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명절 설이 코앞이다. 그런데다 오늘은 입춘(立春)이다. 그러나 버거운 살림살이에 먹고살기조차 빠듯한 서민들에게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일수가 없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이다.

서민들은 언제나 이 어려운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지 암울하기만 하다.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고 불안하기만한 시절에 설을 맞이한다. 어쨌든 서양인에게 휴가와 축제의 계절은 여름이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겨울이 휴가와 축제의 나날이었다. 추수 뒤 농한기에 드는 겨울은 1년 중 가장 여유롭고 풍성한 계절이었다. 우리 명절이 겨울에 몰려 있고 겨울 시식(時食)이 여름 시식보다 더 풍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겨울 명절의 꽃은 설날이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보름간은 한 해를 시작하는 경건한 날이자 봄 농사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즐기는 한바탕 축제였다.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날로 ‘새로움’, ‘새 출발’의 의미가 강하지만 섣달그믐날 밤을 지새우고 맞으니 오히려 시간의 연속성이 강조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날 풍속은 섣달그믐의 풍속과 맞닿아 있다. 옛 사람들은 그믐날 집 안팎을 대청소하고 집안 구석구석 불을 지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는 밝은 불과 요란한 소리로 잡귀를 쫓는 도교 풍습에서 나왔다. 중국 사람들이 설날에 요란한 폭죽을 터뜨리는 것도 이 풍습에 기인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대포를 쏘고 무서운 방상시 가면을 쓰는 나례(儺禮:악귀를 쫓기 위해 베푸는 의식)를 행했다. 이런 풍습은 새해를 경건하게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남은 음식과 바느질감도 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새 출발을 위해 다 비우자는 뜻이다. 그믐날 먹는 비빔밥 역시 남은 음식을 정리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올해 설 연휴는 사실상 6일부터 시작된다. 예나 지금이나 설 명절은 우리 모두를 설레게 만든다. 새해 아침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 다음에는 설음식을 이웃과 나눠 먹는 것이 우리네 세시풍습이다.

그런데도 올 설 명절은 우리들 주변 모두가 씁쓸하고 암울한 느낌뿐일까. 하지만 우리나라 전래의 미풍양속에는 새해가 되면 서로 상대방이 잘 되기를 비는 덕담(德談)을 주고받는다. 참으로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다. 그리고 흐뭇한 풍속이 아닐 수 없다. 덕담은 덕담을 낳게 마련이며 우리는 우리의 삶이 그 덕담처럼 되도록 노력하고 돕는다면 얼마나 좋은 이웃이 되고 사회가 될 것인가.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덕담의 자세로 새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은 사람들의 생활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의 기분이 가시기 시작하면서 아니, 새해 덕담을 하면서도 우리는 덕담보다는 험담에 더 많은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닌가 한번쯤 반성해 보아야 한다.

설날에는 특별히 덕담을 주고받았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덕담은 때로 ‘스트레스’가 되고 있지만 예전 사람에게 새해 덕담은 단순한 인사말 이상의 강력한 힘을 지닌 언어였다. “복 많이 받으셨다지요”처럼 모든 덕담을 과거형으로 했다.

기정사실화한 과거형이야 말로 가장 강한 주술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의 덕담은 우리의 마음을 살찌게 하고도 남는다. 덕담은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소망의 표시이며 그것은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지(知)와 덕(德)을 쌓는 지름길이 될 것이며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가능성을 더해줄 것이다. 덕담은 그 속성상 인간관계를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 같은 것이기도 하다.

지금 국민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한국 정치는 선거구 실종의 무법 상황에 각종 개혁 입법이 표류하는 입법 비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제라도 국민에게 감동 주는 청와대발 덕담이 온 나라에 가득 차는 그런 설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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