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한 16년 동안 그는 빨간색 유니폼만 입었다. 이제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는다. 주루코치로 한화 이글스와 정식 계약한 이종범(42) 이야기다.
이종범은 15일 오전 대전구장에서 열린 김응용(71) 감독 취임식에 함께 했다.
지난 3월말 은퇴를 발표하고 5월말 은퇴식을 가진 이종범은 KIA의 플레잉 코치, 코치 연수, 연봉 보전을 모두 거절했다.
특별한 소속이 없었던 이종범은 지난 8일 새롭게 한화 사령탑을 맡은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이종범은 10일 한화와 연봉 5000만원에 주루코치로 정식 계약했다.
이종범 코치는 1993년 KIA 타이거즈 전신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 일본에 진출하기 전인 1997년까지 김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선수로서의 신인 시절을 김 감독 밑에서 지냈던 이 코치는 지도자로서의 첫 발도 김 감독을 보좌하면서 내딛게 됐다.
이날 취임식에 처음으로 빨간 유니폼이 아닌 유니폼을 입은 이 코치는 배번 '73번'을 달고 있었다.
이 코치는 "지도자로서는 처음이지 않는가. '0'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73번을 골랐다. 나도 예전의 이종범을 버리고 배움의 시작에 섰다"고 뜻을 설명했다.
그는 "코치로서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선수들이 마음 아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받아주기 위해 왔다"며 "한화에 무엇이 최우선인지 공부하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이 코치는 "김 감독님의 부름을 받고 왔다. 감독님이 '야, 한 번 도와줘라'고 말씀하셨다. 포괄적인 의미는 같이 하자는 말씀"이라며 "프로 선수 생활도 김 감독님 밑에서 시작했는데 코치 생활도 김 감독님 밑에서 시작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주루코치를 맡은 이 코치는 "선수들이 최대한 실패하지 않고 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선수들이 실패해도 133경기를 통해 어떤 것이 중요한지 알려주면서 열심히 하겠다"며 "친형 같은 코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그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에이스 류현진(25)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유계약선수(FA)가 되서 가는 것이 낫다고 본다. 선수 입장에서 보면 FA가 된 후 대박을 터뜨려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종범 코치와의 일문일답

- 코치로서 첫 공식석상인데 각오는 어떤가. 배번 73번은 어떤 의미가 있나.

"이제 이종범 선수가 아닌 코치다. 코치로서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선수들이 무엇을 가장 마음 아파하는지 받아주려고 왔다. 예전 이종범을 버리고 나도 배움의 시작에 섰다. 이 팀이 4년간 세 차례 꼴찌를 했는데 거기서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첫 번째다. 감독님을 잘 보필하고 기존의 코치님과 잘 이야기해서 어떤 것이 한화에 가장 필요한지 최우선인지 공부하겠다. 배번은 '0'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73번을 골랐다."

- 그간 선택의 기로에 많이 섰었는데 한화 선택 배경과 과정은.

"주니치에 코치 연수를 가려고 정리해 놓은 상태였다. 이야기도 다된 상태였다. 추석 때 일본도 다녀왔다. 그런데 8일 오후 김응용 감독님이 한화에 가셨다고 발표가 났다. 김응용 감독님의 부름을 받고 왔다. 사실 가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같이 해보자고 하셨다. 프로 선수의 시작도 김응용 감독님과 했는데 코치 생활도 김 감독님 밑에서 시작하는 것이 의미있지 않나 생각했다. 한화 구단에도 매력을 느꼈다."

- 구체적으로 감독님이 뭐라고 하셨나.

"'야 한 번 도와줘라'고 말씀하셨다. 포괄적인 의미는 같이 하자는 말씀이다. 두말없이 한다고 했다. 여기 와서 한화에 어떤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선수들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다. 행동, 말 등 모든 것을 가르치고 싶다."

- 주루코치를 맡았다. 한화는 뛰는 야구가 약한 팀인데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가르칠 것인가.

"주루코치가 확정은 아니다. 감독님이 고르라고 하셨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파악하고 어떤 상황에, 어떤 분위기에 뛰어야 하는지 가르치겠다. 상대 투수, 포수 벤치 사인 등을 캐치할 수 있는 것이 내가 아닌 선수들이다. 선수들이 실패하지 않고 뛰도록 연습시키겠다. 어떤 상황에 뛰어야 할지를 가르쳐야 할 것 같다."

