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KIA는 지난 28일 우천 취소가 된 광주 한화전에 외국인 투수 필립 험버가 나설 예정이었다. 당초 순서를 감안하면 이날 선발은 양현종의 차례였다. 양현종은 지난 21일 광주 롯데전에서 등판 후 26일 잠실 두산전에 나서지 않았다. 통상 화요일 등판 투수는 일요일 선발을 맡는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은 양현종에게 휴식을 줬다.

김 감독은 28일 "이대진 투수 코치와 일정을 상의해 결정했다"며 "시즌은 길다. 길게 봐야하지 않겠나. 지금 굳이 무리해서 등판시킬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22·23·24·25…"라고 숫자를 센 김 감독은 "내일까지 양현종은 8일 휴식을 갖는다. 8일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푹 쉰 만큼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양현종은 지난 21일 광주 롯데전에서 7이닝 동안 117개의 공을 던지며 승리 투수가 됐다. 김 감독은 경기 후 양현종의 일요일(26일) 등판에 대해 "투구 코치와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결론은 휴식이었다. 한 시즌 최다인 117개의 공을 던진 만큼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었다. 양현종은 "감독님의 배려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KIA는 28일까지 11승12패로 5할 승률에 1승에 부족하다. 에이스 양현종 카드를 쓰면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김 감독의 선택은 험버였다. 그는 "외국인 투수들은 4일 휴식 또는 5일 휴식의 일정을 지켜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며 "양현종을 대신한다고 해서 험버가 빨리 투입되는 건 아니다. 5일 휴식을 취하고 등판한다. 오늘 취소가 되니까 6일 휴식이 되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평소 서두르지 않는다. '순리대로'라는 말이 입에 자주 오른다. 부상 선수가 나오면 무리해서 기용하지 않고, 대체 선수를 찾는 스타일이다. 비로 인해 선발 로테이션이 엉켰지만, 순리대로 가겠다는 입장이다. 바뀐 선발 순서는 양현종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고, 외국인 투수에게는 등판 간격을 일정하게 맞춰주는 1석2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김 감독은 험버-양현종-스틴슨 순으로 이번 주 경기를 치르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주말 잠실 두산전에서 합격점을 받은 서재응과 홍건희은 두 번째 등판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