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쇼트트랙 '차세대 에이스' 심석희(17·세화여고)가 소치동계올림픽에서 4년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막혔던 올림픽 금맥을 뚫고 '여왕 대관식'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혜성처럼 나타난 심석희는 한국 여자 쇼트트랙에게 복덩이 같은 존재다. 전이경(38)·진선유(26) 등이 떠난 뒤 끊기다시피 했던 여자 쇼트트랙의 계보를 확실히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는다. 4년 전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그가 이제 어엿한 대표팀의 기둥이 돼 소치동계올림픽을 이끌게 됐다.
심석희는 오는 2월13일 오후 9시7분(한국시간)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리는 여자 500m 결승을 시작으로 15일 오후 9시9분 1500m, 18일 오후 7시56분 3000m 계주, 22일 오전 2시 56분 1000m 결승에 출전할 예정이다.
강원 강릉이 고향인 심석희는 7살 때 다섯 살 위인 친오빠를 따라 강릉스케이트장을 찾으면서 스케이트를 처음 접했다. 당시 조재범 코치의 권유로 선수의 길을 걷게 된 심석희는 더 나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오륜중학교 진학을 위해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한다.
오륜중 입학과 함께 심석희는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다. 마침내 졸업을 앞둔 지난 2012년 1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제1회 동계유스올림픽에서 가능성을 입증했다. 500m와 1000m에서 우승을 차지한 심석희는 대회 2관왕에 올랐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12년 3월 세계주니어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심석희는 대회 3관왕에 오르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개인종목인 500m·1000m·1500m 우승과 1500m 슈퍼파이널(3위), 단체종목인 3000m 계주 우승 등 출전한 모든 종목에서 입상하는 기염을 토하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시니어 무대에 진출한 심석희는 본격적인 대표팀 에이스로 발돋움 했다. 시니어 첫 시즌이었던 지난 2012~2013시즌 출전한 6차례 월드컵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2013~2014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가볍게 종합 우승을 차지한 심석희는 올 시즌 월드컵에서도 맹활약을 이어갔다. 1차 월드컵부터 4차까지 모두 금메달을 거머쥐며 지난 2012~2013시즌에 이어 10개 대회 연속 금빛 행진을 벌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1차 대회에서 3관왕(1000m·1500m·3000m 계주)에 오른 심석희는 서울에서 열린 2차 대회에서는 1000m 우승,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3차 대회 3관왕(1000m·1500m·3000m 계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4차 대회 1500m 우승을 차지했다.
서울에서 열린 2차 대회 당시 주종목인 1500m 부문 우승을 김아랑(19·전주 제일고)에게 내주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종목별·국가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3·4차 월드컵에서는 1500m 금메달을 놓치지 않으며 소치에서 '금빛 질주'를 예약했다.
심석희를 앞세운 한국 여자 대표팀은 500m·1000m·1500m 개인전 출전권을 각각 3장씩 획득했다.
165㎝ 안팎인 대부분의 선수들과 달리 심석희의 키는 174㎝로 매우 큰 편이다. 부족한 근력과 순발력 때문에 짧은 시간에 승부를 내는 500m 종목에서는 이 부문 '절대 강자' 왕멍(29·중국)에 밀려 힘을 못 쓰고 있다.
하지만 탁월한 유연성과 지구력을 갖춘 심석희는 막판 스퍼트에서 강점을 보이며 1000m·1500m에서는 최강자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타면서도 경기만 나서면 강심장으로 돌변하는 그는 타고난 승부사 기질을 갖추고 있다.
소치를 너머 평창을 바라보는 17세 여고생 스케이터 심석희가 들려줄 올림픽 스토리가 궁금하기만 하다. 밴쿠버에서 끊긴 금맥을 새로 뚫고 구겨진 쇼트트랙 강국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호남신문 기자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