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에서 제정하여 시행하고자 하는 ‘송수권 시 문학상’이 연합뉴스와 경향신문 등 중앙 언론과 광주방송(KBC) 등 지방언론에 까지 보도되고, 권위 있는 문학지 월간 '현대시'와 월간 '현대시학' 등이 우려의 입장을 표명하여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고흥군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은 일차적으로 고흥군민의 문제이고, 이차적으로 문학계의 일이고, 삼차적으로는 기초 및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문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나는 고흥 출신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인연으로 고흥을 알게 되고 고흥에 관심이 많고 여러 차례 방문한 적도 있으며 고흥을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 또한 전국적인 문학단체와 문학잡지 대표를 맡고 있는 시인으로서 관심이 많고, 지방자치의 정착방안에 관하여 행정학석사 논문을 썼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운영과 재정자립도에 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문학상 논란은 매주 정기적인 칼럼을 쓰고 있는 언론인으로서도 칼럼 소재로서의 가치가 있다.

일반적으로 문학상 제정과 시행은 좋은 일이고, 장려되어야 할 문학 행사이다. 문학상 이름이나 수상자가 생존 인물이 되었든, 돌아가신 고인(故人)이 되었든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문인의 작품과 인품, 문학적?사회적 활동이 객관적?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문학사적으로 평가를 받는 문인이라면 문학상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세상사 모든 것이 물질과 돈이 좌우하고 지배하는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별로 돈 되지 않는 문학, 오히려 돈 벌지 못하고 돈만 들어가는 문학작품이라는 정신적인 가치 창조를 하는 문학인은 냉엄한 현실 속에서 소외 받고 사회적 약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모든 권리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주의, 지방자치 시대에 주민들의 직접 선거로 뽑은 자치단체장들의 문화적인 소양과 마인드에 따라서 문화 예술, 특히 힘없는 문학이 받는 대우와 처지는 천차만별이다. 문화 마인드가 빵점인 한심한 자치단체장들도 수두룩하다.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야 할 숙원사업과 선거 공약사업도 많은데, 지역에 있는 문인을 알아보고 인정하고 문학상을 우선적으로 제정하고 시행하려는 자치단체장과 추진 관계자들의 마음과 행동은 일단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고흥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송수권 시 문학상 제정 시행과 관련하여 어떠한 문제가 있는 것일까. 송수권 시인은 한국문단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원로 서정 시인이다. 문제는 첫째, 송 시인을 좋아하는 후원인들이나 후원단체가 상금 등 행사비용을 마련하여 추진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누가 시비하고 달려들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번에 알아보니, 놀랍게도 고흥군은 전국 226개 시?군?구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재정자립도가 5.4%로 꼴찌였다. 상금 6천5백만 원을 포함하여 행사 경비 1억5백만원을 군민들의 세금인 혈세(血稅)로 매년 전액 충당한다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문화예술인 조명사업의 일환으로 문학상을 제정한다는데, 송 시인의 고향 생가는 잡초로 폐가(廢家)가 되어 있다. 가난하여 꿈을 펼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청소년들을 매년 105명을 선발하여 백만원씩 장학금을 주는 장학기금 사업의 확충도 장려해야 할 사업이다. 마음을 비우고 바라보면 해야 할 좋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고흥군은 남도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면서 인구는 잘 몰라도 면적은 상당히 넓은 고장으로 알고 있다. 1997년, 내가 재경(在京)광주전남향우회 홍보부회장으로 향우회지(鄕友會誌) 「광주전남향우」에 게재하기 위하여 재경고흥군향우회 체육대회를 취재하려고 효창운동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 1등 상품으로 승용차를 갖다 놓고 진행하는 규모와 운영은 재경광주전남향우회 소속 어느 시?군향우회도 따라갈 수 없는 대단한 행사였다. 지금은 효창운동장 보다 더 규모가 큰 잠실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과문(寡聞)한 탓인지 내가 알기로 재경 고흥 향우들은 전국 어느 시?군?구향우회에서도 할 수 없는 애향심과 친목, 단결의 모범적인 큰 행사를 하고 있다.

둘째, 생존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제정하려면, 고흥 문인과 군민, 출향 문인들까지 의견을 경청하고 취합하는 간담회나 토론회 등 최소한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더라면 지금과 같은 곤혹스러운 상황은 초래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군민의 세금으로 생존 작가의 문학상을 제정하면서 군민과 문인들의 의견 청취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문학상 제정을 반대하는 고흥문학회의 연륜이나 구성원 등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문학상 제정의 합리성과 구체적 타당성이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지금은 관(官)에서 정하면 민(民)은 따라만 가야 하는 권위주의 관료사회가 아니다. 행정기관의 정보의 공개와 공유를 통하여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서 함께 행정서비스를 달성해 가는 거버넌스 정부 3.0 시대이다. 고흥군이 고흥군의회에서 의결된 사안이라서 철회나 수정은 있을 수 없다고 이대로 밀어 붙일 수도 있으나, 문학상 시상과 운영이 고흥 문인들과 군민들의 진정한 축제가 되고 고흥군의 명예를 드높이고 문화예술 진흥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고흥군청 관계자와 고흥군의회 의원. 고흥문화원, 고흥문학회, 고흥작가회의에서 대표 2명씩 파견하여 ‘고흥 문학상 운영위원회’(가칭)를 구성하여 문학상 제정 여부와 문학상 명칭?운영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는 민주적인 기구를 구성하여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고흥군의 놀라운 발전과 고흥군에서 제정하는 문학상의 성공적인 운영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