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으며 오른 초가을 산행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입력 : 2015. 09. 08(화) 17:04
들녘엔 어느새 코스모스가 피어나서 한들거리는 9월이다. 아침 저녁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산에 잘 가지 못하고 지내다가 나도 모르게 건강이 약해진 징조(徵兆)를 보고 산을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짐하곤 한다. 머리든, 체력이든, 무엇이든 쓰지 않으면 약해지고 무디어지고 서툴게 되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용불용설(用不用說, Theory of Use and Disuse)이 생각난다. '생물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있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학설로 프랑스의 진화론자 J.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가 1809년에 출간한 「동물철학」 (Philosophie Zoologique)에서 주장하였다.
‘동물이 어떤 기관을 다른 기관보다 더 자주 쓰거나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기관은 사용 시간에 비례하여 점차 강해지고 발달되며 크기도 커지게 된다. 반면, 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관은 점차 약화되고 기능도 쇠퇴하여 결국 사라지게 된다.’ 높이 있는 나무의 잎사귀를 따먹는 행동을 반복하다보니 기린의 목은 늘어나서 긴 목이 되었고, 반복적인 이용으로 획득한 특징적인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이론이다.
이용과 불용(Use and Disuse)은 생물종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기본 원리이고, 라마르크는 기린이 목을 늘이는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완벽함을 향한 자연적인 경향성 (natural tendency toward perfection)’으로 설명했다. 펭귄의 날개는 날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지 않게 되어 점차 퇴화되어 작아졌을 것이다. 많은 동물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형태나 작용을 갖는 기관은 이렇게 하여 생긴 것이며, 또한 퇴화기관으로 알려져 있는 많은 흔적기관(痕跡器官)도 이렇게 하여 생긴 것이다.
동물이나 사람의 어느 기관의 장기간 사용과 불사용에 따르는 발달과 퇴화(退化) 현상은 우리들의 마음이나 생각에도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이론 같다. 하나의 대상이나 목표, 사람에 집착하거나 편집(偏執)하여 전체적이고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사고(思考)와 판단을 못하는 경우가 생활 속에서 허다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부족도 있지만 지연과 혈연, 학연과 처지(處地), 이익에 따라서 이기적이고 편협된 독선과 독단에 빠지기 쉬운 것이 허약한 우리 인간 존재이다.
몇 년 전, 살고 있는 지역에서 산악회 회장을 맡아서 전국의 크고 작은 산을 매월 찾아다닌 적이 있다. 관광버스 한 대나 두 대에 탄 회원들은 40대, 50대, 60대 중장년들로서, 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등산을 선택하고 참가하는 건강한 생활인들이다. 나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악천후에도 태백산이나 소백산 정상을 혼자나 두 세명이라도 반드시 정복하는 체력과 투혼(鬪魂)을 가졌었다. 회장을 그만 두고 산행에 빠지면 안된다는 책임감이 없어지자 산에 가는 것을 잊다시피 몇 년을 못 갔더니 건강이 눈에 띄게 약해졌음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두 번 이상 꼭 산에 가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다. 어느 대학 국문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가는 강원도 영월에서 열리는 ‘이효석문화제(메밀꽃 축제)’도 간다고 약속해 놓고 못 가고,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대표적인 대북민간지원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주최하는 통일문제 원탁토론회에도 토론자로 참석한다고 선약해 놓고 못 갔다. 2004년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집행위원으로, 대북 인도적 지원물자 인도단장으로 인천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물자를 싣고 북한 남포항으로 실어다주고 평양까지 다녀왔고, 지금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4월회 산악회에서는 청계산 산행을 가자고 통지가 왔다. 산에 한 번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리에 있는 번암산(840m)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나, 백운산과 광덕산, 백운계곡의 명성에 밀려서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산이다. 계곡에 암반이 넓게 깔려 있어서 반암산, 반암계곡으로도 불린다. 산행 시작부터 가파른 경사가 계속되고 돌출된 기암(奇巖)과 바위 위를 밧줄을 잡고 힘들게 올라가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유명해진 산이 아니라서 그런지, 꼭 밧줄이 있어야 할 80도 가까운 미끄러운 바위길에도 밧줄이 없어서 나무 줄기나 나무 뿌리를 잡고 간신히 올라가야 했다. 사람 발길이 별로 없는 가파른 산길에서 보랏빛 꽃을 피우고 있는 이름모를 산꽃이 나를 반겨주었다. 가을비도 제법 내려서 비옷을 꺼내 입고 빗물에 더욱 미끄러운 바위 길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니 이마와 얼굴, 온 몸에 땀이 비오듯 솟아났다.
