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기록' 윤성빈, 소치에서 전한 희망가(歌)

'겁 없는 신인' 윤성빈(20·한체대)이 거침없는 질주로 한국 썰매의 역사를 새로 썼다. 소치에서 희망을 전한 스무살 청년은 평창을 기약했다.
윤성빈은 15일 오후 11시45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산악 클러스터의 산키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2014소치동계올림픽 스켈레톤 3·4차 레이스 합계 3분49초57을 기록, 20명 가운데 최종 16위에 랭크됐다.
그가 기록한 16위는 한국 스켈레톤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썰매 1세대' 강광배(41)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 부회장이 지난 2002년 대회에서 세운 종전 최고 20위보다 4계단 올라섰다.
윤성빈은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현재와 같은 4차 레이스 합계로 순위를 가리는 방식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4차 레이스를 경험했다. 현재 대표팀 조인호 코치도 4년 전 3차 레이스까지 20위 안에 들지 못해 4차 레이스 진출에 실패한 바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스켈레톤을 시작한 지 만 2년도 안된 신예가 이토록 눈부신 업적을 기록한 것이다. 2년 전까지 체대 입시를 준비하던 평범한 고교생이었던 윤성빈은 17개월 만에 한국 썰매 최고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인물은 학교 체육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소개로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을 처음 접한 윤성빈은 체대입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함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강 부회장은 개인 지도를 했고, 3개월 간의 짧은 훈련을 거친 그는 2012년 9월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탁월한 운동신경과 근성이 더해져 썰매를 탄 지 3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달며 기대주로 떠올랐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를 본격적으로 누빈 윤성빈은 쑥쑥 성장했다.
2012년 11월 국제대회 첫 출전이었던 2012~2013시즌 아메리카컵 1차 대회에서 23위에 올라 가능성을 알린 윤성빈은 출전 세 번째 대회만에 톱 10에 진입하는 등 나날이 발전했다.
이후 5위, 4위까지 성적을 끌어올린 그는 입상권을 바라본 채 첫 시즌을 마무리했다.
두 번째 시즌인 이번 시즌은 더욱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11월 아메리카컵 1차 대회에서 6위와 5위로 시즌에 돌입한 윤성빈은 2차 대회에서 동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목에 걸며 처음 시상대에 올랐다.
이후로도 윤성빈의 질주는 거칠 것이 없었다. 한 번 타오른 기량은 좀처럼 꺼질 줄 몰랐다.
지난해 12월에는 아메리카컵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대회인 대륙간컵에서 은메달을 수확했고, 올림픽 직전인 지난달 7일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대륙간컵 6차 대회에 출전해 1·2차 레이스 합계 1분45초73으로 마침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윤성빈의 이처럼 거침없는 질주를 한 데에는 조인호(36) 코치의 숨은 노력의 공도 크다. 그는 지난해 1월 세계 3대 썰매로 꼽히는 영국 썰매를 어렵사리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현재 라트비아·독일·영국 썰매가 3대 썰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르틴 두커스(30)와 토마스 두커스(33·이상 라트비아) 형제는 트랙 디렉터를 맡고 있는 아버지의 특제 썰매를 타고 이번 올림픽에서 각각 2위와 4위를 기록했다.
금메달을 차지한 알렉산더 트레티아코프(25·러시아)는 썰매 제작으로 유명한 독일 '슈나이더' 썰매를 이용했다.
좋은 썰매의 필요성을 느낀 대표팀 조인호(36) 감독은 2008스켈레톤세계선수권 금메달 출신인 크리스티안 브롬리(42·잉글랜드)를 통해 썰매 제작을 의뢰했고 어렵사리 공수에 성공했다.
기술 유출을 염려해 폐기 처분해야 할 썰매도 제작자가 직접 할 만큼 썰매 제작 노하우는 폐쇄적이다. 하지만 조인호 감독의 간절함이 브롬리의 마음을 움직였고, 명품 썰매 제작으로 유명한 브롬리 동생이 한국대표팀에 썰매를 새로 만들어줬다.
스폰지처럼 배운 것을 모두 흡수한 윤성빈은 이번 올림픽에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모두 쏟아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스에서 놀라운 기록을 찍었다. 1차 레이스를 57초54로 주파하며 시동을 건 윤성빈은 2차 레이스에서 57초02까지 끌어올리며 9위에 랭크됐다.
'꿈의 톱 10'을 바라보던 윤성빈은 3차 레이스에서의 실수로 57초90으로 밀려나 아쉬움을 남겼지만 마지막 4차 레이스에서 57초11까지 끌어올리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목표한 15위권에 근접한 윤성빈의 시계는 이미 다음 평창 올림픽에 맞춰져 있다. 올림픽 직전 열린 미디어 데이에서 "눈 앞의 큰 것보다 멀리 바라보겠다"던 윤성빈이었다.
말하는 대로 이뤄내는 윤성빈이 있어 4년 후가 더욱 기다려진다. 소치에서 부른 '희망가(歌)'가 평창까지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호남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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