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럽고 힘든 때다. 그 와중에 우리는 겨울의 끝자락에 와 있다.

봄의 길목이기도 하다. 불어오는 찬바람에도 봄 내음이 살포시 묻어난다. 봄은 생명이요, 희망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땅의 기운들이 기지개를 켜고 세상과 마주하는 첫 순간이다. 봄이 오는 소리는 여린 잎을 띄우기 위해 꼼지락 거리는 소리, 두꺼운 얼음을 녹이며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와 함께 봄의 전령이 되어 힘찬 날개짓을 한다. 봄꽃들의 화령한 외출, 이젠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깊은 산골은 아직도 온통 하얀 세상이다. 겨우내 거친 눈보라 속에서 피어난 동백 꽃봉오리들은 어느새 낙엽처럼 깔려 버렸고, 최남단 제주도 성산에는 봄기운 한껏 맞은 유채가 꽃을 피운다. 내달 4일은 입춘(立春)이다. 곧 남도 땅은 노란물결로 뒤덮인다. 노란 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 순으로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몇 해 전부터는 피고 지는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피었다가 지고 만다. 꽃도 계절의 감각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겨울 속에는 봄이 숨어 있는 것일까. 아무리 극한 겨울 속에도 봄은 내일을 숨쉬고 있는 것일까. 함평 자연생태공원에는 성급한 복수초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순천 매곡동에는 홍매화도 꽃을 피울 것이다. 멀리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 수목원에는 엊그제 '납매'가 활짝 피었다. 음력 12월을 뜻하는 한자 납(臘)과 매화를 뜻하는 매(梅)가 붙여져 생긴 이름이다. 언뜻 보기에는 매화와 비슷한 예쁜 꽃이다. 한 겨울 추위를 견디고 나온 귀한 꽃이라는 뜻에서 '한객(寒客)'이라는 애칭도 붙여진 그런 꽃이다. 그러나 버거운 살림살이에 먹고 살기조차 빠듯한 서민들에게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일 수가 없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이다. 서민들은 언제나 이 어려운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입춘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봄이 오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얼음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마음은 정녕 봄이 오고 있는 느낌이다. 예나 지금이나 봄은 늘 상서로운 기운과 아우러져 부푼 희망으로 차 오르게 했다. 그러나 그 동안을 돌아보면 혹독한 겨울이었다. 겨울의 깊은 곳을 건너왔다.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분명 봄으로 가는 첫 이정표다. 또 우수가 지나고 봄이 언 땅을 녹이면, 잠자던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냇가의 얼음 밑에서도 물고기가 돌아다닐 것이다. 이 좋은 시절에 국민은 아직도 죽을 맛이다. 더 큰 문제는 얼마나 더 이 어두운 골짜기를 헤매야 할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어찌 하겠는가.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길운을 바라는 마음들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천운발원하며 기도를 올리기도 하고, 소망을 기원하는 문구를 써붙이기도 한다.

물론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봄은 따뜻한 바람이 불고 붉고 노란 꽃이 피는 때이지만, 절기상으론 입춘이 봄의 시작이다. 양력 2월4일의 입춘은 아직 대한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아 여전히 추운 겨울 같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점점 따뜻해 지리라는 희망이 가득 담겨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러한 입춘을 맞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여 봄이 오기를 희망하고 한해 길운을 빌었다. 그런데 요즘 흔히 듣는 말로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어느 땐가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를 정도로 국가의 운영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지 이미 오래다. 이렇듯 나라라고 말하기에 민망한 나라에 사는 국민들에게 무슨 기쁨과 흥취가 있을 수 있겠는가.

우수(雨水)는 겨울동안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물이 된다는 뜻으로, 이는 곧 날씨가 풀려 따뜻해 짐을 의미한다. 우리 곁에 찾아오는 봄은 따뜻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는 시구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새봄을 맞으며 다시 시작해 보자. 봄은 정녕 오는데... 그늘진 우리 경제에 새봄의 찬란한 햇살이 기다려진다. 그런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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