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판정 불신 시대다. 선수가 공개적으로 정확한 판정을 당부하고 감독은 퇴장을 무릅쓰고 비디오판독 결과에 항의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심판위원의 2군행이라는 고육지책까지 꺼내들었다.

한화 이글스 이용규의 인터뷰가 심판 판정 논란의 도화선이 됐다. 이용규는 지난 7일 SK 와이번스전을 마친 뒤 "선수들 대부분이 볼 판정의 일관성에 불만이 많다"며 "심판분들이 노력하는 것도 알지만 선수들 마음도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KBO는 다음날 해당 심판조 전원을 퓨처스리그로 내려보냈다. KBO가 판정 문제를 이유로 심판을 2군으로 강등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KBO도 사안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당시 허운 심판위원장은 "개막 3경기만에 선수가 공개적으로 판정 얘기를 했다는 것은 심판으로서 슬픈 얘기이자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며 "더 열심히 노력해 신뢰를 쌓자는 차원의 결정이다.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심정"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차례 판정 문제가 불거졌다. 이번에는 감독이 문제를 제기했다. 14일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2회초 최주환의 파울팁 삼진 여부를 놓고 비디오판독이 진행됐다. 제한된 3분이 지나고 내려진 결정은 아웃.

판정이 번복되지 않자 김태형 감독은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심판진에 항의했다. 김태형 감독도 비디오판독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면 퇴장당한다는 규정을 모를 리 없었다. 주심이 포수 정보근에게 바운드 여부를 묻는 육성이 마이크를 통해 중계 화면에 흘러나오면서 논란이 커졌다. 선수에게 판정의 근거를 묻는 미숙한 경기 운영이였다.

비디오판독으로 체크해야 할 부분은 바운드 여부였다. 그러나 상황실에서는 파울팁 여부만을 체크하다가 원심을 유지했다. 주심도 "(방망이에 공이) 맞은 것은 봤는데"라고 말했다. 당연히 판독으로는 바운드냐 노 바운드냐를 봐야 했다. 그러나 엉뚱한 부분을 확인해 감독의 퇴장, 이어 심판의 2군행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일단 KBO는 발빠른 조치를 취했다. 이번에도 해당 주심을 다음날 2군으로 내려보냈다. 일주일만에 '심판위원 2군 강등'이 두 차례나 이루어졌다. 예전같으면 '엄중 경고' 정도로 끝났을 사안. KBO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 뒤로도 오심은 계속되고 있으며 판정에 대한 불신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LG트윈스전에서는 두 차례나 심판 판정이 비디오판독을 통해 뒤집혔다. 같은날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대전 경기에서도 롯데 김대우의 끝내기 보크를 처음엔 주심이 인정하지 않았다(3루심이 인정). 다행히 오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심판들의 못미더운 판정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볼/스트라이크 판정이다. 그래서 로봇 심판을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애초 KBO는 올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로봇 심판을 시범 운영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허운 심판위원장은 "로봇 심판이 도입돼도 심판 나름대로 해야될 부분이 많다.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히려 현장의 감독들은 생각이 다르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물론 심판이 더 열심히 해서 더 정확히 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너무 기계적으로 가면 재미가 없다. 판정을 사람이 하는 것도 야구의 맛이다. 심판도 사람이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실수가 나오면 어필도 나올 수 있고, 그런 것들이 볼거리"라고 말했다.

손혁 키움 감독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정확성과 일관성이 흔들릴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야구의 일부다. 사람이 봐야 인간미도 있고 흐름이 있다. 로봇이 본다면 야구가 야구같지 않을 것 같다"고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심판들도 시즌 준비에 차질을 있었다는 동정론도 나온다. 스프링캠프를 정상적으로 치르지 못하고 시범경기도 취소되면서 심판들에게 실전 감각을 익힐 기회가 부족했다는 것. 오심 때마다 심판을 2군으로 내려보내면 어느 심판이 살아남겠냐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프로야구 역사를 돌아보면 판정 논란은 언제나 있었다. 경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일부러 심판에게 항의하는 감독들도 많았다. 그러다 2014년 후반기부터 심판 합의판정이라는 이름으로 비디오판독이 도입되면서 어처구니 없는 오심은 확연히 줄었다. 불필요한 항의도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볼/스트라이크 판정처럼 비디오판독으로 잡아낼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논란이 계속된다면 로봇 심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KBO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로봇 심판 시대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보인다. 허운 위원장의 말대로 로봇 심판이 도입된다고 해도 기존 심판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