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간양록'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
김윤호 주필입력 : 2022. 11. 20(일) 17:59
지난 11월 11일(금), 영광군 영광문화원에서 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2022년 제3회 강항문화제의 일환(一環)으로 제9회 수은강항선생 국제학술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수은(睡隱) 강항(姜沆, 1567∼1618년) 선생은 정유재란의 1597년(선조 30년) 9월 23일, 고향 영광군 해상에서 함께 피난 떠났다가 헤어진 아버지의 배를 찾으러 다니는 도중에 왜적(倭敵)에게 잡혀갔다. 일본에서 2년 6개월 포로생활을 하다가 1600년 4월 2일 귀국길에 올라서 5월 19일 부산포에 도착했다.
강항은 24세(1593년)에 문과에 급제했지만, 30세에 전쟁 포로가 되어 세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구사일생으로 생환 후에는 공조좌랑, 형조좌랑을 지낸 문신이다. 한참 청운의 꿈을 펼쳐야 할 나이에 침략군 왜군 포로가 되는 수난을 당했다는 데에 주목한다. 더구나 당시 문화 수준이 높지 않은 전국시대 직후의 섬나라 적국 일본에 끌려가는 심정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절박감과 절망감이 앞설 수도 있다. 말 못할 수모와 고뇌, 불면의 밤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이렇게 엄청난 절망과 고난을 극복하고 끌려간 포로 신분으로 적국 지식인들에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유교(주자학)를 가르쳐 주고 살아 돌아온 것 자체가 기적이요, 걸출한 젊은 영웅이다. 강항은 학문과 인품에서 적국의 문무(文武) 지배층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탁월한 선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는 예의와 인간애 보다는 힘과 탐욕이 지배하는 무지막지한 어두운 중세시대의 전쟁포로로서 살아 돌아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 일본에 끌려간 포로는 약 9만∼14만명이고 살아 돌아온 사람은 6,300여 명이다. 포로들이 직접 자신의 체험을 실기로 남겨 전해지는 것은 강항의 『간양록(看羊錄)』, 노인(魯認, 1566~1622)의 『금계일기(錦溪日記), 정경득(鄭慶得, 1569~1630)의 『만사록(萬死錄)』, 정희득(鄭希得, 1575~1640)의 『월봉해상록(月峯海上錄)』, 정호인(鄭好仁, 1579~?)의 『정유 피란기(丁酉 避亂記)』 등 다섯 편의 작품이 있다. 이 중에서 강항의 『간양록』이 가장 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있다.
『간양록』은 16세기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역사, 지리, 풍토, 습속, 문학, 유학(儒學) 등 학문을 망라해서 객관적으로 적어 놓은 최초의 종합 체험 작품집이다. 강항은 왜적에게 잡히는 과정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의 신주(神主)를 잃어버리고, 이후 바다 위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보게 되며, 강제로 헤어지게 된다. 인간적인 극한의 고통과 한(恨)이 피 끓는 젊은 강항을 단련시켜서 안일한 포로생활을 하도록 허락하지 안했을 것이다. 고난은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김숙희 교수(전남대)의 주제 발표 논문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간양록(건거록)』의 가치와 의의’에 대한 토론자로 참가했다. 자신을 죽지 못한 죄인으로 생각하는 강항은 죄인이 타는 수례라는 뜻으로 『간양록』을 『건거록(巾車錄)』이라고 적었다.
『간양록』은 왜군에게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과 일본에서의 생활을 그린 적중봉소(賊中封疏)｣, 일본의 관직 명칭과 지리와 물산에 관한 적중문견록(賊中聞見錄), 포로의 심정과 포로들에게 보내는 당부를 적은 고부인격(告俘人檄), 일본의 풍속을 적은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 일기체로 기술한 체험과 한시(漢詩) 31수가 담긴 섭란사적(涉亂事迹)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전남 영광군 불갑면 내산서원(內山書院)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간양록』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 의한 국가지정문화재(보물)의 지정 기준에도 충족된다. 『간양록』은 국가보물로서 역사적 가치(시대성과 역사적 사건 관련성), 예술(문학)적 가치(보편성과 독창성), 학술적 가치(후대의 연구자료) 외에 16세기 일본 전쟁포로의 체험기록으로서 희소적 가치(희소성)까지 갖추고 있다.
나는 내년부터 강항의 휼륭한 삶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강항정신계승 나라사랑 그림그리기 대회와 글짓기 대회’를 영광군 내 초·중·고·대학생부터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자는 제안을 했다.
만시지탄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소중한 기록유산으로서 『간양록』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인정하여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마땅히 지정되어야 한다. 문화재청과 관계기관의 획기적인 인식 전환과 전향적 정책 결정을 기대한다.
