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해결책인가 유명무실한 제도인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연봉조정신청 제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와 구자욱의 갈등 때문이다.

삼성과 구자욱은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아직 연봉 계약을 맺지 못했다. 구자욱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한 채 2군 훈련장인 경산볼파크에서 몸을 만들고 있다.

NC 다이노스의 김진성도 연봉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감정의 골이 생겼다. 김진성은 지난해 연봉 2억원에서 4000만원이 삭감된 1억6000만원에 계약을 맺은 뒤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도 합류했다가 중도 귀국했다.

두 선수의 사례를 통해 연봉조정신청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BO 야구규약에는 제75조에는 [조정신청]에 관한 내용이 '구단과 보류선수 사이에 연봉 등 금전에 관한 사항이 합의되지 않는 경우 구단 또는 선수는 총재에게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말 그대로 연봉 조정을 신청하는 제도다. 1월10일까지 신청할 수 있으며 신청일로부터 5일 이내에 양 측이 자료를 제출하고, 10일 이내에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일단 현 시점에서 구자욱은 기한을 넘겼기 때문에 조정신청을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연봉조정신청이 조정위원회의 결정까지 넘어간 사례는 총 20회뿐이었다. 그중 선수가 승리한 것은 단 한 차례. 2002년 LG 트윈스 유지현이 1억9000만원을 제시했던 구단안을 제치고 자신의 요구액은 2억2000만원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 이전, 이후로는 누구도 구단을 이기지 못했다. 심지어 2011년에는 '타격 7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한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조차 요구액인 7억원을 받지 못하고 구단 제시액인 6억3000만원에 사인했다.

이대호 이후에는 2012년 LG 트윈스 소속이던 이대형이 조정신청을 했다가 결국에는 신청을 철회하며 구단안에 사인했다. 그 뒤로 8년째 연봉조정을 신청한 선수는 없었다. '유명무실'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사이 큰 변화도 생겼다.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된 것. 이제 '선수는 자료 수집 능력에서 구단을 당해낼 수 없다'는 이유는 통하지 않는다. 선수도 에이전트를 앞세워 구단과 거의 동등한 입장에서 조정신청을 거칠 수 있다.

KBO 관계자는 "에이전트가 나선다면 선수와 구단이 껄끄러워질 여지도 줄고, 에이전트가 선수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연봉조정신청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현실은 좀 다르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예상은 빗나갔다.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된 2018년 이후로도 연봉조정을 신청하는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로 각 구단들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연봉산정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구자욱과 김진성도 단순한 금액이 아닌 구단들의 태도에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자욱의 경우 단순히 이번 삭감액에 불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동안 누적된 불만을 표출한 상황이다. 두 선수 모두 조정신청을 거쳤어도 구단을 이길 확률이 높지 않았다는 뜻이다.

앞으로는 선수와 구단이 메이저리그처럼 연봉조정신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갈등 끝에 선택하는 마지막 출구가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구자욱도 성적이 좋은 시즌에 연봉조정신청을 거쳤다면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현재의 섭섭함이 생기지 않았을 수 있다.

구단과 선수가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KBO가 10개 구단 선수들의 연봉을 모두 정해줄 수도 없는 노릇. 아직까지는 "이제 앞으로 누구도 연봉조정을 신청할 수 없을 것"이라던 9년 전 이대호의 말이 현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연봉조정신청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선수-구단 간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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