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나리 같은 74세 윤여정의 인간승리
김윤호 주필입력 : 2021. 05. 09(일) 17:42
4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OSCARS)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윤여정(尹汝貞, 74세)이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물기 있는 척척한 땅에서 자라나는 미나리 같은 굴곡진 55년 연기 인생에서 기적의 꽃을 피워냈다.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건 한국 영화 102년 역사상 처음이다. 아시아 배우로는 두 번째로, 1958년 제3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사요나라>(1957)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일본 우메키 미요시 이후 63년 만이다.
이날 시상식의 또 다른 주인공은 영화 ‘노매드랜드’였다.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클로이 자오), 여우주연상(프랜시스 맥도먼드)까지 3관왕에 올랐다. 중국계 미국인 클로이 자오는 여성으로선 2010년 ‘허트 로커’의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아시아 여성 감독으로는 최초다.
작년 2월 10일, 로스엔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parasite)이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윤여정의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수상소감은 수상소감상, 아카데미의 챔피언(영국 가디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쟁자였던 수상 후보자들을 칭찬하고 최초 출연영화 ‘화녀(火女)’의 고(故) 김기영 감독에게 감사하면서,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르는 서양인들을 오늘 만은 용서해 주겠다는 유머까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특히 나가서 일하라고 잔소리한 두 아들 덕분에 이 결과를 얻었다고 두 아들에게 감사했다.
이러한 말과 여유는 윤여정의 힘든 삶에서 이겨내고 체득한 내공(內功)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초,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에 알바를 하다가 탤런트가 되기 위해 중퇴했다. 1966년 동양방송(TBC) 공채 3기 탤런트로 시작하여 1971년 ‘화녀’로 데뷔하여 90여 편의 드라마, 3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4년 가수 조용남과 결혼하여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플로리다에서 주부로서 13년을 살았다.
조영남은 돈은 한 푼도 안 벌고 바람끼만 다분해서 윤여정은 플로리다의 식료품점(Publix)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최저 임금 2.75달러를 받아 두 아들을 부양했다. 언어 장벽과 한국에서의 낙인(烙印)의 무게 때문에 계산원으로 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1987년 윤여정은 이혼하고 귀국하여 두 아들과 자신을 지키려고 닥치는 대로 생계형 연기를 했다. 삶은 척박하고 절실했다. 쌀독에 쌀이 있던 때보다 떨어졌던 때가 더 많았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연기했다.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한 거였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어.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 돼. 훌륭한 남편 두고 천천히 놀면서, 그래 이 역할은 내가 해 주지, 그러면 안 된다고. 한 신(scene) 한 신 떨림이 없는 연기는 죽어 있는 거라고.’ 윤여정은 시상식 직후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사람을 인종으로 분류하거나 나누는 것은 좋지 않다. 무지개처럼 모든 색을 합쳐서 더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흑인·황인종으로 나누고 싶지 않다.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지닌 평등한 사람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수상을 개인 또는 국가적 영예에만 가두지 않고 범인류적인 메시지로 확장했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윤여정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세상에 펑(bang)! 하고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노력한 결과다.’ ‘모두 1등, 최고(最高)만 고집하지 말고 다같이 ’최중(最中)‘이 되면 안되나’ ‘세상은 서러움 자체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야.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 같아. 나는 내가 극복했어.’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지만, 다 아프고 다 아쉬워. 난 웃고 살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헛소리를 좋아해요.’
나의 어린 시절, 농촌 마을 가운데 방죽 옆에 미나리꽝(미나리밭)이 있었다. 초여름, 파랗게 다 자란 후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베고 씻어서 나누어 먹었다. 그 미나리가 예술의 옷을 입고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다. 참으로 기쁘고 놀라운 일이다.
김윤호 주필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건 한국 영화 102년 역사상 처음이다. 아시아 배우로는 두 번째로, 1958년 제3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사요나라>(1957)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일본 우메키 미요시 이후 63년 만이다.
이날 시상식의 또 다른 주인공은 영화 ‘노매드랜드’였다.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클로이 자오), 여우주연상(프랜시스 맥도먼드)까지 3관왕에 올랐다. 중국계 미국인 클로이 자오는 여성으로선 2010년 ‘허트 로커’의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아시아 여성 감독으로는 최초다.
작년 2월 10일, 로스엔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parasite)이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윤여정의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수상소감은 수상소감상, 아카데미의 챔피언(영국 가디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쟁자였던 수상 후보자들을 칭찬하고 최초 출연영화 ‘화녀(火女)’의 고(故) 김기영 감독에게 감사하면서,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르는 서양인들을 오늘 만은 용서해 주겠다는 유머까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특히 나가서 일하라고 잔소리한 두 아들 덕분에 이 결과를 얻었다고 두 아들에게 감사했다.
이러한 말과 여유는 윤여정의 힘든 삶에서 이겨내고 체득한 내공(內功)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초,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에 알바를 하다가 탤런트가 되기 위해 중퇴했다. 1966년 동양방송(TBC) 공채 3기 탤런트로 시작하여 1971년 ‘화녀’로 데뷔하여 90여 편의 드라마, 3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4년 가수 조용남과 결혼하여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플로리다에서 주부로서 13년을 살았다.
조영남은 돈은 한 푼도 안 벌고 바람끼만 다분해서 윤여정은 플로리다의 식료품점(Publix)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최저 임금 2.75달러를 받아 두 아들을 부양했다. 언어 장벽과 한국에서의 낙인(烙印)의 무게 때문에 계산원으로 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1987년 윤여정은 이혼하고 귀국하여 두 아들과 자신을 지키려고 닥치는 대로 생계형 연기를 했다. 삶은 척박하고 절실했다. 쌀독에 쌀이 있던 때보다 떨어졌던 때가 더 많았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연기했다.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한 거였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어.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 돼. 훌륭한 남편 두고 천천히 놀면서, 그래 이 역할은 내가 해 주지, 그러면 안 된다고. 한 신(scene) 한 신 떨림이 없는 연기는 죽어 있는 거라고.’ 윤여정은 시상식 직후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사람을 인종으로 분류하거나 나누는 것은 좋지 않다. 무지개처럼 모든 색을 합쳐서 더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흑인·황인종으로 나누고 싶지 않다.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지닌 평등한 사람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수상을 개인 또는 국가적 영예에만 가두지 않고 범인류적인 메시지로 확장했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윤여정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세상에 펑(bang)! 하고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노력한 결과다.’ ‘모두 1등, 최고(最高)만 고집하지 말고 다같이 ’최중(最中)‘이 되면 안되나’ ‘세상은 서러움 자체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야.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 같아. 나는 내가 극복했어.’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지만, 다 아프고 다 아쉬워. 난 웃고 살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헛소리를 좋아해요.’
나의 어린 시절, 농촌 마을 가운데 방죽 옆에 미나리꽝(미나리밭)이 있었다. 초여름, 파랗게 다 자란 후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베고 씻어서 나누어 먹었다. 그 미나리가 예술의 옷을 입고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다. 참으로 기쁘고 놀라운 일이다.
김윤호 주필ihonam@naver.com
|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