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안녕’이라더니 새삼스레 실감나는 시점이다. 하루 밤을 자고 눈뜨면 12명의 노인이 자살하고 11명의 노인이 실종된다. 무슨 미스터리 드라마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오늘의 현실이다.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건강통계2015’에서 2013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29.1명으로 회원국 평균 12.0명의 두 배를 넘었다. 자료가 업데이트 되지 않아 한국은 2012년도 통계가 반영됐지만 OECD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연속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래 자살 순위에서 헝가리와 1,2위를 다투었는데 이번엔 헝가리 (19.4명)도 제쳤다. 자살률을 견인하는 것이 노인자살이다. 자살은 청소년 사망 원인 가운데 1위지만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OECD 1위는 아니다. 대신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81.9명(2012년)으로 세계 최고다. 노인의 자살에는 가난, 질병, 고독의 3중고(三重高)가 있다. 지금의 노인들은 대가족 제도에서 성장해 핵가족 시대에 인생의 황혼을 맞은 사람들이다. 가족을 위해 살았으나 정작 노후대비를 못해 빈곤하고 가족 해체로 자식들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세대다. 돌이켜 보면 이 시대 노인들이 격동의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온갖 고통과 역경을 극복한 어르신이다. 자녀들은 점점 부모를 모시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의 사회 안전망은 여전히 부실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병들고 버림받은 노인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고 심리상담하는 ‘텔레체크서비스’를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과거 자살을 시도한 전력이 있는 노인들에게 지역 주민들이 자필로 위로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일부 지자체에서는 야쿠르트 배달원의 홀로 노인들을 방문해 유산균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노인들의 안전도 점검하는 ‘사랑의 야쿠르트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기간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실정을 고려해 본다면 그 심각성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이제는 기댈 언덕조차 없는 상황에서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살아온 그 분들이 노후를 맞은 지금, 자식들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노인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마지막 효도세대로 불리는 이 시대 노인들 대부분은 노후대비조차 제대로 못해 생계형 일자리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자살률 2위인 헝가리는 높은 실업률, 커지는 빈부격차에서 우리와 닮았다.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기의 사회적 혼란에 적응 못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자살 순위에서 일본이 3위, 슬로베니아가 4위다. 동아시아와 체제 전환국가에서 국민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 복지가 잘 갖춰진 북유럽보다 그리스와 터키의 자살률이 극히 낮다는 점은 자살이 국민성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높은 자살률은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증거고, 낮은 출산율은 미래의 삶이 불안하다는 표시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던 낙천주의의 삶을 살았다. 경제는 발전했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 사회가 어느 면에서 건강하지 못한 것은 바뀌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자살은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통합과 안전망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정부와 사회단체, 지역사회 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일본의 100세 시인 시바타 도요는 밀리언셀러가 된 그녀의 첫 시집 ‘약해지지마’에 실린 시를 통해 노인에게 있어서 정서적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표현하고 있다. 고령화는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다. 지금은 자식도 부모를 봉양하지 않으려 한다. 자식이 봉양하지 않는데 정부 지원조차 못 받는 서러운 노인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삶의 석양을 자살로 마감한다는 것은 생명의 가장 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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