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산문학축전에서 만닌 아름다운 인간
김윤호 주필입력 : 2022. 10. 16(일) 17:01
지난 목요일 저녁 12시, 광주행 마지막 심야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날, 땅끝마을 해남에서 열리는 제22회 고산문학축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금요일에 예정된 수필창작과 시칭작 강의를 하루 미루고 길을 나섰다. 해야할 일, 가야할 일이 서로 중복되고 충돌할 때는 상황을 종합 판단하여 우선 순위를 지혜롭게 정할 수밖에 없다.
새벽 세 시경, 광주에 도착하여 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식당에서 사골삼계탕으로 아침을 때우고 출력해온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에 관한 자료를 읽어보았다. 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어부 사시사(漁父四時詞)’, ‘오우가(五友歌)’ 등을 지은 시조 시인로서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시인으로 알고 있었다.
오전 10시, 롯데마트 월드컵점 주차장으로 가서 광주전남작가회의에서 준비한 관광버스를 탔다. 해남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시월 중순 농촌 풍경은 누렇게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이미 추수한 빈 논들이 군데 군데 있었다. 농촌은 지금 한창 가을 걷이에 바쁜 계절인가 보다.
두 시간 정도 달려서 고산 윤선도 유적지 주차장에 내렸다. 해남읍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는 윤선도의 사랑채를 옮겨 놓았다는 녹우당(綠雨堂)과 땅끝순례문학관은 보수 공사로 문을 닫아서 둘러볼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백련재 문학의집에서 열린 고산문학축전은 고산 인문학 콘서트와 고산문학대상 시상식으로 진행되었다.
전국에서 온 백 여 명의 문인들과 해남군수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각 지방 마다 지방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살리는 축제와 축전을 진행하는 것은 여러 모로 참으로 잘 하는 일이다. 지방의 일은 지방 주민이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주민자치와 단체자치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시행과정에서 다소 문제점은 있지만 지방자치제도의 장점과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나는 호남의 문학 사적지를 많이 다닌 편이다. ‘성산별곡’을 지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담양 식영정(息影亭), ‘목민심서’를 지은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오-메 단풍 들것네’의 김영랑의 강진 영랑시문학관과 시문학파 기념관, 미당(未堂) 서정주의 고창 미당시문학관 등을 답사했다.
이번에 서울에서 큰 맘 먹고 온 이유는 시를 노래로 할 수 있는 가사문학(歌辭文學)의 대가 고산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순서가 있는 줄 알았는데, 보고 싶었는데 그런 일정이 없어서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아쉬움 속에서 뜻밖에 기적 같은 일을 경험했다. 이것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고 믿기 어려운 일이다. 고산문학축전 행사장 마당에서 나의 바로 앞 자리에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온 젊은 여류 시인이 앉아 있었다. 나는 두 어린이가 너무 예쁘고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중년, 장년 시인들이 대부분인 행사장에서 어린이는 천사처럼 보였다.
자기를 예쁘게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통했는지, 앞 자리에 앉아 있는 어린이가 가끔 뒤를 돌아다 보았다. 작은 유리병에 들어 있는 작은 과자도 두 번이나 나에게 뒤돌아서 가만히 건네 주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건네주는 고사리 꽃 같은 작은 과자를 받아서 나는 맛있게 먹었다. 옆에 앉아 있는 자기 엄마한테 가서 무언가 귓속말을 하고는 다시 돌아와 앉아서 가끔 뒤를 돌아다 보았다.
휴식 시간에 물어 보니, 여류 시인은 화순에서 온 오현정 시인이었다. 어린이는 자기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동생은 네 살이라고 했다.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나는 서울로 올라오면서,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만나고 있는 까치를 생각했다. 내가 아침 집 앞 공원에 나가서 체조를 하면, 내 앞 10미터 거리에 내려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공원길을 걸으면 앞에 내려와 앉는다. 내가 공원에 못 나가면, 내 집 현관 문 앞이나 현관문 바로 위에 날아와서 큰 소리로 나를 불러낸다. 마당에 나가서 체조를 하면 내가 잘 보이는 지붕 가장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본다. 영광 고향집에 가도 마당 전선 위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부모님 산소에 가도 산소까지 따라온다. 나는 하도나 믿기지 안해서 아들에게 ‘서울 까치가 영광까지 따라온 것은 아니겠지?’ 하고 전화로 물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많다. 세상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일이 많다. 가장 추한 것이 인간이기도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 까치와 그 어린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귀한 축복이다. 영혼의 울림이다. 아름다운 꿈 속의 일 같기도 하다.
