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 먹고 눈 멀게"…문명의 이기(利器)로 젊은이들 병들어 간다

# 취업전선에 뛰어든 김흔남(27·가명)씨는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22세에 공군에 입대한 김씨는 제대를 앞두고 받은 정기검진에서 소음성난청 판정을 받았다. 당시에는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어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김씨를 외면했다. 가진 기술이라곤 기계를 다루는 재주 뿐인 김씨, 취업 지원을 해도 서류는 언제나 100점이었지만 신체검사가 늘 문제였다. 김씨는 "오늘도 '소음성난청'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고 호소했다.

# 각종 영어능력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은 구백점(27·가명·여)씨는 최근 모 기업체 공채 시험에서 낙방했다. 최종면접에서 면접관의 질문을 잘 알아듣지 못해 "뭐라고요?"라고 되물은 것이 화근이었다. 영어 리스닝 공부를 위해 매일 장시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생활해왔던 구씨는 결국 소음성난청이라는 질병으로 취직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 "뭐라고? 다시 말해봐." 박반복(25·가명)씨는 오늘도 친구들에게 되묻는다. MP3플레이어 등을 이용해 꽝꽝 울리는 음악을 즐겨 듣곤 했던 박씨는 2년 전 병원에서 소음성난청 판정을 받았다. 이후 박씨는 '사오정'이 됐다. 친구들이 하는 말에 귀기울여 보지만 결국 다시 물어 답을 찾는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소음성난청은 소음에 장기간 노출돼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과거에는 제조업이나 광업 등 직업상 오랫동안 소음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상의 소음 정도가 높아지면서 일반인 소음성난청 환자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도로마다 마주하는 공사장 소음을 비롯해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찢어질 듯한 음악 소리, 빵빵 거리며 지나가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소리가 소음성난청 환자 증가에 한 몫 거들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소음성난청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수는 2006년 3929명에서 2008년 5197명으로 32%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2008년 30대 이하 환자수가 2357명으로 2006년(1863명)보다 26% 넘게 늘어나는 등 급격한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특히 스마트폰, MP3플레이어 등 휴대기기 보편화로 인해 젊은 세대에서 소음성난청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휴대기기 관련 업계는 "개인의 기호에 따른 선택"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소음성난청 환자가 증가추세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소비자의 주의가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에 업계 쪽에서 관여할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업계의 관계자는 "자동차 속도는 운전자가 스스로 조절해야 하듯 전자제품도 소비자들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다"면서 "일방적으로 제조업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업계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정종우 교수는 "사회적 소음에 대한 노력이 전무한 상태"라며 "관련 업계 쪽에서 휴대기기 제품 등에 음량 감소를 제안하는 경고 문구 하나라도 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귀'도 휴식을…"이어폰 보다는 헤드폰 사용해야"

