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농구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바스켓 퀸' 정선민(38·KB국민은행)이 정든 코트를 떠났다.
정선민은 3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WKBL사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선수 생활을 마감할 순간이 왔다. 29년 동안 코트에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정선민은 "코트에서 열정을 다했기에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낀다. 잘 해왔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은퇴 기자회견이라는 자리도 마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격려하고 응원해 준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산여중~여고를 졸업한 정선민은 1993년 SK를 시작으로 성인 무대에 입문해 신세계,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에서 총 9회나 우승을 이끌었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여자프로농구가 출범한 이후까지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선수였다.
프로무대에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7회, 득점왕 7회를 차지했고 마지막 시즌이 된 2011~2012시즌에는 국민은행을 6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으로 인도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 한국 최초로 진출했다.
정선민은 자신의 농구인생을 "120점"이라고 했다. "잘 해 왔다. 정선민이기 때문에 이런 자리가 가능한 것 아니겠나. 농구장을 떠나서도 영원히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00점보다 더 많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9년 농구를 하는 동안 16년간 태극마크를 단 정선민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99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 4강, 2007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에 크게 일조하며 국위선양에도 앞장섰다.
코트를 떠나는 것이 아쉬운 듯 기자회견 중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정선민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진로를 고민할 예정이다.

◇다음은 정선민과의 일문일답

- 은퇴 소감은.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행복한 시간이었다. 선수생활을 잘 해왔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은퇴 기자회견이라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해 준 팬들에게 감사하다."

- 농구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 권유로 처음 농구공을 잡았을 때, 시작은 미미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굉장한 기록들과 영광스러운 순간이 많았기 때문에 끝은 창대했다고 말하고 싶다."

- 선수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우승 반지 1번 끼기도 힘든 일인데 무려 9번이나 했다. 우승 순간순간이 모두 값진 영광이다. 아쉬운 점은 지난 시즌에 국민은행에 우승을 선사하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 꿈이었는데 성사되지 못해 안타깝고 아쉽다."

- 제2의 정선민은 누구라고 보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서 독특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 바스켓 퀸 같은 수식어를 달아준 것도 한 역할에 치중하지 않고 다방면에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나를 닮은 선수가 없었으면 좋겠다. 영원히 나의 캐릭터가 기억될 수 있도록 영원했으면 좋겠다."

- 농구인생을 점수로 매긴다면.

"120점이다. 정선민이니까 이런 자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잘 해 왔기 때문에 농구장을 떠나서도 영원히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00점보다 더 많이 줄 수 있을 것 같다."

- 일각에서 이기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는데.

"나는 좋은 말도 많이 들었지만 나쁜 말도 많이 들은 선수다. 산전수전를 다 겪었다. 농구를 잘 했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농구를 적당히 잘 하면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만 해 준다. 예전에는 그런 선수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정선민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고 싶다."

- 기억에 남는 지도자와 의지했던 사람이 있다면.

"정말 많다. 많은 감독님들에게서 좋은 점을 많이 흡수한 것 같다. 29년 선수생활하면서 나를 가르쳐주셨던 지도자는 모두 스승이고 은사다. 지금 자리도 그 분들 덕이다. 슬럼프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많았던 선수가 나다. 정신적인 부분을 같이 이해해준 것은 후배들이었다."

- 신세계가 해체됐는데.

"신세계도 창단 멤버로서 첫 시즌부터 준우승을 이끌었고, 그뒤 우승하면서 거침이 없었다. 명문구단으로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에 구단에서 프로는 성적을 반영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팀을 해체하는데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농구단이 꼭 성적을 내야만 잘 된다고 한다면 KB국민은행이 제일 먼저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겠다. 한 번도 우승 못한 팀이다. 신세계 해체는 선수 입장에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여자농구의 방향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라고도 본다. 인수에 관심을 갖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후배들은 어쨌든 한국 여자 농구선수라는 긍지를 잊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 남자 프로농구에서 비슷한 입장인 동기생 서장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결정적으로 은퇴를 마음 먹게 한 것이 (추)승균의 은퇴였다. 늘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기 역할을 다 하면서 나이가 있어도 열심히 하는구나 했는데 은퇴를 결정한 것을 보고 당혹스러웠다. 한편으로 참 잘 한 일이라는 생각도 있다. (서)장훈이가 욕심을 안 부렸으면 좋겠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어떤 모습이 팬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한다. 1974년생들이 한국 농구에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함께 좋게 늙어가는 친구 사이였으면 좋겠다."

- 정선민하면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코트에서만큼은 다방면에서 최고였던 선수, 농구도 잘 하고 말도 잘 하고 팬들이 기억하는 선수, 농구장에서 안 보이는 것 자체가 아쉽고 코트에 있을 때가 가장 멋졌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 향후 계획?

"당분간 내가 뭘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 선수로서의 모든 생활이 끝났지만 어떤 계획을 가질지에 대해서는 숨을 좀 돌리고 아무 생각 없이 고민하고 싶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사람들 만나고 여행도 다니고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하나씩 만들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