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기도 하고 시기도 한 오묘한 다섯 가지 맛! 거기다 젓갈은 담백한 맛과 발효의 훈향이 더해지면서 일곱 가지 독특한 풍미를 갖춘다. 바로 ‘김치천년의 맛’ 이다. 세계 유일의 발효 야채식품인 김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리음식의 깊은 맛이다. 그 배추와 무는 우리네 밭농사에서 수확한다. 밭농사는, 마치 아이 안고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긁어주고 어르듯이 정성을 다한다. 그렇게 ‘가꾼다’. 개화기 한국에서 전도활동을 했던 기독교 선교사 게일이 한국 사람들 밭농사 짓는 것을 보고 ‘농사가 아니라 원예(園藝)’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유럽에서 밭농사는 밭 갈아서 씨앗 뿌리고, 다 자라면 거둬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어떤 부지런한 사람이 응어리진 흙덩이만 깨주면 그만인 것이다. 삼모식 농사라서 거름 줄 필요가 없다. 또 건조하고 추워서 병충해도 없다. 씨앗만 뿌리고 방치해 두면 손 한번 쓰는 법 없이 절로 자라고, 다 자라면 거둬들이기만 하면 되는 그런 농사다. 곧 유럽의 농사에는 가꾼다는 개념이 없다. 있다해도 미미하다. 이에 비해 우리 밭농사는 마치 아이 안고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긁어주고 어르듯이 손을 많이 써야 한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제 몸 가꾸듯 푸성귀를 가꾸었다. 손이 많이 갈수록 푸성귀에 자주 듬뿍 닿을수록 맛이 더한다고 여겼다. 또 그렇게 가르쳐 내방문화로 계승시켜 왔다. 모든 정성 다해 가꾸고 나면 수확한다. 수확과 함께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가정마다 주부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수확한 모든 재료를 ‘다듬는다’. 다듬는 순간부터 음식에 손맛이 들기 시작한다. 모든 푸성귀는 세 번 씻고도 맑은 물에 여러 번 헹구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채소를 조리할 때 가급적이면 쇠칼로 써는 것을 피했다. 우리 음식의 조리에서 ‘간다’는 동작은 마술처럼 정교하고 신기롭다. ‘절이다’는 것은 조금씩 서서히 간을 베게 하는 과정이다. ‘담근다’ 담그는 과정은 재료나 양념에서 나오는 맛이 아닌 손가락에서 나오는 맛을 ‘손맛깔’이라 해 옛날 부도(婦道)의 중요한 조건이었다. 이렇게 김치 맛의 오묘함은 양념들의 다양한 배합의 결과로 나타났다. ‘삭힌다’ 한국 특유의 ‘삭은 맛’은 음식의 발효에서 좌우됐다. ‘갊는다’ 응달에 놓인 독은 김치를 서늘하게 보존하는데 가장 알맞은 그릇이다. ‘묻는다’ 흙의 단열효과를 이용해 오래 보관하는 김칫독은 땅에 묻었다. ‘덮는다’ 짚은 보온 보습 통풍성이 뛰어나 채소류의 보관재료로서 적당했다. 또 한국의 자연환경에서 가꾸어낸 김치재료는 다양하다. 배추, 무, 파, 오이, 미나리, 씀바귀, 부추, 가지, 마늘, 생각, 고추, 갓, 청각, 소금, 새우젓 등 20여종에 달한다. 김치에 관한 첫 기록은 2600년~3000년 전에 쓰여 진 중국 최초의 시집 ‘시경(詩經)’에 나와 있다. 우리 김치가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이후 최근 김치와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김치와 김장문화가 한국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 돼 왔고, 공동체가 지닌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 한 나라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 김치를 담는 사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김치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먹거리로 삶과 지혜가 응축된 과학적 음식이다. 진수성찬이 있어도 김치 없는 밥상은 ‘젓가락 갈 데가 없는 것 같다’ 는 것이 한국의 정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의 전통 음식문화 속에는 음양오행 사상이 짙게 깔려있다. 통배추 김치 등 김치라는 하나의 식품을 200여종의 다양한 김치로 만든 것은 우리네 어머니에서 어머니에게로 오랜 세월 전승 되어온 생활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의 소박한 음식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먹는 사람을 위한 지극한 정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제 김치가 세계인의 식탁에서 사랑받고 인정을 받는 생명의 먹거리로 자리매김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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