하겠고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이다. 나는 국회에 가서 이종걸 의원의 발언을 직접 방청했다.
필리버스터는 더블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 국회의원 38명이 참여하여 9일간 192시간 26분을 돌파하여 세계 최장 기간을 수립했다. 국회의원과 정치에 고개 돌렸던 많은 국민들이 필리버스터라는 낯선 이름의 국회 운영을 보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눈길을 주었다. 테러방지법은 무엇이고 야당 국회의원들은 릴레이로 왜 반대하면서 밤낮을 잊은 채 화장실도 안 가고 10시간을 넘는 장시간을 서서 연설을 하고 있는지,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았다. 오랜만에 국회의원들이 제 밥값을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필리버스터를 두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회 마비 중단하고 국회를 정상화하라고 규탄대회를 했다. 야당은 1982년에 만든 대통령훈령인 ‘국가대테러 활동지침’ 등 많은 법령이 이미 존재하고, 테러 용의자에 대하여 도?감청권과 금융 계좌 추적권을 국가정보원에 주면 국정원의 과거 정치 개입과 인권 침해의 사례에 비추어서 반드시 정치적인 악용과 국민 감시를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독소 조항을 삭제 또는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리버스터 진행 도중에 국회법상 의제 외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새누리당과 의제와 간접적인 관련성이 있으면 괜찮다는 야당의 의견 대립도 자주 있었다.
자유와 다양성, 소수자 존중과 보호라는 민주주의의 대 원칙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법률과 제도로 나타난다. 필리버스터는 소수자와 약자의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이익과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구현하는 장치의 하나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존중하되 다수자의 독선과 독단이 아니고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다. 특히 국회는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과 이익을 반영하는 토론과 타협의 광장이다. 필리버스터의 출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켜 나가는 진통의 한 과정이다. 선거구 획정과 경제민주화법 통과 등 산적한 시급한 현안들이 여야의 원만한 토론과 타협에 의해서 잘 마무리되어서 정치도 선진회된 명실상부한 선진민주강국이 되길 바란다.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ihonam@naver.com
|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