-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코치로서는 신인이다. 어떤 스타일의 지도자가 되고 싶나.

"신인 때 김응용 감독님을 만났다. 김응용 감독님과 똑같다. 두렵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스러운 자세로 지도하겠다. 저 역시 코치 초년병이니 실패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패를 거울삼아 내일을 향해 뛰고 또 내일 실패하면 모레를 향해 뛰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다. 선수들에게도 이것을 주입시키겠다. 경기에서 실수해도 133경기를 통해 어떤 것이 중요한지 알려주고 싶다."

- 한화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김응용 감독이 불렀으면 어느 팀이든 갔겠는가.

"안에서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이 천양지차인 팀이다. 선수들을 만나면서 지도하면 괜찮은 선수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패배주의를 바꿔주면 이기겠구나 해서 매력을 느꼈다. 김응용 감독님이 불러주시면 어디든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김응용 감독님이 여기 오셨을 때 나도 놀랐다."

- KIA와의 맞대결은 어떤가.

"어느 팀이든 적이다. 꼭 KIA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KIA의 약점이 무엇인지 KIA를 상대로 어떻게 뛰는 야구에서 이길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시급할 뿐이다. 나는 뛰어봤으니 분위기나 상황을 안다. 경기를 하다보면 자제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자제를 시키는 것도 코치의 몫이다. 분위기를 봐서 과감하게 뛰어서 동점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길 수 있는 야구를 할 수 있다. 그런 것은 상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유학과 현역 복귀의 기로에 섰는데 김응용 감독님 쪽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했고, 결정을 내린 뒤 가족들이 기뻐했다. 아들은 운동을 하고 있어 아버지가 현역으로 뛰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것 같다. 아들이 힘내라고 한 것이 마음에 와닿는다."

- 오렌지색 유니폼은 어떤 느낌이 드나.

"살다가 보면 사람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변한다. 예전에는 항상 빨간 유니폼만 생각하다가 한화 유니폼을 입으니 그 자리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위치에 가더라도 최선을 다해야지 프로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 한화에 친한 선수가 있을 것 같은데 통화나 이야기를 했나.

"통화나 전화는 하지 않았다. 여기 와서 이야기했다. (정)민철이는 절친이고 일본에서 같이 뛰기도 했다. 소통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광주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광주로 돌아가지 않아서 저를 미워하는 팬들이 있다. 내가 거기서 열심히 해서 그 고장을 빛냈다. 내가 떠나서 아쉬움이 있겠지만 코치로서 어느 팀이든 가서 지도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서운한 것도 있겠지만 언젠가 돌아갈 팀일 수도 있다. 한화에서 열심히 하고 돌아간다면 족하지 않겠는가."

- 비교적 늦은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박찬호가 은퇴를 고민하고 있는데 선배 입장에서 조언을 한다면.

"이제 선수 대 선수가 아니라 선수 대 코치인데 본인의 생각이 중요하다. 구단도 아닌 본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좋다. 현 위치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한화에 적합할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박찬호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의 결정에 따라 이야기를 할 것이다."

- 한화에서 주목하는 선수가 있나.

"기존에 있는 선수들은 잘 아는데 젊은 선수들은 잘 모른다. 뛰어 줄 수 있는 젊은 선수들이 많다. 이제 이름을 파악을 해서 이야기를 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 김응용 감독이 주문한 것이 있나.

"감독님은 주문하시는 스타일이 아니다. 코치에게 맡긴다. 선수 시절 6년간 감독님 밑에 있었을 때 동계훈련에서 20번 이상 본 적이 없다. 감독님은 선수, 코치를 믿기 때문에 따로 주문하시지 않는다. 나도 알아서 할 것이다. 선수들도 알아서 프로 근성을 가지고 해줘야 한다."

-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나.

"선배님들도 있고 그래서 카리스마 있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인상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나도 막말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그렇게 하더라도 돌아서서 안아줄 수 있는 코치가 되고 싶다. 친형 같은 코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류현진의 해외 진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FA가 되서 가는 것이 낫다고 본다. 내가 어릴 때 그렇게 해봤으니까. 선수 쪽으로 생각하면 FA가 돼 가는 것이 낫다. 구단이 선택을 해야 가는 입장이지 않나. 구단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다. 그것에 따라 류현진이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수 입장에서 보면 FA 돼 대박을 터뜨려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