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 많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도 그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어떤 일의 성패(成敗)를 가르는 관건(關鍵)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사람의 마음은 개념도 어렵고, 마음의 실체와 본질, 변화와 작용 등을 안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난제가 된다. 모든 말과 문자를 떠나서 오직 마음으로만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고 마음으로만 진리를 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불교의 선(禪)에서는 자기 마음을 성찰하고 응시(凝視)하는 수행을 필수적으로 하고 있다. 마음에 몰입하여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수도승들은 뜨거운 여름철 3개월 동안 산문(山門) 밖에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선원(禪院) 선방(禪房)에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하는 하안거(夏安居)를 보낸다. 추운 겨울 3개월도 같은 목적으로 동안거(冬安居)를 보낸다.

마음을 이야기하다 보니 마음의 종교,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는 불교 이야기를 조금 했다. 야당이 모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고 장외 투쟁을 벌였던 1라운드는 끝나고 국회 안팎의 병행 투쟁을 하겠다는 2라운드가 시작된 역사 교과서 전쟁은 아직도 뜨거운 감자다. 잘못 먹으면 이가 빠질지도 모르는 열기가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국회 본관 정문 입구 로텐다 홀에서 철야 농성을 하던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은 지난 6일 금요일 밤, 내리는 비를 맞으며 종로 종각역에 있는 보신각(普信閣) 옆 광장에서 ‘역사 교과서 저지 문화제’를 열었다. 비옷을 사서 입고 서서 참가했다.

이 문화제에서 이색적으로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당내에서 바랐던 삭발 투쟁 대신 피아노를 치면서 운동권 노래 ‘그날이 오면’, ‘상록수’를 부른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였다. 그의 집안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있으나, 집도 몸도 넋도 조국 독립에 바친 국내 최대 독립운동 명문가의 후손이다. 친일과 변절, 배신과 궤변이 판치는 난세(亂世)에 희귀한 민족 가치이다. 이 원내대표의 할아버지는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선생이다. 1867년 서울 중구 저동에서 이조판서 이유승(李裕承)의 여섯 아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백사 이항복(李姮福)이 10대조 선조이며 여섯 명의 정승과 두 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 우당은 이상설, 이시영과 함께 을사오적(乙巳五賊) 암살을 모의하기도 하였다. 1907년 4월 비밀결사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를 발족하였으며, 1907년 6월 '헤이그 밀사' 파견을 주도하였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가 일어난 해 12월 명동성당 일대의 토지를 판 돈 40만원(지금 돈 600억 원) 전 재산을 갖고 여섯 형제와 일가족 40여명 전체가 만주로 이주하여 일제와 싸우자고 만주로 험난한 길을 떠났다. 1911년 5월 광복군 양성을 위한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신흥무관학교 출신 광복군 3,500여명은 광복군, 의열단, 조선의용대의 주축이 되고, 일본군 1,200명을 몰살시킨 청산리전투에 대거 참전하는 등 척박한 만주 땅에서 독립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고종을 베이징으로 망명시켜서 일제에 선전포고하려고 했으나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급사(암살)로 실패하고, 블라디보스토크, 베이징, 상하이를 전전하다가 1932년 상하이에서 다롄(大連)으로 배를 타고 가던 도중 상하이 반역자 밀정(密偵)의 밀고(密告)로 일본경찰에 적발되어 11월 17일 일제 다롄경찰서에서 심한 고문 끝에 66세에 옥사했다. 6형제 중에 5형제가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독립운동 하다 해방을 못보고 이국땅에서 죽었다.

지난 7일 KBS 1TV를 통해 방영된 ‘특집 2015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 갈라 콘서트 조성진 스페셜’을 집에서 보았다. 10월 2일부터 23일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피아니스트 조성진(21세)이 우승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은 시적이고 드라마틱한 피아노의 시인 쇼팽 음악의 이해와 몰입, 연주는 완벽했다. 공연을 보고 감동해서 세 번이나 눈물을 흘렀다는 여성도 있었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조성진은 ‘피아노의 신(神)’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골프의 박세리와 박인비 등과 함께 조성진은 대한민국의 자랑이고 힘이다.

1991년 1월 폴란드에 갔을 때,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54km 떨어진 조그마한 시골 마을 젤라조바 볼라에 있는 쇼팽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쇼팽은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피아노와 함께 폴란드의 민족혼을 배웠다. 방안에는 그와 어머니가 쓰던 피아노, 악보, 가구, 가족 사진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담쟁이 넝쿨이 덮인 생가 주위에 우거진 숲속을 아름답고 슬픈 쇼팽의 마주르카 D장조가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어릴 적 프랑스에 망명하여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분할 점령된 약소국가, 조국 폴란드를 그리며 슬픔과 분노, 그리움을 응축시켜 피아노곡에 불어 넣은 쇼팽, 그는 어릴 적 뛰놀던 집 뒤안에서 동상(銅像)으로 서서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도, 희망을 주어야 할 정치도 내리는 비에 젖어서인지 혼란스럽고 개운하지가 않다.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