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약체라는 평가 속에 한국을 8회 연속 올림픽 본선으로 이끈 신태용(46)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이 스스로에게 "운이 많이 따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운으로만 준비하면 (이루기 힘든)야망이다. 준비된 자에게 운도 따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 감독은 28일(한국시간) 대표팀 숙소가 있는 카타르 도하의 한 호텔에서 국내 취재진들과 만나 2016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챔피언십을 마치게 되는 소회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상세히 털어놨다.

1년여 전 처음 팀을 맡았을 당시 "팀에서 경기를 뛰는 선수가 거의 없었기에 어떻게 만들지 갑갑했다"는 신 감독은 "우리가 결승까지 왔다는 것은 스스로도 기적 같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감독님 전술이 이겼다'고 말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어느 누구보다 선수들이 인정해주면 '내가 인정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표팀과의 인연이 없었던 황희찬(20·잘츠부르크)의 선발 과정을 두고는 "처음에 봤을 때 수비를 안 해 좋지 않은 선입견이 생겼는데 직접 보고 달라졌다"고 소개했다.

팬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본선 와일드카드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한국에 돌아가 기술위원장, 슈틸리케 감독과 상의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일본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 신 감독은 "말이 필요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신태용 감독 일문일답



- 일본전은 어떻게 준비할 생각인가.



"비디오를 아직 안 봤다. 어제 긴장을 풀어서 그런지 잠이 잘 올 줄 알았는데 새벽 3시 반에 눈이 떠졌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저녁 먹고 이제 정신을 차렸다. 일본의 이라크, 이란전을 중점적으로 보면서 어떻게 준비할지 생각하겠다."



- 선수를 다루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는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수를 이용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행동에 옮길 때 따라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신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리를 좁혀가면서 '우리 감독님이 진정으로 우리를 생각하는구나'는 생각이 들 때 하나가 되는 것 같다. 어린 선수들은 자신을 이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에 벽을 허물고 먼저 다가가려고 한다. 헤어질 때가 되니 많이 친해지는 것 같다."



- 요르단전 하프타임 때는 어떤 이야기를 했나.



"요르단전이 끝나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전반전에 너무 완벽한 경기를 해서 크게 이야기할 것이 없었다. 지적할 것이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2~3골 넣을 수 있다', '조금 더 집중하고 스코어를 벌리자'고 주문했는데 수비 라인과 골키퍼가 많이 흔들렸다. 하프타임 때 15분을 꽉 채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는 7분 정도 이야기를 한다. 선수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요르단전은 전혀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그것이 4강전에서 약이 됐다. 요르단전을 이겼을 때 좋은 느낌을 받았다."



- 어떤 지도 스타일인가.



"개별 미팅을 좋아한다. 단체보다는 개인을 따로 불러서 그 선수의 속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황)희찬이는 요르단전이 끝나고 처음 개인 미팅을 했다. '아무리 좋은 선수가 되더라도 인성이 안 되면 동료, 스태프, 언론에서 도와주지 않는다. 더 고개 숙이고 다가가라. 게임 을 못 뛰는 나이 많은 형들을 생각해봐라. 그러면 그들은 벌써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희찬이도 죄송하다고 했다. 스타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되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그렇게만 하면 너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다면.



"황기욱에게 요르단전이 끝난 뒤 '너는 카타르전에 선발 출전할 테니 몸을 만들어라'고 지시했다. 그동안 게임을 못 뛰어서 회복훈련 때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미리 지시했다. 미디어를 보면서 반성도 많이 했다.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문제점이 있는지 찾으려고 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잘 맞아 떨어졌다."



- 문창진이나 황희찬 같은 스타들이 탄생했는데 믿음의 결과인가.



"선수가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믿음 속에서 선수들이 잘해줬다고 생각한다. 23명이 왔다. 우리는 항상 다 함께 한다고 강조한다. 23명 중 11명밖에 뛸 수 없다. 뛰지 못하는 선수들한테 미안하지만 감독의 고충도 이해해 달라,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 포메이션을 짜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못 뛰는 선수들이 양보하고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맘이 생기면 어느 팀이 와도 우리는 두렵지 않다고 강조한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가끔 육두문자도 쓴다. 사우나에서 내가 냉탕에 가면 선수들이 다 옮긴다. 온탕으로 가면 또 다 옮긴다. 코치가 가면 가만히 있는데 내가 가면 양떼처럼 막 돌아다닌다.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려고 했다. 믿음을 줘서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다."