김윤호 주필
새벽 세 시경, 광주에 도착하여 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식당에서 사골삼계탕으로 아침을 때우고 출력해온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에 관한 자료를 읽어보았다. 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어부 사시사(漁父四時詞)’, ‘오우가(五友歌)’ 등을 지은 시조 시인로서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시인으로 알고 있었다.
오전 10시, 롯데마트 월드컵점 주차장으로 가서 광주전남작가회의에서 준비한 관광버스를 탔다. 해남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시월 중순 농촌 풍경은 누렇게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이미 추수한 빈 논들이 군데 군데 있었다. 농촌은 지금 한창 가을 걷이에 바쁜 계절인가 보다.
두 시간 정도 달려서 고산 윤선도 유적지 주차장에 내렸다. 해남읍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는 윤선도의 사랑채를 옮겨 놓았다는 녹우당(綠雨堂)과 땅끝순례문학관은 보수 공사로 문을 닫아서 둘러볼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백련재 문학의집에서 열린 고산문학축전은 고산 인문학 콘서트와 고산문학대상 시상식으로 진행되었다.
전국에서 온 백 여 명의 문인들과 해남군수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각 지방 마다 지방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살리는 축제와 축전을 진행하는 것은 여러 모로 참으로 잘 하는 일이다. 지방의 일은 지방 주민이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주민자치와 단체자치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시행과정에서 다소 문제점은 있지만 지방자치제도의 장점과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나는 호남의 문학 사적지를 많이 다닌 편이다. ‘성산별곡’을 지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담양 식영정(息影亭), ‘목민심서’를 지은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오-메 단풍 들것네’의 김영랑의 강진 영랑시문학관과 시문학파 기념관, 미당(未堂) 서정주의 고창 미당시문학관 등을 답사했다.
이번에 서울에서 큰 맘 먹고 온 이유는 시를 노래로 할 수 있는 가사문학(歌辭文學)의 대가 고산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순서가 있는 줄 알았는데, 보고 싶었는데 그런 일정이 없어서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아쉬움 속에서 뜻밖에 기적 같은 일을 경험했다. 이것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고 믿기 어려운 일이다. 고산문학축전 행사장 마당에서 나의 바로 앞 자리에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온 젊은 여류 시인이 앉아 있었다. 나는 두 어린이가 너무 예쁘고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중년, 장년 시인들이 대부분인 행사장에서 어린이는 천사처럼 보였다.
자기를 예쁘게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통했는지, 앞 자리에 앉아 있는 어린이가 가끔 뒤를 돌아다 보았다. 작은 유리병에 들어 있는 작은 과자도 두 번이나 나에게 뒤돌아서 가만히 건네 주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건네주는 고사리 꽃 같은 작은 과자를 받아서 나는 맛있게 먹었다. 옆에 앉아 있는 자기 엄마한테 가서 무언가 귓속말을 하고는 다시 돌아와 앉아서 가끔 뒤를 돌아다 보았다.
휴식 시간에 물어 보니, 여류 시인은 화순에서 온 오현정 시인이었다. 어린이는 자기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동생은 네 살이라고 했다.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나는 서울로 올라오면서,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만나고 있는 까치를 생각했다. 내가 아침 집 앞 공원에 나가서 체조를 하면, 내 앞 10미터 거리에 내려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공원길을 걸으면 앞에 내려와 앉는다. 내가 공원에 못 나가면, 내 집 현관 문 앞이나 현관문 바로 위에 날아와서 큰 소리로 나를 불러낸다. 마당에 나가서 체조를 하면 내가 잘 보이는 지붕 가장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본다. 영광 고향집에 가도 마당 전선 위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부모님 산소에 가도 산소까지 따라온다. 나는 하도나 믿기지 안해서 아들에게 ‘서울 까치가 영광까지 따라온 것은 아니겠지?’ 하고 전화로 물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많다. 세상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일이 많다. 가장 추한 것이 인간이기도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 까치와 그 어린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귀한 축복이다. 영혼의 울림이다. 아름다운 꿈 속의 일 같기도 하다.
김윤호 주필ihonam@naver.com
|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