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불쌈꾼(혁명가) 백기완,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김윤호 논설위원입력 : 2021. 03. 07(일) 17:25
불쌈꾼(혁명가) 백기완(白基玩)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지난 2월 15일,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하고 2월 1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영결식이 있었다. 백 선생은 1933년 1월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나서 1946년 13세 때, 어머니와 큰형을 고향에 남겨두고 축구선수를 시켜주겠다는 아버지를 따라서 서울로 와서 살게 된 이산가족이다.
서울에서 축구선수도 못 되고 학교도 못 가고 혼자서 공부했다. 통일을 주장하며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니 한 쪽에서는 소련 앞잡이, 다른 쪽에서는 미국 앞잡이라고 비난하더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영향을 받고, 1967년 통일문제연구소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1972년 백범사상연구소, 1984년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하였다. 1987년과 1992년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오기도 했다.
백 선생은 89세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약자의 편에서 농민운동, 빈민운동, 노동운동, 반독재투쟁, 통일운동, 해방운동을 선봉에 서서 온몸을 던져서 실천했다. 백 선생은 민중의 벗, 민주투사, 통일운동가다. 한 마디로 말하면 불쌈꾼(혁명가)이다. 한글과 민중을 너무나 사랑했다.
백기완 선생을 만난 뚜렷한 인연은 네 번이고, 간접 인연은 두 번이다. 망각의 늪에 더 빠지기 전에 후일을 위하여 간단히 적는다. 백 선생과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너무나 뜻밖의 장소,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 장소에서 만났다. 아마 1989년이나 1990년 겨울밤이었다. 나는 평화민주당(평민당) 인권위원회 민원부국장으로 있으면서 억울하다고 찾아오는 민초들을 상담하고 해결하려고 전국 현장을 찾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급여는 1원도 못 받고, 시내버스 토큰이 없어서 빌려가지고 다니면서도 민주주의를 위한 열정과 정의감으로 가득찬 시절이었다.
노동자 가족들이 평민당 인권위원회에 찾아와서 호소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GM코리아에 다니는 한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니까, 회사에서 노조 결성을 방해하고 해고했다. 국내에 노동조합이 거의 없을 때이다. 회사와 정부에서 노조 결성을 결사적으로 방해하던 시절이다. 노동자들이 핸드폰 공정의 심장인 전산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회사에서 농성중인 전산실 전기와 물(수도) 공급도 끊어 버렸다는 것이다. 농성장 안은 얼마나 춥고 배 고프겠는가. 농성장 밖으로 나오면 바로 체포되고 노조 결성은 끝난다. 노동자 가족들이 농성중인 직원들에게 밥과 물을 갖다 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상담한 당일 밤, 바로 찾아간 곳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다국적 기업 GM코리아였다. 지금은 쉐보레, 캐딜락 등 고급 외제차를 만드는 유명한 세계적인 자동차회사이지만, 그 때는 회사 이름도 처음 들었다. 그 당시 GM코리아는 무전기처럼 허리에 차고 다녀야 할 정도로 커다란 핸드폰을 만들고 있었다.
한겨울 추운 밤이었다. 현장에 혼자 나가보니, 살벌한 전쟁터였다. 놀란 것이 재야 인사 문익환 목사와 문 목사의 동생 평민당 문동환 부총재, 그리고 백기완 선생이 먼저 와 있었다. 참으로 고맙고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든든하고 존경스러웠다.
열려 있는 정문 너머 어두운 곳에 회사 편인 구사대(求社隊)와 무술 경찰이 있다고 들었다. 그 당시 구사대(求社隊)와 무술 경찰은 보통 붕대 감은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긴장과 불안의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두운 회사 안에서 대단히 큰 볼륨의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용공분자 문익환 물러가라! 용공분자 백기완 물러가라!’를 반복했다. 그 분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안했다. 문동환 부총재는 국회의원들이 수십명 있는 제도권 제1야당 부총재여서인지 가끔 물러가라고 했다.
노동자 가족들이 밥과 물을 가져와서 농성장으로 전달하러 가자고 해서 함께 나섰다. 밥과 물을 담은 박스를 하나씩 들고 회사 정문 쪽으로 다가갔다. 정문을 넘어서려고 할 때, 정문 양쪽 위에서 소방 호스에서 내뿜는 세찬 직사(直射) 물대포가 직사포처럼 우리들을 조준해서 내려쳤다. 물대포 힘이 견딜 수 없이 엄청 세차고 물에 흠뻑 젖어서 추워서 모두들 뒤로 물러났다. 추운 겨울 밤에 양쪽 위에서 쏘는 근접 물대포를 직통으로 맞았으니, 쓰러지고 죽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2015년 백남기 농민도 물대포 맞고 죽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 눈을 의심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우리가 모두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백기완이 죽여라! 백기완이 죽여라!’ 그것은 청천 하늘을 가르는 천둥번개 소리였다. 그렇게 외치면서 어둠 속 각목 든 구사대와 무술 경찰 속으로 백 선생은 혼자서 돌진했다. 백두산 호랑이가 백두산 밀림을 헤치고 포효(咆哮)하면서 나오는 천하무적의 기세였다. 천군만마를 제압하는 초인적 용기였다.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눈부신 진취(進取)다. 백 선생의 상상을 초월하는 뜻밖의 돌진에 공포의 구사대도, 무술경찰도 10여 미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온몸이 흠뻑 젖어서 춥고 덜덜 떨려서 잘 가시라는 인사도 못하고 돌아온 것 같다.