서울 노원구 60만 주민에서 80.3%, 약 50만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노원구아파트연합회(전 이름: 노원구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에서 주최한 산악회 발대식 겸 회원단합대회 산행 장소가 번암산이다. 나는 노원구아파트연합회 초대회장으로 참가해서 오랜 만에 번암산 정상 부근까지 갔다가 시간과 비에 쫓겨서 하산했다. 번암계곡 시원한 물에 얼굴과 머리를 씻고, 막걸리도 몇 잔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나의 시 ‘천지여 천지여 백두산 천지여’를 낭송도 했다.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건강법으로 등산은 누구에게나 권유해도 좋은 최고의 보약(補藥)이다.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동물이 어떤 기관을 다른 기관보다 더 자주 쓰거나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기관은 사용 시간에 비례하여 점차 강해지고 발달되며 크기도 커지게 된다. 반면, 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관은 점차 약화되고 기능도 쇠퇴하여 결국 사라지게 된다.’ 높이 있는 나무의 잎사귀를 따먹는 행동을 반복하다보니 기린의 목은 늘어나서 긴 목이 되었고, 반복적인 이용으로 획득한 특징적인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이론이다.
이용과 불용(Use and Disuse)은 생물종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기본 원리이고, 라마르크는 기린이 목을 늘이는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완벽함을 향한 자연적인 경향성 (natural tendency toward perfection)’으로 설명했다. 펭귄의 날개는 날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지 않게 되어 점차 퇴화되어 작아졌을 것이다. 많은 동물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형태나 작용을 갖는 기관은 이렇게 하여 생긴 것이며, 또한 퇴화기관으로 알려져 있는 많은 흔적기관(痕跡器官)도 이렇게 하여 생긴 것이다.
동물이나 사람의 어느 기관의 장기간 사용과 불사용에 따르는 발달과 퇴화(退化) 현상은 우리들의 마음이나 생각에도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이론 같다. 하나의 대상이나 목표, 사람에 집착하거나 편집(偏執)하여 전체적이고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사고(思考)와 판단을 못하는 경우가 생활 속에서 허다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부족도 있지만 지연과 혈연, 학연과 처지(處地), 이익에 따라서 이기적이고 편협된 독선과 독단에 빠지기 쉬운 것이 허약한 우리 인간 존재이다.
몇 년 전, 살고 있는 지역에서 산악회 회장을 맡아서 전국의 크고 작은 산을 매월 찾아다닌 적이 있다. 관광버스 한 대나 두 대에 탄 회원들은 40대, 50대, 60대 중장년들로서, 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등산을 선택하고 참가하는 건강한 생활인들이다. 나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악천후에도 태백산이나 소백산 정상을 혼자나 두 세명이라도 반드시 정복하는 체력과 투혼(鬪魂)을 가졌었다. 회장을 그만 두고 산행에 빠지면 안된다는 책임감이 없어지자 산에 가는 것을 잊다시피 몇 년을 못 갔더니 건강이 눈에 띄게 약해졌음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두 번 이상 꼭 산에 가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다. 어느 대학 국문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가는 강원도 영월에서 열리는 ‘이효석문화제(메밀꽃 축제)’도 간다고 약속해 놓고 못 가고,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대표적인 대북민간지원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주최하는 통일문제 원탁토론회에도 토론자로 참석한다고 선약해 놓고 못 갔다. 2004년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집행위원으로, 대북 인도적 지원물자 인도단장으로 인천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물자를 싣고 북한 남포항으로 실어다주고 평양까지 다녀왔고, 지금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4월회 산악회에서는 청계산 산행을 가자고 통지가 왔다. 산에 한 번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리에 있는 번암산(840m)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나, 백운산과 광덕산, 백운계곡의 명성에 밀려서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산이다. 계곡에 암반이 넓게 깔려 있어서 반암산, 반암계곡으로도 불린다. 산행 시작부터 가파른 경사가 계속되고 돌출된 기암(奇巖)과 바위 위를 밧줄을 잡고 힘들게 올라가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유명해진 산이 아니라서 그런지, 꼭 밧줄이 있어야 할 80도 가까운 미끄러운 바위길에도 밧줄이 없어서 나무 줄기나 나무 뿌리를 잡고 간신히 올라가야 했다. 사람 발길이 별로 없는 가파른 산길에서 보랏빛 꽃을 피우고 있는 이름모를 산꽃이 나를 반겨주었다. 가을비도 제법 내려서 비옷을 꺼내 입고 빗물에 더욱 미끄러운 바위 길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니 이마와 얼굴, 온 몸에 땀이 비오듯 솟아났다.
서울 노원구 60만 주민에서 80.3%, 약 50만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노원구아파트연합회(전 이름: 노원구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에서 주최한 산악회 발대식 겸 회원단합대회 산행 장소가 번암산이다. 나는 노원구아파트연합회 초대회장으로 참가해서 오랜 만에 번암산 정상 부근까지 갔다가 시간과 비에 쫓겨서 하산했다. 번암계곡 시원한 물에 얼굴과 머리를 씻고, 막걸리도 몇 잔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나의 시 ‘천지여 천지여 백두산 천지여’를 낭송도 했다.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건강법으로 등산은 누구에게나 권유해도 좋은 최고의 보약(補藥)이다.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 ihonam@naver.com
|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