과거에 직업병으로 간주됐던 소음성 난청이 최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급증,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치료비용도 적잖게 들어가 국가가 일부 부담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소음성 난청은 소음 때문에 생기는 난청이다. 즉, 귀 속 달팽이관 안에 소리를 감지하는 감각유모세포가 소음에 의해 손상되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물리적인 손상과 대사적 손상이 있다. 전자의 경우 음압에 의해, 후자는 유모세포를 망가뜨리는 활성산소의 과도 배출로 발생한다.
이 처럼 소음성 난청이 증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자동차 경적소리,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찢어질 듯한 음악소리 등 도시소음을 비롯해 스마트폰, MP3플레이어 등 휴대기기 보편화 등을 주된 원인으로 들었다.
도시의 각종 소음 등으로 이미 청력이 손상된 상태에서 휴대기기 등을 이용해 음악을 듣기 때문에 청력 기능이 완전히 망가진다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정종우 이비인후과 교수는 13일 "소음성 난청은 소음 때문에 생기는 이명질환"이라며 "도시소음 증가와 휴대기기의 보편화, 여가시간 단축 등으로 젊은 층 사이에서 소음성 난청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과거보다 소음 노출시간은 길어지고, 반면 여가시간은 줄었다"며 "손상된 청력에 충분한 회복시간을 주지 않고 계속 소음에 노출되다 보니 청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어떤 소음이든 다 난청을 일으키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소음성난청 유발에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며 "하나는 큰 소리, 또 다른 하나는 노출 지속시간"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규정에 따르면 노동자는 소음이 지속되는 작업환경에서 90㏈(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8시간 이상 들을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소음성 난청 유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95㏈의 경우는 4시간, 100㏈은 2시간 등으로 제한된다.
즉, 소리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노출시간도 청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이 때문에 습관적으로 소음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선 "사회적인 차원에서 소음 발생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이나 광업 등 소음이 따르는 작업장에서 소음기를 사용한다던지, 기계 자체에 소음을 방지하는 장치를 설치하는 등의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음성 난청 예방을 위한 관련 당국과 업계의 관심도 촉구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직업병 차원에서 소음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이어지고 있지만, 일상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며 "환경보호 캠페인의 연장선에서 도시소음 등을 줄이기 위해 소음성 난청의 심각성에 대한 환기를 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 업계에서 휴대기기 제품 등에 음량 감소를 제안하는 경고 문구 하나라도 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개인적으로는 "소음을 막을 수 있는 귀마개를 착용하거나 음악을 들을 때 헤드폰을 사용하는게 좋다"고 전했다.
똑같은 크기의 음악을 들을 경우 귀에 꽉 끼는 이어폰은 모든 소리가 고막을 향해서 직접 전달되지만 헤드폰은 음악이 보다 넓은 방향으로 퍼지면서 고막에 미치는 물리적 힘이 더 적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흡연자의 경우 담배를 끊는 것이 소음성 난청 예방에 좋다"고 강조했다. 담배는 기본적으로 혈관 축소를 야기시키기 때문에 흡연할 경우 귀로 가는 혈액공급을 줄여 소음성 난청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음이 큰 작업장의 근로자를 흡연자와 비흡연자로 나눠 청력 검사를 실시한 결과, 담배를 피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청력이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무엇보다 소음성난청의 경우 회복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재활치료도 따로 없기 때문에 스스로 청력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관련업계 "개인취향일 뿐 책임없다"…보건당국은 "나몰라라"

전문가들은 휴대기기의 급증과 보편화에 따라 최근 소음성 난청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와 관련업계 등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마련과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14일 국내·외 휴대기기 생산업체들은 소음성 난청 환자가 증가세 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소비자의 기호에 따른 선택이기 때문에 업계에서 직접 관여할 사항은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 휴대기기 및 이어폰 전문업체 'A 사'의 경우 제품의 뒷면에 표기된 여러 주의사항 중 하나로 '귀를 자극하지 않도록 커다란 음량으로 장시간 청취를 피해야 한다'는 문구만 기재했을 뿐, 청력보호를 위한 안전한 음량 크기와 구체적인 ㏈(데시벨) 수치 등은 적시하지 않았다.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장 내 직원들도 소비자들의 청력보호에 요구되는 ㏈ 수치 등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음성 난청 우려에 대한 시민들의 문의에 답변할 전문인력 조차 확보하지 못한 실태다. 지난해 4월 국내 굴지의 휴대기기 업체 'B사'가 출시한 제품의 경우, 음량이 13(0~15)이 되면 '현재 볼륨 이상으로 지속적으로 음악을 듣는 경우 청각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라는 문구가 액정에 표시된다.
큰 소리로 음악 등을 듣는 소비자들에게 주의를 준다는 취지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제품을 출시한 업체 측은 이 같은 기능이 상품에 포함돼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오히려 "그런 기능이 저희 제품에 있었냐"며 반문했다. 뿐만 아니라 청력에 손상을 주는 정확한 ㏈ 수치 등은 아예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해외 휴대기기 업체 'C사'과 'D사' 등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이 아닌 이유로 상품 포장에 제시된 문구는 모두 영어로 표기돼 있었으며, 주의사항 조차 적시하지 않은 제품도 허다했다.
하지만 업계관계자들은 "음량조절은 소비자들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며 "그들의 자유의지 까지 막을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대기업 측은 치열한 판매경쟁 상황에서 소음성 난청까지 신경쓰긴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이 처럼 소음성난청에 대한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짐에도 불구, 관련업계의 대응은 저조하다 못해 전무한 형편이라 관계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 관계 당국은 일반인 소음성 난청 환자의 증가 추세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소음성 난청은 본 부서 소관이 아니다"며 다른 부서로 책임을 돌렸다.
또 같은 부처의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오히려 기후 쪽 관계자와 만나 해결방안을 들을 것을 권유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 해결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무성의한 태도는 곧 국민의 건강증진을 책임지는 정부가 소음성 난청 환자의 급증에 대한 중장기 대책마련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관련 업계와 정부 당국의 무관심 속에 시민들의 귀는 갈수록 병들어 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지식경제부 등 관계부처는 지금이라도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최호환 기자

호남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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