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패스 위주의 '티키타카'로 세계 축구를 호령했던 '무적함대' 스페인이 몰락했다.
스페인은 1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에스타지우 마라카낭에서 열린 칠레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0-2로 졌다.
네덜란드와의 1차전에서 1-5로 대패하며 크게 흔들린 스페인은 남미의 복병 칠레에 또다시 덜미를 잡혀 일찌감치 짐을 쌌게 됐다. 남은 호주전(24일)에서 이긴다고 해도 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
스페인은 급변하는 시대적 트렌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며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자존심을 구겼다.
이번 대회의 화두는 패스 위주의 점유율 축구가 아닌 두꺼운 수비를 바탕으로 한 빠른 역습 축구였다. 아울러 최근 10년 간 지배했던 포백 전술이 아닌 90년대 후반 유행한 스리백이 다시금 주요 전술로 등장했다.
네덜란드·이탈리아·멕시코 등 대회 초반 선전을 이어가고 있는 팀들은 대체로 3-4-3과 5-3-2를 오가는 변형 스리백을 쓰고 있다.
수비를 두껍게 하면서 길고 정확한 패스로 최전방을 향해 볼을 배달하는 간결한 플레이가 승부를 갈랐다. 네덜란드에 참패를 당했던 원인도 빠르고 날카로운 역습을 제대로 막지 못해서였다.
전반 44분 터진 로빈 판 페르시(31·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동점골을 제외하고 이후 터진 4골은 모두 아리언 로번(28·바이에른 뮌헨)의 역전골과 같은 상황에서 나왔다.
달레이 블린트(24·아약스)가 전방을 향해 길게 찔러주면 발 빠른 공격수가 수비수와의 경합을 이겨내고 결정짓는 형태의 슈팅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스페인은 이미 낡은 전술이 돼 버린 티키타카를 고수했다. 중원에서 높은 볼 점유율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를 벗겨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깊게 자리잡은 두터운 상대 수비벽을 넘기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사비 에르난데스(34·바르셀로나)·사비 알론소(33·레알 마드리드) 등 대부분이 서른 줄을 넘긴 노쇠한 중원 미드필더 라인의 패스는 예전만큼 빠르지 못했고, 번번이 상대에게 뺏겨 역습의 위기를 맞이했다.
상대적으로 발이 느린 중원 센터백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한 번 맞은 위기는 무기력하게 실점으로 이어졌다.
스페인 축구의 위기는 이미 감지돼 왔다. 티키타카의 상징인 FC바르셀로나는 올 시즌 좀처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정규리그 우승을 내줬다.
바르셀로나는 세계축구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년 째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에는 8강에서 고배를 마셨고, 지난 시즌에는 4강에서 떨어졌다.
스페인 축구대표팀은 23명 최종엔트리 가운데 바르셀로나 소속 선수가 7명이나 된다. ⅓에 해당한다. 에르난데스·알론소·이니에스타 등 대표팀의 패스를 전담하고 있는 미드필더들이 모두 바르셀로나 소속이다.
핵심 피드필더 자원의 세대교체까지 실패한 스페인은 때늦은 낡은 전술로 일관하다가 몰락을 맞았다. 84년 월드컵 역사상 전 대회 우승팀이 다음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5번째로 기록 됐다.

호남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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