김윤호 주필
수은(睡隱) 강항(姜沆, 1567∼1618년) 선생은 정유재란의 1597년(선조 30년) 9월 23일, 고향 영광군 해상에서 함께 피난 떠났다가 헤어진 아버지의 배를 찾으러 다니는 도중에 왜적(倭敵)에게 잡혀갔다. 일본에서 2년 6개월 포로생활을 하다가 1600년 4월 2일 귀국길에 올라서 5월 19일 부산포에 도착했다.
강항은 24세(1593년)에 문과에 급제했지만, 30세에 전쟁 포로가 되어 세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구사일생으로 생환 후에는 공조좌랑, 형조좌랑을 지낸 문신이다. 한참 청운의 꿈을 펼쳐야 할 나이에 침략군 왜군 포로가 되는 수난을 당했다는 데에 주목한다. 더구나 당시 문화 수준이 높지 않은 전국시대 직후의 섬나라 적국 일본에 끌려가는 심정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절박감과 절망감이 앞설 수도 있다. 말 못할 수모와 고뇌, 불면의 밤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이렇게 엄청난 절망과 고난을 극복하고 끌려간 포로 신분으로 적국 지식인들에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유교(주자학)를 가르쳐 주고 살아 돌아온 것 자체가 기적이요, 걸출한 젊은 영웅이다. 강항은 학문과 인품에서 적국의 문무(文武) 지배층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탁월한 선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는 예의와 인간애 보다는 힘과 탐욕이 지배하는 무지막지한 어두운 중세시대의 전쟁포로로서 살아 돌아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 일본에 끌려간 포로는 약 9만∼14만명이고 살아 돌아온 사람은 6,300여 명이다. 포로들이 직접 자신의 체험을 실기로 남겨 전해지는 것은 강항의 『간양록(看羊錄)』, 노인(魯認, 1566~1622)의 『금계일기(錦溪日記), 정경득(鄭慶得, 1569~1630)의 『만사록(萬死錄)』, 정희득(鄭希得, 1575~1640)의 『월봉해상록(月峯海上錄)』, 정호인(鄭好仁, 1579~?)의 『정유 피란기(丁酉 避亂記)』 등 다섯 편의 작품이 있다. 이 중에서 강항의 『간양록』이 가장 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있다.
『간양록』은 16세기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역사, 지리, 풍토, 습속, 문학, 유학(儒學) 등 학문을 망라해서 객관적으로 적어 놓은 최초의 종합 체험 작품집이다. 강항은 왜적에게 잡히는 과정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의 신주(神主)를 잃어버리고, 이후 바다 위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보게 되며, 강제로 헤어지게 된다. 인간적인 극한의 고통과 한(恨)이 피 끓는 젊은 강항을 단련시켜서 안일한 포로생활을 하도록 허락하지 안했을 것이다. 고난은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김숙희 교수(전남대)의 주제 발표 논문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간양록(건거록)』의 가치와 의의’에 대한 토론자로 참가했다. 자신을 죽지 못한 죄인으로 생각하는 강항은 죄인이 타는 수례라는 뜻으로 『간양록』을 『건거록(巾車錄)』이라고 적었다.
『간양록』은 왜군에게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과 일본에서의 생활을 그린 적중봉소(賊中封疏)｣, 일본의 관직 명칭과 지리와 물산에 관한 적중문견록(賊中聞見錄), 포로의 심정과 포로들에게 보내는 당부를 적은 고부인격(告俘人檄), 일본의 풍속을 적은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 일기체로 기술한 체험과 한시(漢詩) 31수가 담긴 섭란사적(涉亂事迹)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전남 영광군 불갑면 내산서원(內山書院)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간양록』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 의한 국가지정문화재(보물)의 지정 기준에도 충족된다. 『간양록』은 국가보물로서 역사적 가치(시대성과 역사적 사건 관련성), 예술(문학)적 가치(보편성과 독창성), 학술적 가치(후대의 연구자료) 외에 16세기 일본 전쟁포로의 체험기록으로서 희소적 가치(희소성)까지 갖추고 있다.
나는 내년부터 강항의 휼륭한 삶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강항정신계승 나라사랑 그림그리기 대회와 글짓기 대회’를 영광군 내 초·중·고·대학생부터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자는 제안을 했다.
만시지탄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소중한 기록유산으로서 『간양록』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인정하여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마땅히 지정되어야 한다. 문화재청과 관계기관의 획기적인 인식 전환과 전향적 정책 결정을 기대한다.
김윤호 주필ihonam@naver.com
|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