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까치와의 러브 스토리
김윤호 논설위원입력 : 2020. 09. 06(일) 17:07
요즈음 꼭 필요한 모임이나 약속이 아니면 모두 연기하거나 취소되고 있다. 모두가 집쿅, 방콕 생활을 잘 견디어내고 있다. 이 어렵고 힘든 때에 마음의 위안과 아픔을 받은 뜻밖의 사연을 공개하고자 한다. 사람과의 관계나 일이 아니고 날아다니는 까치와의 사연이다.
아파트에서 이곳 주택으로 이사 온지 몇 년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 앞 조그마한 공원에 나가서 맨손 체조를 하는 것이 나의 건강 유지 비결의 하나이다. 살균력 있는 방향성(芳香性) 물질인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는 아름드리 편백나무들과 측백나무가 있는 아담한 공원이다.
어느 때는 집 안의 좁은 마당에서 체조를 하기도 한다. 체조도 일반적인 체조가 아니고 내가 창조한 나 만의 독특한 온몸 운동법이다. 삼사십 분 정도 하는데, 부드러우면서도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종합 심신 수련법이다.
이른 아침, 집 앞 공원에 나가면 까치들은 어느 틈에 내 머리 위의 나믓가지에 날이와서 반가운 소리를 계속한다. 사람의 말은 아니지만 동물의 말도 진정이면 통하는 것 같았다. 너무 이른 새벽이나 너무 늦은 때에 나가면 날아오지 않을 때도 있다. 많은 날들을 하도나 반갑다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아서 나도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까치들에게 ‘끼치야 고맙다. 까치야 고마워!’라고 서너 번 대답하는 지경이 되었다.
까치에게 말을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답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무정한 사람, 너무 나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서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날에는 까치가 공원 길읗 걷는 내 앞에 사푼히 내려 앉을 때도 있다. 체조를 할 때는 내가 잘 보일 수 있는 땅 위나, 나뭇가지로 와서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모처럼 아들이 찾아와서 아들과 함께 시내에 나갈 때에는 어느 틈에 나가는 길 옆에 날아와 있다가 가까이 가면 날아 오른다. 어느 때는 손님이 와서 마당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는 우리가 잘 보이는 지붕 가장자리 모서리에 날아와서 소리를 한다. 우리들이 수고가 많다고 까치가 위로하러 왔다고 내가 말하자, 그 분은 웃으며 해석이 더 좋다고 대답했다.
피곤하거나 게을러서 아침 체조하러 공원에 못 나갈 때에는 오전에 내 방문 창가에 와서 큰 소리를 내고 앉아 있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소리치고 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많은 날을 그렇게 하니, 꼭 나를 부르는 것으로 알 수밖에 없다. 우리 집에 까치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까치가 쉴만한 좋은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내가 먹을 것을 준 적은 한 번도 없다.
집 마당에서 체조를 하는 어느 날에는 공원 큰 나무 위에서 까치가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내 머리 위로 직진으로 날아오다가 내 머리 위를 스치다시피 날아가기도 했다. 집 뒷쪽에 나무가 있지도 않다. 나에게 행운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평생 처음 겪는 일이다.
어느 날 가슴이 먹먹해진 일도 있다. 시내를 나가려고 집을 나서서 편백나무숲을 지나려는데, 내 앞에서 갑작스럽게 들리는 이상한 큰소리에 깜짝 놀랐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보니, 십여 미터 앞 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서 나를 보고 우짖고 있었다. 그 소리는 평상시의 까치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목 놓아 우는 큰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나에게 말을 전하려는 절규(絶叫) 같기도 했다. 아무튼 영혼까지 끌어모은듯 온몸을 떨면서 내는 큰 소리였다. 나는 필력(筆力)이 부족해서 그 까치의 큰 외침을 말이나 글로 다 나타낼 수가 없다. 평생 처음 들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듣지 못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집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 있었던 동물과의 사연이 생각났다. 뿔이 없고 젖을 짜는 양(염소가 아님)을 키웠다. 목줄을 하지 않고 마을 뒷동산을 함께 산책을 하곤 했다. 논과 밭에 나락, 콩, 수수 등 오곡(五穀)이 무르익어서 산책 가는 길가에는 양이 먹을 수 있는 탐스러운 파란 풀잎과 콩잎 등이 풍성했다. 풀잎을 한참 맛있게 뜯어 먹다가도 내가 ‘이리 와’ 하고 두어 번 부르면, 양은 알아듣고 얼른 기쁜 얼굴로 뛰어온다.
해질 녘 산 속에서 날이 저물면, 풀밭에 가부좌(跏趺坐)로 앉아서 호흡 조절을 하고 있는 나의 등 뒤에 다가와서 빨리 집으로 가자는 뜻으로 머리로 나의 등을 가만히 밀어댄다. 양의 따뜻한 체온이 등줄기를 타고 나의 온몸에 퍼지곤 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다시 고향에 가서 생활하게 된다면, 양을 키우면서 양을 데리고 동네 뒷동산(짓대이산)을 산책하고 싶다.
지난 광복절 낮에도 까치는 아침 체조하러 못간 나의 창가에 와서 나를 부르는 듯 크게 우짖어서 생생한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나의 집 앞 길 위에 자동차에 치어 죽어 있는 까치를 보았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건너다가 빠른 자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죽은 땅 위의 동물은 보았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저동차에 죽은 것은 처음 보았다.
