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강한 서브, 스피드, 조직 중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패배주의만 보였다.”
2012년 런던올림픽 배구 예선 남자대표팀 경기를 지켜본 배구인들은 “한국 남자배구가 갈 데까지 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대표팀은 5일 일본에 지면서 8개국 중 7위로 추락, 자력으로는 본선 진출이 불가능해졌다. 12년째 올림픽 본선무대를 밟지 못하면서 ‘배구 변방국가’로 몰락했다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남자배구의 몰락은 2005년 프로배구 출범 후 외국인 선수 중심의 ‘몰빵배구’가 트렌드로 자리를 잡으면서 이미 예고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 때까지는 걸출한 공격수로 활약했던 에이스들도 프로에선 가빈(삼성화재)이나 마틴(대한항공) 등에게 밀려 보조공격수로 뛰는 게 현실이다.
감독들 역시 눈앞의 성적에 연연하다 보니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 보조 역할을 하던 선수들이 국제무대에 나섰다고 갑자기 ‘해결사’나 ‘거포’로 둔갑할 리가 없다. 최근 4경기 동안 센터 신영석(40점·드림식스)이 에이스인 김학민(39점·대한항공), 박철우(32점·삼성화재)보다 많은 점수를 올렸다는 점은 대표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면돌파 대신 속공에 많이 의지했다는 것은 주공격수의 결정력이 그만큼 약화됐다는 방증이다. 속공은 경기 흐름을 끊는 감초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승리까지 만들 수는 없다. 양 날개가 살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게 배구다.
대표팀에 패배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한 배구인은 “축구선수들은 대표팀에 발탁되면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만 배구선수들은 대표팀 발탁을 기피한다”면서 “어차피 외국과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데 부상이라도 당해 시즌을 뛰지 못할 경우 누가 책임지느냐는 의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애당초 대표팀 지도자와 선수 발탁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배구인들은 “감독과 코치를 선발할 때 적정성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면서 “반발에도 불구하고 배구협회 주요 인사들이 담합해 지도자를 뽑은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본선 진출에 성공한 김형실 여자대표팀 감독은 대부분의 프로경기를 직접 관람하며 선수들의 몸상태를 일일이 체크하고 선수들을 선발했다. 반면 남자대표팀은 풍문과 구단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국가대표를 선발했다는 게 배구인들의 주장이다.
한 배구인은 “한국 배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차제에 선수 선발·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 야구나 농구처럼 국가대표 선발과 관리를 프로연맹(KOVO)으로 이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표팀은 6일 베네수엘라와의 4차전을 3-0(27-25 25-22 25-15)으로 이겨 3연패 후 1승을 거뒀다.

호남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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