김윤호 논설위원
서울에서 축구선수도 못 되고 학교도 못 가고 혼자서 공부했다. 통일을 주장하며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니 한 쪽에서는 소련 앞잡이, 다른 쪽에서는 미국 앞잡이라고 비난하더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영향을 받고, 1967년 통일문제연구소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1972년 백범사상연구소, 1984년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하였다. 1987년과 1992년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오기도 했다.
백 선생은 89세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약자의 편에서 농민운동, 빈민운동, 노동운동, 반독재투쟁, 통일운동, 해방운동을 선봉에 서서 온몸을 던져서 실천했다. 백 선생은 민중의 벗, 민주투사, 통일운동가다. 한 마디로 말하면 불쌈꾼(혁명가)이다. 한글과 민중을 너무나 사랑했다.
백기완 선생을 만난 뚜렷한 인연은 네 번이고, 간접 인연은 두 번이다. 망각의 늪에 더 빠지기 전에 후일을 위하여 간단히 적는다. 백 선생과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너무나 뜻밖의 장소,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 장소에서 만났다. 아마 1989년이나 1990년 겨울밤이었다. 나는 평화민주당(평민당) 인권위원회 민원부국장으로 있으면서 억울하다고 찾아오는 민초들을 상담하고 해결하려고 전국 현장을 찾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급여는 1원도 못 받고, 시내버스 토큰이 없어서 빌려가지고 다니면서도 민주주의를 위한 열정과 정의감으로 가득찬 시절이었다.
노동자 가족들이 평민당 인권위원회에 찾아와서 호소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GM코리아에 다니는 한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니까, 회사에서 노조 결성을 방해하고 해고했다. 국내에 노동조합이 거의 없을 때이다. 회사와 정부에서 노조 결성을 결사적으로 방해하던 시절이다. 노동자들이 핸드폰 공정의 심장인 전산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회사에서 농성중인 전산실 전기와 물(수도) 공급도 끊어 버렸다는 것이다. 농성장 안은 얼마나 춥고 배 고프겠는가. 농성장 밖으로 나오면 바로 체포되고 노조 결성은 끝난다. 노동자 가족들이 농성중인 직원들에게 밥과 물을 갖다 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상담한 당일 밤, 바로 찾아간 곳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다국적 기업 GM코리아였다. 지금은 쉐보레, 캐딜락 등 고급 외제차를 만드는 유명한 세계적인 자동차회사이지만, 그 때는 회사 이름도 처음 들었다. 그 당시 GM코리아는 무전기처럼 허리에 차고 다녀야 할 정도로 커다란 핸드폰을 만들고 있었다.
한겨울 추운 밤이었다. 현장에 혼자 나가보니, 살벌한 전쟁터였다. 놀란 것이 재야 인사 문익환 목사와 문 목사의 동생 평민당 문동환 부총재, 그리고 백기완 선생이 먼저 와 있었다. 참으로 고맙고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든든하고 존경스러웠다.
열려 있는 정문 너머 어두운 곳에 회사 편인 구사대(求社隊)와 무술 경찰이 있다고 들었다. 그 당시 구사대(求社隊)와 무술 경찰은 보통 붕대 감은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긴장과 불안의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두운 회사 안에서 대단히 큰 볼륨의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용공분자 문익환 물러가라! 용공분자 백기완 물러가라!’를 반복했다. 그 분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안했다. 문동환 부총재는 국회의원들이 수십명 있는 제도권 제1야당 부총재여서인지 가끔 물러가라고 했다.
노동자 가족들이 밥과 물을 가져와서 농성장으로 전달하러 가자고 해서 함께 나섰다. 밥과 물을 담은 박스를 하나씩 들고 회사 정문 쪽으로 다가갔다. 정문을 넘어서려고 할 때, 정문 양쪽 위에서 소방 호스에서 내뿜는 세찬 직사(直射) 물대포가 직사포처럼 우리들을 조준해서 내려쳤다. 물대포 힘이 견딜 수 없이 엄청 세차고 물에 흠뻑 젖어서 추워서 모두들 뒤로 물러났다. 추운 겨울 밤에 양쪽 위에서 쏘는 근접 물대포를 직통으로 맞았으니, 쓰러지고 죽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2015년 백남기 농민도 물대포 맞고 죽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 눈을 의심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우리가 모두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백기완이 죽여라! 백기완이 죽여라!’ 그것은 청천 하늘을 가르는 천둥번개 소리였다. 그렇게 외치면서 어둠 속 각목 든 구사대와 무술 경찰 속으로 백 선생은 혼자서 돌진했다. 백두산 호랑이가 백두산 밀림을 헤치고 포효(咆哮)하면서 나오는 천하무적의 기세였다. 천군만마를 제압하는 초인적 용기였다.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눈부신 진취(進取)다. 백 선생의 상상을 초월하는 뜻밖의 돌진에 공포의 구사대도, 무술경찰도 10여 미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온몸이 흠뻑 젖어서 춥고 덜덜 떨려서 잘 가시라는 인사도 못하고 돌아온 것 같다.
김윤호 논설위원ihonam@naver.com
|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