혹시 나를 찾아왔다가 방심하고 있다가 변을 당한 것 같기만 했다. 흩어진 깃털을 모으면서 까치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아, 세상사는 기쁨에는 슬픔이, 빛에는 어둠이 있다.
김윤호 논설위원
아파트에서 이곳 주택으로 이사 온지 몇 년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 앞 조그마한 공원에 나가서 맨손 체조를 하는 것이 나의 건강 유지 비결의 하나이다. 살균력 있는 방향성(芳香性) 물질인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는 아름드리 편백나무들과 측백나무가 있는 아담한 공원이다.
어느 때는 집 안의 좁은 마당에서 체조를 하기도 한다. 체조도 일반적인 체조가 아니고 내가 창조한 나 만의 독특한 온몸 운동법이다. 삼사십 분 정도 하는데, 부드러우면서도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종합 심신 수련법이다.
이른 아침, 집 앞 공원에 나가면 까치들은 어느 틈에 내 머리 위의 나믓가지에 날이와서 반가운 소리를 계속한다. 사람의 말은 아니지만 동물의 말도 진정이면 통하는 것 같았다. 너무 이른 새벽이나 너무 늦은 때에 나가면 날아오지 않을 때도 있다. 많은 날들을 하도나 반갑다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아서 나도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까치들에게 ‘끼치야 고맙다. 까치야 고마워!’라고 서너 번 대답하는 지경이 되었다.
까치에게 말을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답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무정한 사람, 너무 나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서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날에는 까치가 공원 길읗 걷는 내 앞에 사푼히 내려 앉을 때도 있다. 체조를 할 때는 내가 잘 보일 수 있는 땅 위나, 나뭇가지로 와서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모처럼 아들이 찾아와서 아들과 함께 시내에 나갈 때에는 어느 틈에 나가는 길 옆에 날아와 있다가 가까이 가면 날아 오른다. 어느 때는 손님이 와서 마당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는 우리가 잘 보이는 지붕 가장자리 모서리에 날아와서 소리를 한다. 우리들이 수고가 많다고 까치가 위로하러 왔다고 내가 말하자, 그 분은 웃으며 해석이 더 좋다고 대답했다.
피곤하거나 게을러서 아침 체조하러 공원에 못 나갈 때에는 오전에 내 방문 창가에 와서 큰 소리를 내고 앉아 있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소리치고 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많은 날을 그렇게 하니, 꼭 나를 부르는 것으로 알 수밖에 없다. 우리 집에 까치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까치가 쉴만한 좋은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내가 먹을 것을 준 적은 한 번도 없다.
집 마당에서 체조를 하는 어느 날에는 공원 큰 나무 위에서 까치가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내 머리 위로 직진으로 날아오다가 내 머리 위를 스치다시피 날아가기도 했다. 집 뒷쪽에 나무가 있지도 않다. 나에게 행운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평생 처음 겪는 일이다.
어느 날 가슴이 먹먹해진 일도 있다. 시내를 나가려고 집을 나서서 편백나무숲을 지나려는데, 내 앞에서 갑작스럽게 들리는 이상한 큰소리에 깜짝 놀랐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보니, 십여 미터 앞 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서 나를 보고 우짖고 있었다. 그 소리는 평상시의 까치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목 놓아 우는 큰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나에게 말을 전하려는 절규(絶叫) 같기도 했다. 아무튼 영혼까지 끌어모은듯 온몸을 떨면서 내는 큰 소리였다. 나는 필력(筆力)이 부족해서 그 까치의 큰 외침을 말이나 글로 다 나타낼 수가 없다. 평생 처음 들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듣지 못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집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 있었던 동물과의 사연이 생각났다. 뿔이 없고 젖을 짜는 양(염소가 아님)을 키웠다. 목줄을 하지 않고 마을 뒷동산을 함께 산책을 하곤 했다. 논과 밭에 나락, 콩, 수수 등 오곡(五穀)이 무르익어서 산책 가는 길가에는 양이 먹을 수 있는 탐스러운 파란 풀잎과 콩잎 등이 풍성했다. 풀잎을 한참 맛있게 뜯어 먹다가도 내가 ‘이리 와’ 하고 두어 번 부르면, 양은 알아듣고 얼른 기쁜 얼굴로 뛰어온다.
해질 녘 산 속에서 날이 저물면, 풀밭에 가부좌(跏趺坐)로 앉아서 호흡 조절을 하고 있는 나의 등 뒤에 다가와서 빨리 집으로 가자는 뜻으로 머리로 나의 등을 가만히 밀어댄다. 양의 따뜻한 체온이 등줄기를 타고 나의 온몸에 퍼지곤 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다시 고향에 가서 생활하게 된다면, 양을 키우면서 양을 데리고 동네 뒷동산(짓대이산)을 산책하고 싶다.
지난 광복절 낮에도 까치는 아침 체조하러 못간 나의 창가에 와서 나를 부르는 듯 크게 우짖어서 생생한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나의 집 앞 길 위에 자동차에 치어 죽어 있는 까치를 보았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건너다가 빠른 자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죽은 땅 위의 동물은 보았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저동차에 죽은 것은 처음 보았다.
혹시 나를 찾아왔다가 방심하고 있다가 변을 당한 것 같기만 했다. 흩어진 깃털을 모으면서 까치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아, 세상사는 기쁨에는 슬픔이, 빛에는 어둠이 있다.
김윤호 논설위원ihonam@naver.com
|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