- 대표팀에서의 토너먼트 대회는 처음인데.



"프로팀에서도 토너먼트는 상당한 부담을 안고 한다. K리그에서는 전국팬들을 몰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만 욕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대표팀은 행동 하나, 말 하나에 모든 것이 왔다갔다 하니 조심스럽다. 요르단전을 할 때는 지면 숙소까지 걸어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단과 버스를 타고 오지 못할 것 같아 길은 모르지만 걸어가려고 했다. 압박이 심했다. 프로팀과 대표팀의 심리적인 압박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 와일드카드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데.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김칫국을 먹고 떨어질 바에는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어제 경기가 끝난 뒤 이제는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코치들에게 어느 자리가 꼭 필요한지 찾아보자고 이야기했다. 어느 선수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다. 한국에 들어가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 팬들 사이에서는 손흥민과 석현준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구상에 있나.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의 사기 진작이 달린 문제다. 내 말 한 마디에 흔들릴 수 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기술위원장, 슈틸리케 감독님과 상의하겠다."



- 결승전에 황희찬이 뛸 수 없다.



"나머지 선수들의 사기가 올라있다. 어느 팀과 붙어도 자신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선수들을 믿는다. 일본전에서는 지금까지 썼던 포메이션 중 가장 좋은 것을 쓰겠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거기에 포커스가 맞춰질 것 같다. 나는 일본에 한 번도 안 졌다. 좋은 기억을 많이 갖고 있다. 한일전은은 각오가 필요없다. 무조건 이긴다.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



- 스스로를 '운장'이라고 생각하나.



"아직도 나는 운이 좋은 놈 같다. 우즈베키스탄전 이후 상대 감독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페널티킥이라고 봤고 주심도 바로 뒤에서 봤다. TV로 보니 공이 (손이 아닌)가슴에 맞았다. 그런 것 자체로도 나에게 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에서 힘든 고비를 넘긴 것은 '운칠기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준비된 자만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나름대로 준비됐다고 생각한다. 운으로만 준비하면 야망이다. 준비됐기에 운도 따라온다."



-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 속에서 시작했다.



"상당히 열을 받았다. 소속 팀에서 게임을 뛰는 선수가 거의 없었기에 어떻게 만들지 갑갑했다. 대표팀 선수들을 소집할 때마다 '너희 감독님한테 가서 마음을 최대한 끌어내 게임을 뛸 수 있게끔 하라'고 당부했다. 소집하면 소속팀 경기에 못 나가는 선수가 70~80%를 차지한다. 하지만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시간은 단지 일주일에 불과했다. 너무 힘들었다. 코치들이 주말에 경기를 보러 갔는데 정작 선수는 리저브 명단에도 없어 너무 황당했다. 골짜기 세대라고 하는데 나도 반신반의했다. 우리가 결승까지 왔다는 것은 스스로도 기적 같다고 생각한다. 카타르가 4강에 제발 올라오라고 빌었다. 강한 압박이 들어오지 않고 조직력이 강하지 않아 우리 특유의 근성을 발휘하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선수들이 '감독님 전술이 이겼다'고 말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어느 누구보다 선수들이 인정해 주면 '내가 인정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 처음 황희찬을 소집했을 때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나.



"19세 대표 시절 연습경기할 때 희찬이를 잠깐 봤다. 그때 대단히 안 좋은 선입견이 생겼다. 공격은 무척 좋은데 수비를 전혀 안한다. 그러면 나머지 선수들은 공만 뺏다 끝난다. 너무 배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생정신을 강조하는데 나와 생각이 완전히 다른 선수라고 느꼈다. 내 머리 안에서는 사실 지워졌다. 그러던 중 세계 각지에 나간 선수들을 찾아보던 중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리퍼링에 가서 경기를 보니 괜찮았다. 호주전에 불러 면담을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마인드가 아니었다. 희찬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웨인 루니를 좋아한다. 빼앗겨도 우리 골대까지 추격해서 골을 쟁취한다. 현대 축구는 공격은 공격만 하고 수비는 수비만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는데 호주와 경기할 때 그렇게 했다. 코치를 통해 확인하고 잘츠부르크에 가서 어떻게 운동했는지 들었을 때 확신이 섰다. 뽑아서 우리 팀의 핵심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 팬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밤늦게까지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 자고 일어나니 욕도 먹고 칭찬도 받았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우리가 1월의 스타트를 끊게 됐는데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해 금의환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